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전봉석 2023. 10. 27. 05:21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슥 10:12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17:15

 

 

‘봄비 때’는 추수하기 전에 결실을 위한 비다. 번개를 내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릴 준비를 하신다. 이와 같이 자연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립된다. 비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상징한다. 영적인 은혜의 단비다. 우리 마음에 주시는 성령의 감화다.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슥 10:1).” 우리로 구하게 하시려고 우리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하시는 것 같다.

 

교회 장소로 적합한 곳을 두고 기도하며 매일 조금씩 그 주변을 돌아본다. 처음 것은 뜬금없이 주인이 카페를 한다고 하더니, 어제는 더 좋은 자리로 알고 갔더니 주인이 남녀호랑개교였다. 목사라는 말에 두 말할 것 없이 거절하였다. 마치 ‘봄비 때’와 같이 마음은 아슬아슬하고 그리하여 주께 구하여 아뢰게 하신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밖에 없으니 주께 부르짖으라는 소리로 들린다.

 

한데 우린 은연중에 ‘허탄한 것’을 말하고 ‘거짓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게 된다. 드라빔은 집에 두어 점치기 위한 우상인데, 유대인은 바벨론으로 가기 전에 이러한 미신으로 벌을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신을 숭상한다. 하나님을 모른 바 아닌데 미신으로 떨어지는 것은 큰 죄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야 사람으로 사는 동안 인지상정이겠으나 오늘 시편의 한 구절이 여기에 답을 더하신다.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시 17:13-14).

 

이 땅에서의 행복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나? 주께 받은 은혜를 헛되이 알고 우상을 숭상하고 자기만족으로 배를 채우며 자녀들로 그 남은 것을 물려주는 데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에서 길을 찾지 않고 다른 데 눈을 팔면 금세라도 생명의 길을 잃는다. 그래도 감사한 게 부동산 이가 성도인 듯하여 반가웠다. 목사라는 이유로 주인이 문전박대를 하자 자신이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거보면 하나님은 우리로 기도하게 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주가 세우시고 이루실 것을 알게 한다. 오늘 말씀은 그에 따른 거짓 목자와 우상을 벌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이에 우리로는 기도하게 하시려고,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에 따라 하나님은 은혜를 더하시려고,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 36:37-3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그러므로 조급할 게 없다. 더욱이 주의 교회다. 앞으로의 세 번째 도약을 위한 것이다. 처음 글방에서 예배를 드리며 아이들과 교회로의 처음 도약을 할 때에 처음에 같이 한 일곱 명의 아이들과 이어서 따르는 세 명의 아이가 세례를 받았다. 모두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의 영이 저들과 함께 하실 것을 믿는다. 그런 가운데 한 아이만 영육간에 장성하여 오늘까지도 함께 한다. 두 번째로 이곳으로 오면서 본격적으로 상한 심령의 아이들과 여러 가정의 사연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나에게는 딱히 어떤 성과가 없다. 흐지부지되거나 마치 내가 일을 망친 것 같이 안타까움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의외로 모든 가정에 어떤 상처가 저들 영혼을 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나는 여럿을 보았다. 자해를 하고 수시로 죽음을 상기하는 억눌린 영혼과 거짓말에 능숙하여 어느 순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던 이도 있다. 그럴 때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저들만의 사연이 저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교역자 내외의 나름의 수고와 삶의 괴리가 어떻게 저들 가정을 흔들고 있는지도 보았고, 순간의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면서 그 영혼을 잠식하는 경우도 여럿이란 사실을 알았다. 우울증이 감정의 문제라면 조현은 생각의 문제다. 서로의 망가진 세계가 다른 것이나 이를 바로 할 것은 말씀으로의 양육뿐이란 사실도 다시금 깨달았다. 가령 이곳에서의 7년 여 시간은 한 영혼에게만 세례를 줄 수 있었지만 그 영혼이 오늘도 교회의 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이제 세 번째로의 도약이 될 텐데,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늘 ‘봄비’를 준비하셨고 때를 따라 부어주셨다. 한 번도 월세를 밀릴 적이 없고 적게나마 어느 목회자의 생활을 후원할 수도 있었다. 나는 생각이 많고 마음은 늘 아슬아슬하나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늘 그러셨듯이 주가 앞서 채우시고, 막으시고, 늘 항상 방향을 제시하시며 앞장 서시는 것을 안다. 하여 나는 간구할 뿐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68:9-10).

 

그러므로 나는 이 길을 완주할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어려울 때도 주가 이루실 것을 알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욜 2:19-20).” 우리가 주를 바란다는 것, 이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두고 그것에 도취되는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그런 거 보면 성경의 선진들이란 자신들이 붙들고 증거로 삼았던 약속을 붙들고 순종하며 살았으나 그것으로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알고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36-38).” 그리하여 우린 또한 저들의 약함에서도 배운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은 세 번씩이나 불신하여 다른 이로 약속의 아들로 삼으려 했다. 순종의 사람 모세는 결국 불순종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던 다윗은 이웃의 아내를 탐하였고, 넘치는 지혜의 축복으로 살았던 솔로몬은 한심하게도 여러 우상과 타협하였다.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믿음으로 수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과도 맞섰던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는 여인 이세벨을 피하여 죽고 싶은 마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결국 우린 모두 약하고 완전하지 못하다. 믿음은 완전한 신앙의 결정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도약의 발판인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고, 징계하신다.

 

어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같이 보았던 말씀도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 곧 오늘 내 안의 어떤,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른다. 어제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여기가 아닌가? 할 때 나는 의기소침해져 주께 투정을 부리듯 아뢴다. 주의 뜻은 가만히 있을 때 짜잔, 하고 나타내시는 게 아니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나아가야 한다. 설령 말도 안 되는 죄에 빠졌을 때도,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51:9-11).

 

죄를 짓지 말아야 하지만 그것으로 확실한 것을 아뢰고 붙들 수 있다. 다윗은 자기 안의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기를, 정한 마음으로 죄에서 돌이킬 수 있기를 바라였다. 이는 천하의 다윗도 아브라함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죄의 자리다. 이를 통해 오늘 말씀은 승리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바로 알게 한다.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슥 10:5).” 이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그러므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10).” 가령 나의 오늘이 나로 하여금 주를 더욱 바라게 할 때 복이다. 마음이 어려울 때도, 몸이 힘이 들 때도, 생각보다 더디게 이루어지는 일에 있어 나의 조바심이 나를 옥죌 때도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신 1:30-31).”

 

이 놀라운 말씀의 현장이 오늘이다. 성경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의 이야기로 여전히 전개되고 있다. 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하여 오늘도 말씀 앞에 앉히시며,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0:12).” 주가 이루실 것을 알리신다. 하여,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미 7:10).”

 

그러할 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이에,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17:1).

 

먼저는 내 영혼이 주 앞에서 거짓되지 아니하기를. 이를 위하여 필사적으로 말씀 앞으로 나를 세우며 이 길을 무던히 걸어가게 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그러므로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 3:2).” 그리할 때에,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5-6).

 

나는 기도한다. 그리고 주게 피한다.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6-9).

 

그리하심으로,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