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후 3:1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 25:7
하여 주를 경외함으로 자유하다.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 7:18).” 지난날 죄책으로부터, 오늘에 죄와 허물로부터, 앞으로의 죄의 값에 이르기까지…. 그리하여 피차 겸손함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여전히 죄에 물려 양심의 가책으로 혹은 어떤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로 자신은 물론 타인을 공격하며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 우리는 이제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을 받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곧 나의 이해와 상식으로 또는 자신의 판단으로 생각하기를 통해 행동하기를 미루지 않는다. 여러모로 치열한데 특히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을 위로하는 데 있어 참 이상할 정도로 저들은 모두 임의로 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우리의 겸손은 어떤 방어보다 튼튼하고 선제공격보다 앞선다. 곧 주를 바람으로,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시 59:4).
시편은 우리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35:22, 9:13).
이와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6-7).” 어떤 일을 두고 혹은 마음이 어려워서 여러 생각이 앞설 때에 오히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8-9).” 사탄은 호시탐탐 노린다. 틈을 찾아 주를 멀리하는 기회를 삼고자 한다.
오히려 이 일로 우리가 주를 증거 할 수 있는 기호로 삼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나타내는 삶으로 복이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 9:1-2).” 곧 오늘을 사는 이유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저 한 영혼을 두고 주께 아룀으로 내가 살고 있었다.
곧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누가 함께 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고자 할 때, 권하여 주의 말씀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새 힘을 더할 때가 있다. 가령 나는 요즘 친구와의 성경공부에서 저로 인해 성경적인 이해와 안목을 열 수 있게 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어떤 일을 두고 판단할 때에 이제는 각자의 주장이 아니라 말씀으로 말씀에 이르는 주장으로 주를 바랄 수 있는 힘이 느껴진다. 곧 우리는 서로의 영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알았다. 하여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고 나타내기를 바란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4).”
희한하지? 전에 같으면 더는 어쩔 수 없는 이에 대하여 마음을 접기도 쉬웠을 텐데 더러는 계속 마음에 걸려 나로 하여금 주를 찾게 한다. 실제 나는 잊히는 일에 있어 흘러간 것은 놓아두자는 쪽이다. 애써 서로를 찾고 옛일을 더듬은들 별로 좋을 게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그때의 것으로 좋았으며, 더러는 노여움도 그때의 것으로 끝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학습된 우리 영혼은 고통당한 일을 기억하고 답습한다. ‘따귀 맞은 영혼’으로 앙갚음을 하고자 하거나, 주의 사랑으로 이를 오히려 긍휼히 여긴다. 이와 같은 차이는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오늘의 나로 오늘을 살게 하신 이는 한 분이시다. 그때 그 시절, 더러는 그 기억이 여전히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해도 그 고통이 그때의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것이라는 사실. 즉 그 마음에 노여움을 품고 살 때에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앙금으로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갈 따름이다. 그런 가운데 지능이 멈추고 더는 생각하기를 지속할 수 없는 이를 위해 기도한다. 나는 아이엄마에게 어떠하였든지 자신은 그래도 생각하기와 판단하기에 무리가 없으니 부디 정신 차리시길. 사모 내외에게도 부디 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맡기신 오늘의 사명으로 자신들을 쳐 복종시키시기를. 이 모든 게 성령으로가 아니면 아니 될 일이란 걸 알면서, 주께 구한다. 주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면 될 일이다.
오늘 본문도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후 3:2).” 그러므로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3).” 아, 이 놀라운 은혜와 사실 앞에서 우리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게 된다.
우린 성령으로 부르심을 입었다. 내가 임의로 찾아온 게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요 3:3, 11).” 그러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 4:3-4).”
그러므로 더는 이제 사망의 법에 매이지 않았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이에 성령이 진리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더는 사망의 법으로 살지 않는 자로 그 어떤 노여움이나 슬픔을 품고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감히 누구에게 말로 저를 위로할 때에 내가 그리 무겁게 눌려 살았던 날들을 떠올리며 권면하고 주의 사랑으로 증거한다. 곧 오늘의 이 은혜는 모두 선물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앞으로 얼마를 더 살고 어떤 일들을 겪어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로써 내가 누구의 일에, 어떤 문제를 같이 지고 씨름하는 것도 복이었다. 더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자리에 두시는 이에 대하여는 미련이 없다. 더는 선생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어떤 친구나 누구에 대해 혹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치지도 않는다. 다만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그리하여,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그대로 주 안에 거하는 삶. 전에는 억울하였고 혹은 속상하여 나를 원망하게 하였던 일들에 대하여 다시는 개의치 않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주가 하시고자 하는 일을 선명하게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4-5).” 오늘 이 복음이 진리였다.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8).” 그러므로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11).”
더는 이 땅의 없어질 것을 위해 기를 쓰고 수고하며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건강을 바람은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막힘이 없으려는 것이고 돈이나 물질, 육신의 필요를 구하는 것은 행여 이 일로 주의 일을 미루지 않기를 위함이었다. 이제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12, 17).” 나는 오늘 이 말씀을 굳게 붙든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 3:7).”
하다못해 새벽에 나오면서 이른 새벽 길에 청소하는 이들을 본다. 혹은 늘 지나오는 길에 떡집을 일찍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노인을 볼 때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사느라 그만큼 애쓰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더러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건물 어디에서 이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위로하려는 이들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
나는 다만 이제 주신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주를 바란다. 오늘 오는 아이를 두고 그 부모의 영적인 상태와 아이의 오늘이 맞물려 있음을 두고 주께 아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 4:11-14).”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16:11).
오직 주를 바람은 어느 가까운 훗날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하여 나는 주 앞에서 영광된 모습으로 설 것을 가슴 벅차게 기대하며 말이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25:1-2).
주의 이름을 부르며, 내 곁의 한 영혼을 두고 고한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3).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4-5).
이에,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7).
곧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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