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전 3:23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 9:10
우리가 주 앞에 설 때 행복해지려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주를 바람으로 괜찮다고 일어서는 것이다. 걱정을 사서한다는 말처럼 일어난 일을 두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한다. 이 모두는 자신을 바로 세우기보다 자식을, 배우자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이 자신을 병들게 하고 상대를 나약하게 한다.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용기는 저의 슬픔과 불행까지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
아닌 것은 아닌 것이지 그도 그럴 수 있다고 허용하는 순간 모든 게 그럴 수 있는 것이 된다. 이에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 물론 저마다의 이유는 자신을 정당하게 여긴다. 그러느라 상대를 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 ‘미움 받을 용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용인되는 것으로 서로의 틈은 벌어진다. 벌어진 틈으로 성도의 인격적인 관계는 균열이 생긴다. 세상은 점점 비인격적인 관계로 인격적인 관계를 대신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와해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붕괴되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7-8).”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주를 바라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5-6).”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이다. 우리의 모든 이유와 그 선택은 하나님이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이를 알고 인정할 때 오늘의 모든 염려나 근심은 주의 것이 된다. 우리에게는 평안뿐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우린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산다. 여전한 애착 관계가 서로를 병들게 한다. 이는 마치 양의 속성과 같이 서로 붙어 엉겨서 질식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염소를 사이에 던져둔다. 개를 풀어 서로를 떨어뜨린다. 자식이 정신과를 찾아 약을 먹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게 부모 된 마음으로는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겠으나 그렇게 혼자 병원을 찾고 자신을 알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건강하다고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인정하기보다 남을 탓함으로 병들어가는 영혼들이 더 많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1-4).”
걱정을 사서하는 데는 자신의 아집 때문이다. 자신은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저에게 스스로를 돌보시라, 주를 바라시라 권하였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바람이다. 즉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자신을 확증하라’는 말씀 앞에서 내가 믿는 자임을 어찌 나타낼 수 있는지? 세상과 다르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들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하실 때에 오늘 말씀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전 3:10).”
곧 우리의 터는 그리스도 예수시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11).”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사는 일은 행복이나 불행이나, 미움이나 사랑이나 오직 주를 바람으로 증거가 된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나는 그저 말씀을 따라갈 뿐이다. 주의 뜻 안에 서는 일은 누가 오든지, 어떤 이를 곁에 두시든지, 주가 일하심을 아는 일이다. 다만 나는 거기에 있을 뿐 주가 어찌 다루시는가 하는 데 증인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내가 저들보다 나은 게 있어, 능함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 한 지체인 것을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그러므로 나는 나의 분수를 안다. 주신 것에 충실할 따름이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도 헛되이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상이 필요하면 필요하신 이가 세우실 것이다. 그때에도 나는 거기에 있을 뿐이다. 누가 왔다. 저의 염려가 저로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나는 본인이나 건사하기를 바랐다. 부모란 이름으로 다 큰 자식의 일에 너무 개입하는 것은 폭력이다.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은 마치 평화라는 이름의 전쟁과 같다. 각자는 이와 같이 아이러니한 순간을 서로가 옳다 여긴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자식을 키우는 일도 다르지 않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20).”
주님과 먼 자의 극성은 그것이 아무리 선을 구하는 일이었다 해도 상대에게 해가 된다. 더욱이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 부부 사이에서 이와 같은 불균형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린 맡은 자로서의 청지기적인 사명을 다할 뿐이다. 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나도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모든 게 주의 은혜인 것을. 그리하여 오늘의 모든 상황과 일련의 사실을 앞에 두고 주를 바랄 수 있는 게 복이다. 내가 어찌하려는 데서 불행은 시작되는데 그것까지도 괜찮다고 여기는 게 지혜였다. 괜찮은 이유는 내가 주를 사랑해서였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가령 누군 자신의 것을 내어주지 못한다. 그러느니 돈으로 사서 주겠는데 그럴 수가 없다. 비워야 채워진다고 말하여도 저는 비우지를 못하고 은혜가 채워지길 바란다. 더디 믿는 믿음도, 자기 생각이 뚜렷한 의사표현도, 모두가 죄의 결과로 자기를 사랑하는 데 있었으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곧 내가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기까지 이와 같은 갈등은 끝이 없다. 복음을 원하지 않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무의식의 소리나 세상의 아우성이 너무 크게 들리는 것은 당연하였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4-5).”
주신 날의 주어진 몫이 하루로 족하다. 하루씩 사세요, 하고 나는 누구에게 말해주었다. 저가 더 심각한 우울감과 공허감을 호소하는 영혼이었는데, 그 원인을 자꾸 자식에게 돌리고 있었다.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2).” 오늘 내게 두신 이 한 날의 수고로 족하였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면서 천 날 만 날 살 것처럼 왜 앞서 끌어다 염려를 자처하는지. ‘내일 염려는 내일이 하게 두고’ 오늘 하루의 수고로 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요삼 1:8).”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그러므로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그 아는 것으로 자신을 찌를 뿐이다. 곧 이를 오늘 말씀은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19-20).” 이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21).” 사람, 그 허무한 존재에 있어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23).” 아, 이 놀라운 진리 앞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 모든 염려가 내가 감당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시 9:1).
주가 나와 함께 하심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이가 주님이심을. 그러므로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3-4).
어떤 일로 마음이 휘둘리기 십상이나,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7-8).
하여 우리는 주 앞에서 떳떳할 수 있어서 염려할 것이 없다. 주가 나의 모든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길을 가는 것도, 여기에 있는 것도…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0).
이 믿음 붙잡고, 내 곁에 힘겨워하는 이들과 함께,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1).
그리할 때,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13-14, 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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