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슥 11:1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시 18:29-30
나무들이 불타는 것으로 이방의 집권자들이 멸망하는 것을 상징한다. 또는 유대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것을 예언한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슥 11:1-2).” 그럼에도 하나님은 ‘잡힐 양떼를 먹이라’ 하신다. 곧 로마에 의해 멸망할 유대민족을 향한 말씀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4).”
이때에 양떼를 먹일 수 있는 목자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7, 10).” 또한 그 일은 메시야의 일이다. 곧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척할 때 멸망에 이른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 10:40).”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곧 이 땅의 영화는 사라지고 소망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양떼로 살며 그리스도의 양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요 10:11-12).” 이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이번 주 내내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길이 복잡하여 차를 가지고 다니기는 그래서 걸어서 둘러보았는데, 마치 내 어릴 적 어느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마을과 사람들 같았다. 무슨 보살집이 그리 많고, 오만 가지 사이비종교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직접 두 곳을 찾아보고 실내를 살피는데, 무엇보다 근접성이 떨어지고 편안히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교회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고인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의 자리가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여러 가지라 생각은 저 혼자 부산하였다.
주의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미 7:14).” 이에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5-16).” 우린 결국 단 한순간도 주의 은총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2-3).
이와 같지 않다면 우린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일련의 동정을 살펴보면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1-13).”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이단과 사이비와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곳은 장소가 참 아담하니 볕도 잘 들어 만족스럽다 했더니 바로 위가 ‘하나님의 교회’였고 그 뒤로 무슨 보살집이 붉은 깃발을 펄럭이고 있었다. 문득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5-6).”
또한 우린 주의 은혜를 값으로 쳐서 은 30으로 치부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슥 11:12).” 이는 나름의 값으로 그 수고와 노력의 함정에서 만족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무엘은 일찍이 이를 바로 알았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우리의 순종이 그 어떤 값어치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주가 주시는 마음은 선명하여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주가 바라시는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므로 우린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한다. 내 안에 두시는 마음도 참된 것일 수 있고 거짓된 것일 수 있다. 이를 아는 것은 첫째로 주가 주시는 평안이었고, 둘째는 더 나은 소망을 바라게 하는 마음이었다. 이 또한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요 10:12).”
그러므로 우린 주의 말씀으로 방패를 삼아,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18:29-30).
이에 대한 확신으로 이 길을 간다. 사는 데 필요한 종교화된 삯꾼으로가 아니라 교회와 주의 양떼를 생각함으로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29-30).” 오늘의 때도 그러하여서 내 안에 먼저 나를 위해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언제라도 그럴 수 있는 여지 앞에서 깨달았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18:1-2).
그러므로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3).
오늘의 여러 상황이 말해주는 것 같다. 하나님이 일하신다. 매순간이 구원의 날이고 환난의 때이다. 이에 말씀은 약속하시길,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주가 우릴 지키신다는 것은,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4-5).
실존의 문제이고 직접적으로 겪는 일이었다. 요즘은 하루하루를 긴장해서인지 허리며 어깨, 무릎이며 목까지 온 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 그렇게 몇 곳을 걸어서 둘러보고 들어오면 녹초가 되어 뼈마다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그럴 때 내가 부를 이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50:15, 23)
그리하여,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18:6).
교회를 이루어야 하며 주가 주신 사명을 다하기까지,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한 바퀴 돌고 들어와 한숨 자고 다시 오후께 일어나 다른 곳을 돌아보면서 깨달았다. 그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이가 또한 함께 하실 것을 말이다. 결국은 ‘나의 하나님’과 나의 문제로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고로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25:1).”
나의 영원한 가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아 이 놀라운 은혜로 살 수 있다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0).” 하여 오늘을 사는 자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8:20-22).
말씀을 붙들고 산다는 것은,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9).” 이때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6-7).
이에,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18:28-30).
오늘 시편은 마음이 가라앉고 다소 의기소침해진 나의 마음에 확신으로 붙드신다. 곧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9, 11).” 그러므로,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1-34).
또한,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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