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전봉석 2024. 3. 21. 05:3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전 5:7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시 11:3

 

 

늘 우리의 사랑이 문제다. 보면 우리는 너무 자신을 사랑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으로 자신을 해롭게 한다. 성경은 이르시되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2).” 그런데 그게 나 자신인 것을.

 

때로는 어찌 이런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가? 하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송구해진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럴 가치가 없는 나를, 이미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것이다. 이에 말씀은 나를 부르신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아 4:1, 7, 9, 10).

 

이와 같은 사랑하심이 어찌 가능하신가? 하고 묵상하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이와 같이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데 있어 그 고통이 엄청나지만 또한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22).” 하심이다.

 

곧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주를 사랑함으로 겪는 고통으로 주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하시는 고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릴 사랑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0).” 이어지는 주의 말씀이 눈물겹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이를 아가서에서는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아 4:7).” 하고 감격스러워한다. 이와 같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우리의 사랑은 자라서 주가 이루신 사랑으로까지 성장해야 한다.

 

일찍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하는 명령과 함께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곧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31).” 우리로 좋고 좋으신 것인데, 이는 ‘너울 속에 있는 우리의 눈이 비둘기 같고’ 또한 ‘머리털이 검고 숱이 많아 곱다.’

 

우리의 머리털은 헌신과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그러므로 우리를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아 4:2).” 하심으로, 양은 제사 곧 예배를 드릴 때 드려진다. 우리의 이, 치아는 질서 있고 가지러한 삶이다.

 

말씀을 씹어 묵상하는 꾸준한 나날이다. 곧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그 날은 항상 주를 바라는 삶으로 드려지고 바쳐지는 ‘털 깎인 암양’ 같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3).” 하실 때, ‘입술은 홍색 실 같다.’ 곧 성막과 제사장의 의복과 정결 의식에 쓰인 진홍색으로 우리의 입은 곧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이와 같이 말씀을 따라가며 그 내용을 묵상할 때에 일련의 상황과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우리는 이를 목격할 수 있다. 누구의 이야기에서 그 의미를 되새기며 주의 뜻을 살피게 된다. 저가 어찌 저 지경인가? 하고 들여다보면 마치 내가 그 삶에 속하여 살던 때가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10).”

 

나는 늘 두려움으로 말씀 앞에 선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저의 고단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사 3:16).” 우린 얼마나 완고하고 굳어진 채 살고 있는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 7:51).” 그것으로 자신이 아프다. 사는 게 지옥 같다.

 

오늘 말씀으로도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6-7).” 내 곁의 슬픈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이 된 데는 여전히 괜찮다, 하고 고집을 부리는 단단한 아집을 보게 된다. 이에 우리로 권하는 것이다.

 

보는 눈을 밝히라는 것,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23).” 그러므로 오늘 우리 곁의 여러 어려운 처지에서 누구는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는 데 여념이 없어 고달프다. 끝도 없는 탐욕과 나태와 자기 환멸에 시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말씀은 우리로 하나님을 보라 하신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마음의 청결은 깨끗함을 얻은 자가 더욱 깨끗하고자 하여 스스로를 정돈하고 자신을 살피는 일과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거듭나야 하고 그러할 때에 우리 눈이 바로 보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3-7).”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의 육의 요구에 짓눌려 사는 사람으로는 이와 같은 말씀을 받아낼 수 없다.

 

가령 누구에게 나는 여러 말로 권하고 내가 지금 고심하는 바를 말하였다. 아이를 맡는 게 그 부모가 함께 하지 않으면 어찌 감당이 되겠나? 하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저들 부모는 그 말의 의미를 받아내지 못한다. 자신들은 늘 어쩔 수 없다고 미룬다. 여전히 게임에 몰두하고 두문불출하며 집구석에 있는 것으로 그리 여긴다. 더욱이 사명을 받은 자로 어찌 그리 사는가? 하고 문제의식을 일깨우려 해도 자신들은 괜찮다, 한다. 문제는  아이다. 아이를 저 지경에서 어쩌려는 것인지. 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두렵다.

 

결국 우리는 날마다 몸을 단장하는 거룩을 살아야 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마치 늘 돌보아야 하는 텃밭 같이 잠시만 미루어도 잡초가 나고 가라지가 풍성해진다. 우리의 잡념이 망상이 되고 망상이 현실이 되어 자신을 거짓 현실 속에서 살게 한다. 아,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하시는데 여전히 주의 구원을 맛보고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니 오늘 본문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 5:12-13).”

 

곧 내 안에 들어찬 온갖 것들을 어찌 감당할까? 이를 위해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하는 것은 몰약과 유향의 향품을 가지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즉 우리 신앙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가능하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하는 이 놀라운 신앙으로,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 1:8).” 하는 굳은 의지가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그리해야 한다.

 

‘내 신부야’ 하고 주가 지목하여 부르셨다.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그리고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히 2:11-12).” 이에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하고 우리 주님은 온통 우리에게 마음을 두신다. 그러므로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이는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그러할 때 오늘의 모진 삶 가운데서 우린 더욱 실하고 맛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성숙된 삶은 연단과 시련과 사랑의 은총으로 빚어진다. 그러므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하신다. 곧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오늘 우리의 날들은 값 주고 사신 주의 날이며, 나는 주의 것이다. 아,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시 11:1).

 

우린 오늘 우리를 다그치는 것들로부터 외쳐야 한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3).

 

우리로 의롭다 하신 이가 또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그러므로 나는 내 곁의 누구를 생각하다 그와 같은 안타까움으로 주의 전을 지키며 아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4).

 

그러므로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