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전봉석 2023. 12. 19. 04:56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 1:30-31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4

 

 

이방인 누가는 이방 출신의 총독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쓴다. 순결하신 인간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역사 속의 예수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1-2).”

 

진리에 대한 사실을 증명한다. 그의 출생과 함께 죽으심 후의 부활에 대하여도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고전 15:4-6).” 여러 명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

 

곧 우리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 앞에서 주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신앙이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를 신뢰하는 것으로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을 소진하는 사람들이다. 은혜를 받는다는 일은 믿기지 않는 일을 체험하여 그와 같은 사실로 증인이 되는 일이다. 특히 요즘 주일 본문으로 다루는 전도서를 통해 솔로몬 특유의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으로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현실은 어떠한지, 그와 같은 사실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를 신뢰하는 일이 우리로 주의 사명을 감당하게 한다.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누구는 벙어리가 되고 누구는 늙은 몸으로 임신을 하고, 누구는 처녀로 아이를 잉태한다. 이와 같은 현실, 우리의 능력 밖의 현실에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일은 필사적인 노력이 뒤따른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벙어리가 되기도 할 정도로,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받아들임이었다. 이에 바울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믿음이란 믿을 수 없는 일을 두고 주를 신뢰하는 일이다. 곧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될 수 없는 게 믿음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사투를 벌인다. 그에 따라 현실을 직시하고, 대답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답하실 것을 기다리는 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추운 날씨에도 아이는 연차를 쓰느라 하루를 쉬다 교회로 왔다. 같이 점심을 먹었고, 나는 아이에게 모자를 사주었다. <기억의 치유>라는 책을 꺼내온 아이에게 나는 소리 내어 읽어달라고 하고 한참을 그리 마주 앉아 있었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데서 의문을 포기하고 주를 신뢰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일이 지혜이다. 전도서의 핵심은 헛되고 헛된 인생에서 그와 같은 헛됨을 통해 참 사랑의 하나님을 마주하도록 한다. 늘 우리 안에 이는 고질적인 마음이 ‘~하였더라면’ 하는 식의 가정법을 동원하여 오늘을 회피하고 주의 뜻을 멀리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도 모든 현실은 그것으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의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린다. 몹시 추운 날, 나는 말씀 앞에 앉아 그 의미를 따라간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7).” 그렇게 이미 굳어져버린 현실을 깨고,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13).” 말도 안 되는 명령 앞에서 우리는 당황한다. 이에,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14-16).”

 

그렇게 요한은 예수의 출생에 앞서 보내심을 받았고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7).” 준비하는 자로 주 앞에 먼저 왔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우리 안에 의문이 들고, 이를 위하여 벙어리가 되게도 하신다. 곧 우리의 최선은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나의 모든 신경을 소모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두고, 생각지도 못한 일을 받아들일 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누군들 그 되어진 일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어서 저마다 스스로 나서서 하나님을 저지하고 대신하려 드는 수고를 엄청난 신앙이라 여길 때도 있다. 그러나 실은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그럼에도 주를 신뢰하는 일, 신뢰할 수 없어서 몸부림치면서도 참고 또 기다리는 일. 그와 반대로 하나님 없이도 너무들 잘들 살아서 우리로 더 어렵고 갈등하게 하는 요인들도 있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 73:3-9).

 

성경과 현실의 괴리감을 안고서도 기어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우리의 믿음은 이와 같이 필사적이다. 이는 하나님부터 그러하셔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의 죄로 우리를 사랑할 수 없는데도 기어이 사람으로 낮고 천한 자리로 오신 이, 곧 다가오는 성탄절을 앞두고 나는 오늘도 본문 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므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누구라도 믿을 수 있으나 아무나 믿을 수 없는 이 구별된 사실 앞에서 우린 우리의 실체를 보게 된다. 곧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3-24).” 그럴 수 없는데 기어이 그렇게 하시는 이 앞에서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출근길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성경을 두 번째로 읽고 있는 중이라 했다. 처음에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새로이 보인다고 하였다. 나는 그와 같은 저의 변화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게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저에게 나도 그러하겠으나 나에게 저도 그러하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이 하나님에 대한, 성경에 대한 내용이란 사실에서도 놀란다. 재미없겠다? 하고 물으면 아니야 재밌어! 하고 답하는 친구의 대답도 신기할 따름이다. 신앙은 시대를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이를 거스르며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주께 묻는 당돌함이다. 무턱대고 그런가보다 하기보다 한 구절, 한 상황을 두고 하나님께 묻기를 거듭하기를… 그러자 친구는 그런 게 너무 많다고 하였고, 나는 그래도 하나씩 그리하는 게 묵상이라 하였다.

 

우리의 일상과 상관이 없는 성경은 무슨 소용이겠나? 늙은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여 요한을 낳았다 한들, 처녀가 잉태하여 예수가 오셨다 한들, 저가 구원자이시고 앞서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요한이 왔다 한들… 나의 일상에서 ‘요한’으로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나아가 나 역시 ‘예수’로 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나는 친구에게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여러 번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물고 뜯어 씹어서 삼켜야 하는 게 묵상이라는 사실을, 마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사 31:4).” 그래서 나로서는 필사적으로 새벽을 깨운다. 이와 같이 말씀 앞에 앉히고 너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들로부터 이 시간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 곧 어떠하든지 주를 신뢰하려함이었다.

 

더러는 그것 때문에 안 당해도 되는 일을 겪기도 하여,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20).” 오늘 사가랴는 이 황당한 일 앞에서 어떠했을까? 우리가 더러 믿는 자로 살지 않으면, 목사만 아니면, 주의 일만 아니면 당하지 않아도 되는 일 앞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이에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하여,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요이 1:8).” 어제는 가정예배 본문으로 이 한 구절의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였으니, ‘오직 온전한 상’이란?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나의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상급이었다. 이때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벧전 3:12).” 주가 나를 눈여겨보신다는 사실을 두고,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눅 1:25).” 우린 다 안다. 기어이 알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가 정복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배운다. 하였을 때,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76-77).”

 

오늘도 나의 하루는 그러할 것을,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78-79).”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70:1, 4).

 

부디 나의 부족하고 연약함으로도 주의 쓰임이 되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이에,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