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훔 1:7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 148:4-5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경고다.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다. ‘중한 경고’ 즉 ‘소리를 높여’ 외친다. 오늘 나훔의 글은 하나님의 의뢰를 받은 경고의 말씀이다. 나훔 선지자는 엘고스 사람으로, 엘고스는 오늘날 이라크 모술과 가까운 알 코스 골짜기를 이른다. 혹자는 나훔의 고향 갈릴리 어느 곳으로 추측한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를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여기서 소개되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곧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는 분’이란 사실을 일깨운다(나훔 1:2). 하나님이 투기하심은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수 23:16).” 하는 부분에서 선명해진다. 처음 이와 같이 언급된 경우는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 또한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34:14).” 곧 우리 자신을 두고 하나님은 그 언약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질투의 속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그 결국은 상상 이상이다. 곧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7).” 사랑이란 감정의 또 다른 배면이 질투다.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사랑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보복은 우리 선민 ‘이스라엘’을 위해 ‘니느웨’를 멸망시킨다. 그리하여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나훔 2:1).”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온전히 그의 백성들에게 향한다. 이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나훔 1:3).” 이 상황은 시내산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이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 14:18).”
이를 성경은 여러 번 강조하며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느 9:17).” 이와 같은 말씀이 오늘 나의 심령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지 이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린다.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시 86:14-16).
성경은 신화도, 수천 년 전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를 읽는 나의 이야기로 오늘 내게 말씀하시고자, 주께서 나의 삶 속에 얼마나 개입하시고 역사하심으로 사랑하시는가의 증거다. 예전의 일은 물론 앞날의 모든 이야기도 알게 한다. 실제 나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신다. 가령 두어 달 전 교통사고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늘 어디가 아픈 사람이라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제는 사고 담당자가 바뀌었다며 합의를 제안했다. 아내와 둘이 합쳐 곧 있을 이사 비용과 필요한 가구 한둘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일상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자주 경험하여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저가 하자는 대로 하였을 뿐인데, 아내는 마침 필요한 금액이었다며 놀라워하였다. 이와 같이 나는 나의 일상의 최전방에서 하나님이 앞서가심을 느낀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103:8, 145:8, 147:5).
이와 같은 시편의 찬송이 내 것이다. 곧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하시는 말씀이 내 것이 아니라면 성경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나훔 1:3b).” 하는 부분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나의 일상에 실제적임을 확신한다. 가령 아흔을 앞두고 있는 장모를 모시고 저녁예배를 드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다양한 교훈이 된다. 성경을 읽고 당시 본문의 배경을 설명하고 오늘 우리 일상과 연결 지을 때 장모는 지난했던 자신의 삶 가운데서 그 또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인 것을 깨닫는다. 아, 그땐 그게 그래서였어… 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때면 모든 성경은 각각의 삶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1-2).”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깊은 관계를 알리신다.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렘 23:20).” 더러 지금은 잘 모른다 해도, 나의 늙으신 장모의 표현처럼, 그땐 그래서 그랬었어… 하며 자신만 회고하며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희미해도,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오늘도 수천 년 전의 이 역사가 나의 이야기로, 하나님의 엄위로우심과 영광을 나타낸다. 이를 오늘 4-6절에서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분으로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심을 알린다. 결국 모든 거민은 여호와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나훔 1:6).” 오늘 나의 ‘앗수르’도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
나는 주로 변수를 싫어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같은 시간과 동선을 따라 움직일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랑은 늘 변수다. 이는 병적으로 나를 지배하여 때론 나의 약함이 되기도 한다. 그때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하여 전에는 약한 것을 아닌 척, 괜찮은 척 하고 살았다면 이제는 나 또한 약한 것을 자랑함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는 바울의 고백을 사랑한다.
기도할 때,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더해주세요. 하고 아뢴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은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훔 1:7).” 하는 말씀으로 늘 새 힘을 얻는다. 주가 선하심은 히브리어로 ‘토브 아도나이’라 하여 두 가지 해석이 따르는데, 하나는 주의 확실하심을 나타내고, 주의 선하심을 알게 한다. 그러해서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나훔 1:8).” 곧 오늘의 나를 돕는 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고로,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54:4).
일련의 여러 상황과 이루어지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은 알게 하시고, 또한 알리게 하신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내가 받은 위로가 있다면 나로 그 위로로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한다. 어릴 때 혹은 젊은 날에 겪으며 살았던 나의 하나님을 나도 화상하며 놀라워한다. 그래서 그때 그러셨구나… 하는.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곧 오늘 나의 일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로 여기신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 14:18).” 그렇듯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9:16).
이에 오늘 시편은 외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은 주를 찬송하는 것으로 이를 위하여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오늘 나의 모든 상황을 조성하신다. 나로 찬송하게 하심은 명령이다. 은혜를 알면 알수록 마땅히 행할 일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의 의무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148:3-4).
우리가 주를 찬송하는 일에는 아주 오래 전, 모든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를 위해 나를 예정하시고 택정하셨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곧,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5-6).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이면서 목적으로 하나님도 이를 폐하지 못할 명령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1).” 이것이 오늘 내가 사는 이유다. 모든 자연은 묵묵히 이를 수행한다. 나무들은 두 팔 벌려 주께 찬송한다. 이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다시 확신한다. 이를 욥의 고백으로 대신하면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는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대상 29:11).”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48: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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