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전봉석 2023. 10. 9. 05:22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나훔 3:14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 150:6

 

 

찬양은 명령이고 이 명령은 폐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시 148:5-6).

 

찬양은 매순간 붙들고 사는 생각이고, 입만 열면 하는 말이며, 손이 가닿는 곳이고, 발이 이르고, 눈길이 머무는 것이다. 관심을 어디 두고 사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말하는 게 다르며, 모든 행동반경이 집중되는 것과 같다. 오늘 시편은 모든 시의 결론으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150:6).

 

하고 마침표를 찍는다. 오늘 본문 나훔은 이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심판의 경고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나훔 3:1).” ‘그 안에는’ 포악이 가득하고, 거짓이 가득하고, 탈취가 떠나지 않는다. 앞서 “화 있을진저” 하고 외치는 것은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그에 따라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 30:7).” 우리가 이와 같은 화를 미연에 의식하고 두려워할 수만 있다면… 그런 자가 주를 경외한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면 그의 엄위하심 앞에 두려워할 줄 알고 찬양하게 된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66:5, 16).

 

참혹한 현실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일상을 보며,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나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훔 3:2-4).” 행음과 반역과 불성실과 더러움으로 얼룩져 있는 도시에서 전쟁의 모습이 펼쳐진다. 죄악으로 찌든 나라에 멸망의 심판이 예고되고 있다. 물론 니느웨성 곧 앗수르의 멸망을 지칭하고 있으나 오늘 날 우리가 사는 도시의 밤거리를 연상하게 한다. 장망성(將亡城) 같은 모습이다.

 

이에 “모세가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매(민 16:26)” 이는 오늘 우리의 생활도 다르지 않다. 성경은 외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곧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원리는 두렵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0-11).”

 

그러므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이를 전할 때마다 나는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면 바울의 절규가 내 것으로 다가온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저가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두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 옳다, 괜찮다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주의가 필요하다. 나는 주로 나의 마음으로 인하여 힘들다. 혼자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하기를 되풀이 한다. 인천으로 이사를 했으니 주일에 오려나하고, 아인 결혼식에 가야 한다며 화상을 먹으로 씌우고 줌으로 예배에 들어와 이동하며 듣기도 하고, 온통 저 혼자 분주하고 바쁜 아내와, 그래서 더는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는데 감감무소식인 누구에 대해, 서운하였다가 답답하였다가 화가 났다가 서러웠다가… 마치 오늘 말씀의 묘사와 같이,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나훔 3:2-3).”

 

내 마음이 그러했다. 이 무슨 난리속인지. 마음은 날마다 전쟁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데서 꼭 그러고 있고.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둬야지, 하는 것에 늘 생각은 붙들려 더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를 못한다. 예배 후 혼자 교회에 남아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나드는 마음을 견디어야 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어떤 공허감 같기도 하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 같기도 한, 우울감인지 슬픔인지… 나는 나의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토라진 아이처럼 돌아누워 주의 이름을 부르다 잠든다. 모든 게 내 맘 같지 않다. 오히려 ‘아픈 아이’만 가장 온전한 것 같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149:6).

 

이 아이러니한 한 구절의 시와 같다. 나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일을 전투 같다고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을 들었다. 어쩌면 우리의 날들은 이스라엘이 날마다 겪어야 했을 전쟁과 같다. 이때 실은 주가 행하신 전쟁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수 5:13-14).” 하는 장면을 연상한다.

 

곧 우리의 삶이란 ‘날마다 무너뜨려야 하는 여리고 성’과 마주하는 일이다. 우리는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느 4:17-18).” 하는 것과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그저 음녀와 같이,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나훔 3:4).” 살 수는 없다. 이러한 삶은 어떨까? 자신이 자신할 수 있는 것이 도취되어 이 일 저 일 벌이면서 온통 정신 팔린 사람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누워 혼자 덩그러니 있는 주일 오후가 제일 힘든 것 같다. 말씀을 전하면 뭐하나 싶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고 하나마나한 일에 고작 몇 명을 두고도 무력하기만 하니…. 할 때에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고 나보다 앞선 이의 인도하심을 바란다. 오늘 아침 성경은 나를 흔들며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속상함으로 돌아누워 주를 바랄밖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2-3).”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주께 맡기면서 오직 주만 바람으로,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150:1-2).

 

나는 내가 할 게 없어 주를 찬양한다. 그런 거 보면 나의 날들이 그런 것 같다. 주께 돌이킨 후 지금까지 늘 그런 식이다. 할 게 없어 성경을 마주하고, 설교원고를 일주일 내내 작성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와 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글로 쓰는 일을 하루 일과 중에서 전부인 것처럼 우선한다. 어르고 달래고 돌려 말하고 직접 말해도 소용이 없는 누구누구를 대하면서 나는 할 게 없어서 기도한다. 그야말로 하는 게 없는 사람인데 오늘도 생명이 연장되고 교회가 명맥을 이어가는 게 오히려 희한할 정도이다. 사람을 대하고 상대하는 일에서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너무 진이 빠진다. 저는 어쩌면 그래놓고 나를 생각도 않을 텐데, 혼자 연락을 기다리다 어찌 되었나, 궁금해 하다 지레 지쳐 마음만 어렵다. 그렇게 또 누가 새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되풀이하면서….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 5:13).” 이 길이 맞나? 나는 지금 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가 또 화가 마음을 들썽거리게 할 때,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3-5).

 

내가 소리 내어 주를 찬양할 수 있는 길이란,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113:3).

 

비록 늘 메아리처럼 도로 들려오는 나의 말이지만 나는 내가 전하였던 말씀으로 굳게 서고, 내가 위로하였던 나의 위로로 내가 위로함을 받는다. 그래서 교회에 가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인지, 언제나 주께 나오겠다는 소린지… 나는 누구의 다음을 기다리다 지치고는 하는데, 정작 곁에 있어 좀 달라졌나? 싶으면 늘 제자리걸음인 누구로 인하여 실망한다. 그래도 설마, 하고 걸었던 기대감만큼 낙심도 크다. 늘 아무런 성과도 없이 같은 일의 반복인 것 같다. 아, 그런데 오늘 시편은 내 등을 토닥거리시며,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6).

 

곧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그러므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