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전봉석 2024. 1. 1. 04:48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 83:18

 

 

‘자기의 모든 소유’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이를 양도할 때 복이다. 나의 건강도 시간도 내게 주신 모든 물질도 삶의 필요도 주가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데서 주의 제자라 일컬음을 받는다. 새해 아침에도 여느 날과 같이 새벽을 깨우고 주 앞에 나아올 수 있게 하심이 감사하다. 곳곳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고, 새벽 네 시에도 길을 배회하는 이들을 보았다. 한 사람으로 한 생을 살면서 우리가 주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은혜이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그러므로 내게 더하신 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 1:7).” 하신 말씀을 새로이 가슴에 새긴다. 나는 아이 같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나 오직 주를 바라며 주어진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이번에도 새삼 누구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저에 대한 여러 보도를 보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대해 아득하였다. 설령 죽을죄를 지었다 해도 용서를 구하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에서 산 자는 살아서 복이 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세상이 저 혼자 돌아가는 것 같으나 그 모든 것이 주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하여 새해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우리가 살면서 주를 바란다는 것, 그것으로 한 영혼을 돌이켜 주께로 인도하기까지. 오늘도 내게 더하시는 이 한 날의 소중함으로 감사로 받는다.

 

굳이 새로운 결심이라 할 수는 없으나 나는 우선 나에게 더하신 한 날의 삶과 한 영혼을 사랑하게 하시는 주의 마음과 내가 아닌 주를 권능으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으며’ 지금의 이 모든 수고로 족한 줄을 알게 하시기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그러면서 동시에 ‘할 수 있거든’이 아니고, ‘하게 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으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이에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욥 33:5).” 하여 나의 진술은 오직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신 11:18).” 이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 30:6-8).”

 

이로써 새롭게 시작하는 2024년 첫 날 새벽에,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하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스스로 더하여 자신을 높이지 않음은 주가 나타나기를. 그리하여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13).” 왜냐하면 ‘주의 일’이란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으로 족한 줄 알고,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이는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곧 오늘 나로 약한 데 거하게 하시면 약한 자를 돌아보게 하심이고, 나의 약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심으로 저를 더욱 주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려 하심이니….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게 우선이고 이를 깨닫게 하시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그 뜻을 헤아리는 게 나의 할 일이었다.

 

권하여도 듣지 않는 이에 대하여는 나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신하고, 결국은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2-3).” 하여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7).” 이는 주의 능력으로다. 나의 의지나 결단으로가 아니었다. 그렇듯 주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8).” 고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내가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 19:19).” 이에 우리 삶은 가치 있는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0-31).” 이와 같이 말씀을 따라가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나를 돌아보아 내 이야기가 되게 하는 일. 반드시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그 날은 온다(눅 14:16). 오늘 본문의 이상하고 어이없는, 그러나 오늘 날 우리 현실과 다를 게 없는 일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곧 저마다 너무 사는 데 바쁘다(18).

 

그에 따른 수고가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것인데,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19-20).” 이는 우리가 살면서 그에 따른 우선순위를 바로 알지 못함이니,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7).” 그 모든 게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음을… 하여,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 75:7).

 

고로 우리가 할 일은 다른 것이다. 주의 빛을 반사하는 일, 생명의 냄새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게 하는 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살면서 여러 사람을 대하고 마주하며 어떤 영향을 끼치거나 받으며 사는 것인데, 그리하여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4).”

 

내가 누구의 일로 저를 만날 때,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를 생각함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무엇보다 우선하여 주를 사랑하는 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7-8).”

 

하여 나는 새해 첫 날 아침에도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주의 제단을 쌓는 일에 우선한다. 그리 행함으로 주가 기뻐하시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비록 적고 보잘것없는 나의 목회현장에서,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18:19).

 

이는,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35:27).

 

주께서 그리 행하실 것을. 올해도 나를 살게 하시고, 나로 주어진 날을 채우게 하심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일이다. 그러므로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엡 6:6-8).” 알며 사랑하며 배우며, 마음에 두시는 한 영혼으로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어제 오후 아내와 잠시 마트까지 산책을 하는데,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함으로 하는 게 우리의 권위이고 권세인 것을 말해주었다. ‘아픈 아이’가 이사를 하고도 계속 연결이 되었고, 새로 오는 아이 가운데서도 ‘아픈 아이’를 더욱 사랑해야지! 하는 아내의 말에 축복하였다. 다른 애들은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하면 저들, 우리에게 보내시는 ‘상한 영혼’의 그 심령을 주께 아뢰는 것이 우리의 사명일 거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늘 같은 것은 ‘아픈 아이’의 아이엄마도 ‘아픈 사람’이라, 실은 그런 걸 보면서 자신은 괜찮다, 하는 이들이 실은 더 심한 환자이었다. 어디 사립학교를 보내고 ‘맘카페’를 쥐락펴락한다는 아이와 아이엄마는 결국 좋게 거절을 하였다. 시간을 비워 달라, 다른 아이들을 더 붙여줄 테니 자기 아이 시간에 맞춰 요구하는 저에게 아내는 다른 곳을 추천하며 거절하였다.

 

정작 우리는 안다. 누가 실은 ‘아픈 아이’이고, 이상한 엄마인지. 하다못해 그런 이를 상대하면서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심은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먼저는 나를 버릴 때 우리로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34-35).”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답게, 믿는 자이면 믿는 자답게!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3).” 그러므로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9).” 하여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28:27).” 말씀 앞에 앉아 이와 같이 말씀이 주시는 교훈을 받으며, 나를 돌아보고 주께 더욱 바라는 일은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83:1, 12).

 

그리하여 고통당하는 영혼을 곁에 두심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