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전봉석 2024. 1. 2. 05:4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 15:10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2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이켜 주의 뜻 안에 바로 세워지는 것. 곧 하나님이 저를 예정하시고 택정하사 앞서 주의 자녀로 삼으신 데 따른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저버리고 살다 겪어야 했던 날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을 찾고 찬양하며 경배하는, 예배의 참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영광의 주가 되시며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서 오는 것일까?

 

한 죄인이 주께 나오기까지, 그 구원의 은혜를 덧입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 놀랍고 신비한 자리로 나아올 때에야 비로소 얻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8).

 

그러기까지 저는 미끄러지기도 하였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믿음의 기적이 아니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이내 주를 떠나 살았던 탕자는 돌아오고 이에 또 무난하였던 아들이었는데 저가 심령이 상하여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고 힘에 겨워할 때도…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1-32).” 오늘 본문 후반부의 형제 이야기에서 읽는다. 이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더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참고 기다리시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이것이 오늘도 앞서 믿는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명의 날이 아닐까? 주님은 희망의 날을 상실한 자를 위해 우리로 그 자리에 있게 하신다. 우리 곁에 저를 이끄시기도 한다. 어쩌다 우연한 만남은 없다. 어떤 이를 알게 되는 데 있어 그 이야기는 숱한 상황과 사건 사이를 지나서 내가 알기까지 흘러왔다.

 

그렇게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우리는 그렇게 이해하고 주의 뜻을 따른다. 조심스러워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아이의 심령이 상한 것을 볼 때 그 부모의 지경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거기까지 우리가 닿을 수는 없으나 아내는 그리 이해하였다. 주가 주시는 마음은 신비하여서 힘든 아이에게 자주 손이 간다.

 

어쩌다 두 아이가 같이 수업을 하게 됐다며 한 아이는 일명 초등학교 1학년 ‘똥싸개’ 때부터 오는 아이고, 새로 온 아이는 이제 같은 5학년이 되는 여자아이로 지능이 낮고 강박이 있다. 둘이 같은 시간에 수업을 하는데 의외로 서로를 의식하며 잘 따르는 모양이다. 이상한 일은 누구 이야기를 할 때 아픈 아이 쪽에 손이 더 간다. 마음으로는 그와 달리 온전한(?) 아이를 원하지만 그게 또 마음 같지는 않은 것이다. 자신도 신기해하는 이유로, 이제 우리는 그리 덧붙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지난 주일에는 우리의 ‘아픈 아이’가 대표기도를 하였는데 모두가 놀랐다. 일목요연하고 정직한 저의 기도에 감동하였다. 더욱이 아이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따로 떼어서 주께 올렸다. 물론 오전만 근무하는 일터라 그 금액은 적다해도 어느 누구보다 정직하다. 누군 더 나은 직장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안정적인 것 같으나 주일예배조차 참여하는 게 여의치가 않다. 누구는 큰 교회를 순례하듯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나서서 자신이 아는 것에 자부하기도 한다. 나는 여러 모양의 누구와 누구를 겪으면서 갈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집념을 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심정으로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4).” 오늘 우리 주님은 물으신다.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 34:16).”

 

단 한 사람, 그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데 있어 주님이 역사하시는 범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난데없이 누구는 병에 걸리기도 하고, 누구는 이혼을 하기도, 아이가 예상 밖으로 벗어나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그러다 결국은 두 손들고 주를 찾게 되는 것인데… 그 길목에 우리를 세우신 게 아닐까? 나의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은 어느 아이의 낮은 지능과 우울을 호소하는 아이엄마는 이혼을 당했고, 아이보다 더 심한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한데 그이는 사실 신학을 공부하고 여전도사로 사역의 길을 가려던 자이었다. 대체로 각각의 사연을 듣다보면 저마다 믿었던 자이다.

 

누구에게 나는 확신에 차서 저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였다. 모두가 돌이켜 주를 찾는 것은 아니다. 또는 적당하여서 사는 데 정신 팔려 주를 애타게 찾을 이유가 없는 게 저주다. 복이 아니다. 그렇게 먼 길을 돌거나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영혼을 두고,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4-16).”

 

기어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찾으신다. 세상과 같이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당장 오늘의 판단이 징계 받는 것 같으나 이는 우리로 영원한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려하심인데, 결국 갈 데까지 가서 ‘돼지우리’에서야 아버지의 집을 떠올리고 돌이킬 때,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아버지는 벌써 기다리다 달려가 목을 안으셨다.

 

그러므로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그렇게 하기만 하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겔 18:21-22).” 하여 나는 누구의 어려운 처지를 마냥 슬퍼하거나 비극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가장 기쁘신 일이다. 이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오늘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며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주신 이 길 위에서 무던하기를 기도한다. 맡기시는 이도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면, 나의 부족함이나 연약함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다만 이 자리에서 한 영혼을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일 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주가 하신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나는 돌이켜 내가 받은 은혜로 내가 주를 사랑하는 데 있어 주의 강권하심으로 오늘에 이른 것을 인정하면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

 

고로,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2).

 

나의 느긋하고 여유 있는 마음은 주의 것으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그러할 때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4:18).

 

하면,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84:2).

 

주를 알면 알수록,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4).

 

그러므로,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5-6).

 

이 놀라운 은혜로 살았고, 지금 우리 곁의 상한 심령으로 이를 알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7).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나에게 맡기신 자리를 지키며,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8-11).

 

그리하여,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