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3-5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아니하게 하소서
시 39:7-8
바울은 주후 5년에 태어났다. 이후 유대교도로 살다가 35년에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45년까지 안디옥교회 전임사역을 감당하였고, 49년에 갈라디아서신을 썼다. 51년에 데살로니가서를 쓰고, 55년에 고린도서를 썼다. 57년에 로마서를 쓰고 60-62년에 옥중서신을 썼다. 67년에 디모데전후서를 쓰고 68년에 순교했다.
바울이 처음 서신서를 쓰던 49년에 십자가 사건을 비로소 이해하고 성령의 계시로 이를 깨달았다. 이때만 해도 저의 이해는 처음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의 보혈이 이루어진 것으로 말이다. 처음 이 복음은 주전 4114년에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전하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아담은 타락하여 에던에서 쫓겨났다. 이후 바울은 저의 죄로 십자가의 복음을 알았다가 이 신비를 주후 51년에 데살로니가서를 쓰면서 한층 더 깊은 이해와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 되었다. 이는 아담의 죄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그 전부터, 이 사건은 계획되었고 이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곧 이것은 ‘감추어졌던’ 복음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다.
또한 그는 이를 ‘복음의 비밀’이라 하였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곧 이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이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이를 이제는 열어 보여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놀라운 확장이었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십자가의 복음이다.
그럼 왜 여태껏 감추어졌다 이제서 보이는 것일까? 앞서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 때에는 아무리 좋고 귀한 것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까지 이루어져야 할 때가 이르렀다. 이는 하나님의 뜻으로 그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왜 그때인지, 앞서 더 일찍 왜 그와 같은 복음의 비밀을 실행하지 않으신 것인지는 우리로서 알 수 없다. 다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당시 저들로서는 설령 알린다 해도 알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이 복음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리하신 것은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5, 6).”
이를 바울도 개종 후 22년이 지나서야 성령의 감동으로 비로소 깨달았다. 곧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다시 정리해 보면 이 복음은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언제?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다.
왜?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것이다.
그리하여,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인데, 그 목적은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으로 정리 된다.
사도요한도 이를 ‘하나님의 그 비밀’이라 하였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 10:7).” 곧 십자가의 복음은 그렇게 전하여진 앞서 수 많은 선지자들로 이미 전하여진 복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창세전에 감추어졌던 것으로 이제 계시된 것으로,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으로 오늘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으로 인한 놀라운 이와 같은 계획 가운데서 우리는 이제 확실히 안다.
오늘 바울은 이를 다시 설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앞서 구약시대에도 많은 선지자들로 전하여 주신 바 되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3, 4-5).” 이러한 복음의 놀라운 비밀, 하나님의 비밀로 감추어졌던 것을 오늘 우리로 알게 하심은 종말의 극점에서 우리가 겪는 산고의 비밀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말씀에 가까이 와서 오늘 우리는 세상이 있기 전, 이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있었던 이 복음을 알아 듣는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이를 베드로도 이렇게 전하였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20).” 물론 예수님도 마지막 식탁 후 저들 앞에서 기도하시며,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하고 친히 기도하셨다.
곧 이 만세전에, 세상전에부터 있었던 계획을 따라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이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천사의 타락 그 이전부터의 일이다.
천사는 어쩌다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을까?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7).” 이로써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18).”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까지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19).” 이는 곧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사 14:12-13).”
그 결과 오늘도 우리 안의 교만은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것이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14).” 하여 천사도 사탄이 되고, 영원 속의 사람도 시간 속으로 떨어져 죄악 가운데서 산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15-17).” 이와 같은 세상에서 비로소 참 진리를 깨닫는다.
곧 우리 자신의 본래의 신분이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갈 4:7).” 이는 우리가 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6).” 어느 시대보다 자유롭게 주 앞에 나아가 죄를 고한다. 악하나 어느 때보다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를 알지 못하였을 때는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8).”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그리 이해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9).” 하고 오늘 바울은 언성을 높여 꾸짖는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19-20).” 그러므로 오늘이 또한 어느 시대보다 문명이 발달하고 교육, 정치, 생활 수준이 높은 데 반해 악한 것으로 해산의 시대를 산다. 이와 같이 산고를 겪는 일은 성도로 사는 숙명과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22-23).”
우리는 이 차이를 이제는 알았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24-26).” 이와 같은 말씀을 앞서 바울의 체험과 그의 지혜의 확장으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 비밀, 감추어졌던 것을 알게 하신 목적은 하나다. 우리는 주의 자녀다. 약속의 자녀로 더는 율법에 종노릇하지 않고 복음으로 자유하는 자녀이다. 언제라도 하나님께 나아가며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아뢰고 직접 고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날 악한 세대를 대적하여 선이 승리해야 한다고 맞서 싸우기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다. 저들은 ‘악의 원리와 목적’을 알지 못해서이다. 악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부터 오신 이후 2천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악하였고 여전히 악하다. 세상이 악한 것은 세상은 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 믿는 자들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더욱 더 주의 뜻에 살도록 훈련하도록 한다. 이것이 악의 목적이고 악이 그 도구이다. 또한 이럴수록 말씀 속으로 들어가자고 하는데, 이는 단순히 두더지 같은 신앙이다. 어떤 이들은 종말을 강조하며 예수 재림을 준비하자고 하는데 그 때와 시점은 아들도 알지 못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37).” 오늘도 그때와 같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38-39).” 이어 예수님은 서로가 같으나 갈리는 것을 알게 하신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40-41).”
우리가 같이 주를 섬기고 교회를 다니고 신앙으로 산다고 하나 이와 같은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할 때, 헛다리짚듯 땅을 파고 들어가는 두더지 같다. 또는 허공을 떠도는 시야 좁은 참새 같이 부산스러울 따름이다. 바울이 사울일 때 십자가의 복음을 알지 못하던 때 같다. 그러나 저를 돌이켜 붙들고 세우셔서 35년에 개종 후 22년 동안 복음을 ‘아담의 죄로 인한 십자가의 복음’으로 알았던 것을 22년이 되면서 그의 지혜를 열어서 확장하셨다. 곧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을 보이시고 전파하게 하심으로 오늘 우리의 복음은 어느 때보다 완전하고 완성된 말씀으로 증거가 된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31).”
우리는 어쩌다 예수 믿고 회개한 후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게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우리가 이 땅에 있기 전에, 어머니의 모태에도 생기기 전에, 만세전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28).” 하심을 입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29).”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자녀로 믿음 안에서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내쫓으라’는 것으로,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30).” 우리 안의 교만과 아집과 세상을 추구하려는 두 마음을 내쫓아버려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 나를 차지하려는 교만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내쫓을 수 없다. 은혜로밖에 이를 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시면서, 오늘도 기도하게 하신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시 39:7-8).
산다는 게 덧없음을 알 때,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3-4).
이를 인정하는 데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9, 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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