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 10:34-35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나의 모든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께서 모든 상황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 이를 느끼고 깨달을 때면 새삼 귀하나 송구하다. 왜 나 같은 자를 이처럼 사랑하시는가, 하는 데 따른 감사함이 깃든다. 가령 아내와 딸과 같이 산책을 하다 어디 들어가 차 한 잔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구동성으로 자식들이 주 안에서 바르게 자라준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였다. 내가 뭐라도 한 게 있으면 나의 역할을 운운할 텐데 그러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으니 더욱 귀하다.
설 가정예배 때 아버지는 신명기 33장 29절에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하는 말씀으로 우리의 날들을 돌아보게 하였다. 먼저는 우리에게 구원이 있었고,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또한 주의 도우심이 누구에게보다 선명하고 확실하였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그리하여 우리 삶은 최후 승리를 얻을 것이었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와 같은 말씀은 이제는 나의 것으로 들려 내 안에 울리었으니,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 26:19).”
이 놀라운, 참으로 귀하고 신비로운 일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신 28:9-10).” 살면서 사는 날 동안 나로 하여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하시는 데서,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생각한다.
믿음은 전하는 자의 기쁨을 내포하여 곁의 아무에게 말해주고 싶다. 듣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즐겁다. 저가 설령 고넬료와 같이 이방인으로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해도,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때론 나 자신이 부족하다 여겨, 혹은 그 상대를 꺼려하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그런 경험, 오늘 시편에서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누가 월요일에 오기로 했다. 저와 말씀을 나누고 이에 우리 일상에서 주가 함께 하심을 서로 나눌 생각으로 벌써 즐겁다. 구약의 선민이 오늘의 우리 자신이 되었다는 것, 이 일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이 놀라운 역사를 어찌 말로 표현을 다할까?
그리하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그러니까 내가 어떤 노력으로, 또는 나의 의지와 수고로 얻은 것이면 이는 마땅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여김을 받을 자격이 없는 터라, 감사는 배로 더 커진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오늘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이방인들 앞에서 주를 전한다. 앞서 저는 이를 꺼려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 10:15).” 우리가 가지고 사는 어떤 의식, 또한 선입견에 대하여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6-27).” 곧 그게 이전의 나였고, 오늘의 나로서 앞으로의 나를 마주할 때 주의 이름으로 영접함이 옳았다.
곧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이 놀라운 ‘복음의 진수’ 앞에서 무엇을 꺼리거나 혹은 속되다 하여 정죄할 수 있겠나? 그것으로 내가 오늘 주의 자녀로 당당히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이었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언제부턴가 이를 알고부터 더는 조바심 내지 않는다. 그저 감격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한 것 없으나 주가 이에 다 이루시고 계심을. 그러므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누구를 대하고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로써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이를 나의 삶 속에서 몸소 깨달아 알고부터 더욱 주를 바란다.
하나님의 계시는 명확하고 이는 활자로 우리 앞에 새겨졌다. 이 말씀을 나는 사랑하고 또한 소망함으로,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1-14).”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앉아 주를 바란다는 것,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7-8).
경건함으로 성실한 것이지 성실하여서 경건한 자가 되는 게 아니었다. 천국에 갈 자로 주의 자녀임을 알기에 주를 사랑하고 더욱 갈망하는 것이지, 천국에 가기 위해 주를 사랑함이 아니었다. 이 차이는 아주 귀하여서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6-37).” 때로는 어렵고 힘이 들어도 이로써 주를 더욱 사랑하는 일이었다. 더는 그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정녕 이러한 삶이라면 무엇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겠나? 오늘의 나로 어떠하든지,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31:23-24).
더러는 외롭고 힘에 겨워도 내 앞에 주가 먼저 걷고 계심을, 나와 같이 오늘도 함께 하심을,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 1:33).” 나의 날들이 그러하였음을. 그럼에도 내가 나의 어떤 일로 마음이 어려워 시무룩할 때,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6:3-5).
이로써 나는 오늘도 눈을 뜨고 먼저 주 앞으로 달려왔다. 지나온 그 어느 시간에서도 주는 나를 혼자 두신 적이 없으셨다. 그이가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19:129-130, 143:10).
말씀으로 나를 붙드시는 이 확실한 계시와 그 증거를 가지고,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하는 베드로의 놀라움 같이,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122:1).
곧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6-38).” 이 일이 오늘에 이르러 나의 증거가 됨이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122:2-3).
곧 우리의 예루살렘이여, 오늘의 이 하루가 또한 영원한 날의 한 날이었음을 새삼 놀라워하며 나의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6).
곧 내가 들어갈, 오늘 나로 그곳에 거하게 하심을.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7-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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