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전도서 4장 / 두 사람

전봉석 2023. 11. 30. 18:16

231203 주일

 

전도서 4장

두 사람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들어가는 말

 

인생은 불공평하다. 억울한 일이 많다. 누구나 그 마음에 노여움이 있다. 어릴 적 상처나 사회생활에서 뜻하지 않게 겪는 일들로 저마다 노여움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노여움도 용인하지 않으신다. 즉 마음에 두고 사는 분노나 수치심, 자존심 상한 일이나 화가 나는 일들을 모두 주 앞에 내어놓을 때 이를 찬송으로 바꾸신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 76:10).”

 

오늘 전도서는 그에 따른 내용이다. 인생에서 학대와 수고는 필연적이다. 그에 따른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다각도로 법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전 4:1).”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하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잘 안다. 촘촘하게 안전그물망을 친다 해도 어딘가 구멍이 있고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 본문은 이에 따른 어려움을 어쩔 수 없으나 두 사람이면 낫다고 호소한다.

 

1. 인생에는 위로자가 없다(1-3)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1).”

 

인생이 헛되다는 근거와 허무할 따름이란 증거를 ‘학대 받는 자’로 예를 든다. 이는 저마다 억압하는 권세가 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사람의 지혜와 수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여길수록 우리는 허무할 따름이다. 이는 죄로 인하여,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6-7).” 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죄의 죄악성을 상기시키셨다(5). 곧 죄에 물든 후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

 

여기서 우린 누구라도 예외일 수 없다. 스스로 선한 의도라 하지만 본래 우리는 선할 수 없다. 그것은 죄로 물든 죄악성 때문이다. 그러니 인생의 참 위로자를 찾다가 지혜자는 말하길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2-3).” 설마 이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면 정직히 자신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참 위로와 기쁨은 하나님뿐이시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3).” 이를 위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곧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지 그 의미를 알려준다.

 

인생은 그만큼 참혹할 정도이다. 저마다 ‘학대’를 묵인한다. 혹은 외면당한다. 수탈과 압제는 상대적이어서 더 큰 권력을 가진 자가 자행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권력이다. 돈 앞에 장사 없다. 가난한 자는 필연적으로 압제 당한다. ‘갑질’은 그 어떤 폭력보다 비일비재하다. 욥은 인생의 고난에서 괴로워하며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하고 탄식하였다(욥 3:20-23).

 

2. 인생에서 마음의 평안은 어렵다(4-6)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4).”

 

시쳇말로 사돈이 땅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이 잘 되면 심통이 난다. 그런 가운데서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5).” 즉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족한 줄 안다. 그러나 시편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4-5).” 이를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첫째, 게으르지 말고 열심으로 주를 섬기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둘째, 명령에 준수하며 손수 일하자.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그렇지 않으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6).” 삶은 그저 비애와 낙심뿐이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는 길은,

 

첫째, 작은 것에 감사하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둘째, 자족하는 마음으로 경건의 이익을 삼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셋째, 하나님을 의뢰하며 돈을 사랑하지 말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3. 인생은 사랑하고 헌신할 대상이 아니다(7-12)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8).”

 

마치 ‘남의 다리 긁는다’고, 남 좋은 일시키며 사는 꼴이 흔하다. 재물을 모아 축적하고 화려하게 꾸미며 산다지만 정작 그 마음은 공허할 따름이다. 이는 무슨 이유일까?

 

첫째, 탐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 12:15).”

 

둘째,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그러므로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 그러지 못할 때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전 4:7).” 하고 답답함을 호소하며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첫째, 합심하여 선을 이룬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9).”

 

둘째, 어려움을 나눠진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10).”

 

셋째, 같이 일을 도모하여 뜻을 합친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11).”

 

넷째, 두 사람이 하나보다 강하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12).”

 

4. 인생에서의 성공은 허무하다(13-16)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15-16).”

 

모든 권력과 정권은 한시적이다. 저가 성군이었다 하나 다음에 이을 권세도 그러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그리하여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왕이 되었”다 한들 저가 초심을 잃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13-14). 그러므로 우린 끊임없이 지혜를 구하여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에 연연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이는 다시 말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하나님만을 의지하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둘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

 

나오는 말

 

오늘 전도자는 우리에게 밝힌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9).”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10).” 요즘처럼 욜로족이 늘고 비혼주의와 싱글족이 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는 실용적이고 가식적일 뿐 진정한 사랑의 교제, 인격적인 관계는 허물어졌다. 그러면서 비인격적인 관계 곧 반려동물이나 개인적인 취미활동이 활성화 되고 있다.

 

성경은 엄연히 둘이 한 몸을 이루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말씀을 기초로 한다. 하여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11).” 그러니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이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신앙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즉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