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합 2:1-2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 2:7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는 심정으로 하루를 견딘 것 같다. 보통 사람으로 살면서 경찰서에 한 번 갈 일 없는데 검찰에, 법정에 서며 시달림을 당하는 동생을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목사만 아니면…’ 하는 심정으로 공연히 화가 또 슬픔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인 것에 비해 저쪽 아이엄마는 법정에서 자기 혼자 흥분하고 말을 길게 하여 결국 또 기일이 한 달 더 연기되어 동생의 변론은 다음 달로 넘겨졌다. 이래저래 어수선하고 마음만 어지러웠다. 그럴 때 오늘 하박국의 첫 구술이 모든 걸 진정시키는 것 같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하실 때 ‘내 파수하는 곳’은 오늘 가운데 지키며 살아야 하는 사명을 생각하게 한다. 성루는 성벽 위 파수대를 가리킨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일은 파수꾼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하나님과 교통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즉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 7:7).” 하는 태도로,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3).
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렇듯 주 앞에 나온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기다린다. 여러 질문이 내 안에 인다. 이게 뭔가? 싶은 생각도 나를 흔들기 일쑤다.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슥 1:9).” 하고 물으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13).” 우린 알지 못하나 알고 있다.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2:1-2).” 하시는 대답을 듣는다.
곧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받을 준비’를 갖추도록 조치하신다. 주위를 물리고 사방을 조용하게 하신다. 가령 동생은 법정에 앉아 상대가 흥분하여 저 혼자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러자 판사는 이를 제지하는데 물끄러미 그런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의 탐심을 우리는 안다. 오히려 우린 가진 게 없으니 빼앗길 것도 없다. 오늘 말씀은 이를 ‘묵시’로 우리 앞에 두신다. 그리고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리신다.
모세에게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 이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르신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이렇게 서판에 쓰여진 메시지는 통보자에 의해 전달되었다. 통보하는 방식은 그것을 가지고 달리는 것이었다.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삼상 4:12).” 곧 우리의 사명 또한 이 묵시를 읽고 분별하여,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하시는 말씀은 곧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하시는 때를 알게 한다.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애 4:18).”
일련의 사건은 악의적이고 감정적이다. 저이가 교회나 목사에 대해 어떤 악감정이 있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거짓을 꾸며 말하고 그 거짓은 사실이 되어 자신을 괴롭힐 따름이다. 동생은 오히려 아이엄마가 삐쩍 마르고 얼굴빛이 검은 것이 병색이 도는 것 같다며 우려했다. 스스로의 시달림이다. 종말의 때에 있을 여러 일들 가운데 하나다. 저마다 스스로의 감정에 시달린다. 성경에 기록된 묵시는 현재적이며 언제나 미래적이다. 시간의 최종적인 순간까지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오늘 말씀은 명료한 공식에 따른다.
‘그의 마음’ 곧 ‘영’ 혹은 ‘생명’은 욕망과 욕구를 따라 사느라 정직하지 못하다. 무례하고 뻔뻔하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영혼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시는 말씀에서 새롭다. 믿음은 견고하고 확실히 영원에 가닿는다. 우리 안에 있는 ‘특별히 신뢰’는 하나님께 뿌리를 둔다.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삼상 26:23).” 다윗이 평생 쫓기며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저는 사울을 존중하였고, 이는 하나님이 세우심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여,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33:4-5).
곧 우리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가득하게 하심인데,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하시고, 이르시되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14).” 곧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40:10).
오히려 오늘의 어려움이 우리로 주를 바라고 나타내게 한다. 이는,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96:13).
이를 우린 안다. 앎으로,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119:75, 138)
우리로 이를 인정하게 하시려고,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143:1).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주의 응답을 기다리게 하신다. 기다림은 더디고 힘에 겨우나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합 2:6-7).” 하고 되물으신다.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로 사는 일은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로 사는 것과 같다.
어쨌든 나도 마음이 어려웠나보다. 장모와 둘이 저녁예배를 드리고 돌아눕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듯 일찍 눈을 뜨고는 잠시 뒤척거리다 이른 새벽에 교회로 올라왔다. 그러니 무엇을 붙들고 살 것인가?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 이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18:2).
하면 이 모든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은 구원의 확실함과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게 하신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27:14).
하여,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130:6).
오늘 살면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잃지 않고 산다는 일은 그만큼 인내가 필요한데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 이를 우린 안다. 굳이 동생에게 뭐라 길게 할 말은 없었다. 일련의 사태로 우린 더욱 주를 바라며 신뢰할 뿐이고 모든 일의 결국은 하나님의 것으로 주가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의연할 수 있기를. 마음은 원하나 육신은 약하여서 깨어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5:10-11).
오늘 이 모든 상황을 두고,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4-6).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주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데 소용됨을 안다. 하여 우리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 하실 때에,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7).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가만히 또 오래 기다림으로 주를 바란다. 이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그러므로 나는 내게 이르기를 잠잠하자. 잠잠히 참고 또 기다리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하여,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2:5).
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2: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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