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전봉석 2024. 4. 1. 05:0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 16:14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시 22:10

 

 

서로를 대할 때 주가 나를 위하셨던 것처럼 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떤 대화를 하다 순간 답답하여 입을 다물거나 화가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저도 어쩔 수 없는 것일 테니… 하고 마음을 다잡는데도 나도 모르게 그리 된다. 말은 듣는 이의 것으로 마음이 앞서 내가 도로 확인하려 들 때 성급해지는 법이다. 나의 말로 내가 속상하고 화가 날 때, 오늘 말씀이 나를 누르시는 것 같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

 

주의 사랑으로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주의 권능으로 요구한다. 주의 마음을 갈망하게 된다. 그때에 기도는 오직 하나,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시 22:10).

 

내가 나의 것이 아니면 나의 말도 나의 것이 아니어서 섣불리 앞서는 마음을 제어하게 된다. 곧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 말씀을 생활에서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 불쑥불쑥 이는 것은 육신의 소욕으로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곧 나의 말이 사망의 법에서 나로 자유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다. 말에 묶여 마음의 것을 따르지 못할 때, 아이와의 대화에서 건짜증이 일고 어떤 이의 엉뚱한 태도에서 속상함이 인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7-8).”

 

그래서 한 영혼을 주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일은 말씀을 받아내며 사는 일이다. 나는 없고 나의 말도 내 것이 아니어서 주의 뜻에 따라 행하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진정 하나님이 바라시는 게 무엇인가?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상대적으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이와 같은 말씀이 내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이었으면, 나에게 보이는 것에 너에게도 들렸으면, 나에게 들리는 것이 너에게도 보였으면 좋겠다. 아이를 마주하면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올 때가 있다. 엉뚱한 소릴 하거나 상관도 없는 말로 질질 말을 끌을 때 그만해, 하고 돌아서려면 또 마음이 아프다. 어떤 이에게 무엇을 권하거나 어찌 뜻을 전하려 할 때 저의 완고함에 치를 떨면서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다가도 주가 나를 어찌 사랑하셨는가를 일깨우실 때면 마음은 누그러져지고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까지 든다.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 16:16).”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저를 위하는 마음이 거룩하게 입맞춤 하는 일과 같아서,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 그러므로 저보다 내가 나은 게 없고 나보다 저가 못한 게 없는데, 감정이 또는 섣부른 판단이 먼저 올라올 때는 내가 얼마나 구제불능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께 드려지는 것으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말 1:8).” 과연 나는 정성으로 주를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드릴 때 나의 마음이 먼저 안다. 저를 생각함으로 나의 마음이 이를 안다. 이를 알기 때문에 더러는 성가시고 불편한 것이다. 그저 친절한 타인으로 살 때는 모른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9).”

 

진정과 정성을 다해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스스로를 사랑하며 깨끗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그러니 쓸데없는 논쟁을 피해야 한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23).” 답도 없는 질문에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질문은 의도가 답을 구하려는 데 있지 않다.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딛 3:14).”

 

그러므로 한 영혼을 주의 길로 이끌며 같이 가게 할 수 있는 일은 산을 옮기는 것과 바다를 퍼내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권하고 또 권하여도 어찌지 못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 가까운 이나 먼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다. 스스로 귀를 기울이며 다가오게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나에게 오는 이에게서 주의 뜻을 살피고 그러다 또 무심히 떠나는 이에게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누구에게 연락을 할까? 어떤 말로 위로나 권면을 해야 할까? 하고 수도 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어도 전혀 엉뚱한 결과로 다가올 때면 어렵다.

 

사람의 마음은 그와 같아서 사람이 사람으로 그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 일이 일어나기 위해 저의 시공간의 모든 상황이 같이 맞물리고 나의 이런저런 관여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전우주적인 역사가 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니 서로의 마음을 어쩔 것인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이를 내가 강요할 수는 없어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그러므로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요삼 1:6-7).”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이름을 위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저는 나의 자랑도 자부심도 될 수 없다. 그러니 오는 것도 떠나는 것도 내가 막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시는 동안 그 두심의 시간을 성실하면 될 것이다. 그때에 주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고전 16:6-7).”

 

나는 오늘 말씀을 왠지 쓸쓸하나 기쁨으로 받는다. 여러 명이 다녀가고 또는 다가오기도 하는 가운데 나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지키는 자리에서 저들은 바람처럼 왔다 가는 것이어서 붙들려하는 것이 바람을 잡는 일처럼 허무할 따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으로,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2-13).”

 

저가 잘 될지 혹은 그릇될지 나는 알 수 없으나 이 모든 게 주의 권능으로여서 다만 주를 찬송함이었다. 누구를 생각하며 저로 여러 마음이 일어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일, 나로서는 이 일이 가장 귀하였다. 애써 수고하였으나 우리의 만남이 거품처럼 말라버린다 해도,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115:3).

 

주가 원하시는 일을 주가 행하실 것을 안다. 다만 나는 맡기신 자라, 나도 내 것이 아니어서 주의 것이라 인정할 때에 주가 기쁘게 사용하신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때로는 저도 저의 일에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을 두고 내가 혼자 속을 끓이고 애를 태우며 신경을 쓰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일로 주와 마주해야 한다. 그러는 시간이 나에게는 길어졌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마치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저들이 내게 들려주는 말씀의 근거가 된다. 하여,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

 

이 또한 지금은 내가 감당하기 어렵고 이해가 안 된다 하다가도 어느 순간이 올 것인데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반드시 그 때에 손뼉 치며 아하, 놀라움으로 찬송할 것을 믿는다. 지금은 실패한 것 같고 또한 하나마나 한 일을 한 것 같다가도 곧 조만간 주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일이었으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

 

그러므로 고개 숙이지 말자. 실망하지 말자. 낙심하지도 말자. 저는 나를 지나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우리가 나누었던 말씀을 떠올리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늘 그랬듯이 누구는 새로 오고 또한 누구는 소리 같이 사라질 뿐이다. 그러므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내가 주를 바람으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3-14).”

 

다만 오늘도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20).” 우리의 문안이 또는 서로를 향한 안부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23-24).” 이에,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22:10-11).

 

나는 주께 기도한다.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5, 19).

 

기도할 때에,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4).

 

그러므로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7-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