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봉석 2024. 4. 21. 04:59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1-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

 

 

우리가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설명해야 할 때 나는 에베소서 1장을 펼친다. 이 안에 구원의 이유와 목적이 다 있다. 우리가 우리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릴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하여 오늘 말씀과 같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가령 누구의 어떤 일로 새로 만났을 때, 그렇게 저로 인하여 한동안 시달리듯 같이 씨름하다가, 어떤 결과로든지 그 마음이 진정이 되면 보인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에 따라 우리의 만남도 씨름도 같이 하거나 혹은 멀어지거나 ‘그 안에서 기업이 되’게 하시려고, 곧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곧 우리로 기도하게 하신다. 기도는 찬송이면서 찬송은 호흡이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 150:6).

 

이 놀라운 생의 원리에 따라 나는 이제 누구를 만나고 또는 그치거나 떠나가는 것을 흘러가게 둔다. 어떤 아쉬움도 서러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나 그러한 과정을 겪을 때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전 15:10, 고후 12:9).”

 

물론 그때마다 마음은 어려워서 나는 늘 내가 다 망치는 것 같다.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나 열에 아홉은 모두가 실패처럼 끝난다. 그 일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더 나은 것을 꿈꾸게 되는 것이었으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나는 이제 그리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어찌 하려던, 할 수 있다고 여기던 일에 대하여 그러한 마음을 흘려보낸다. 은혜와 평강은 신앙의 처음이면서 끝이다. 오늘 바울은 이를 기도하면서 시작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 하고 외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3-6).”

 

이를 한 단락으로 같이 읽고 묵상해야 온전하다.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이유와 목적은 그의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는 일이다. 이는 분명하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무엇으로 충만한가 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이 충만하심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곧 하나님과의 화평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여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10).” 이 복음으로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곧 우리의 복이라 하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이를 위하여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이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이와 같이 말씀으로 말씀을 따라 오늘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인정하게 된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다른 길은 없다. 그리스도가 답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란 표현은 무려 160번 이상을 사용하면서 바울은 끊임없이 전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만 36번이 반복되고 있다. ‘예수 안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역사는 이루어졌다. 저는 여호와시며 성령이시고 예수이시다. 이로써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19-20).” 그러므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백날 말하고 애원해도 안 되는 일에 대하여는, 그것으로 더욱 주를 부르며 바라는 것이었으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이 보화를 알면 알수록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를 얻고자 함이다. 우리의 복락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3-10).”

 

나는 할 수 없으나 나로 하게 하시는 이는 하실 수 있다. 고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하여 어떤 일에서, 혹은 누구와의 일로 내내 마음이 어려울 때 나는 주의 뜻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잘 될 때나 혹은 의욕적으로 어찌 하려 할 때는 잘 모른다. 결국은 일을 또 그르친 것 같고 내가 다 망친 것 같이 어떤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비로소 주가 행하신 것을 본다. 이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그럴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생각하기를 멈추고 주를 바란다는 것.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아니면 모든 일은 다 허사였다. ‘남은 자들’로 주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일도 하나님의 은혜로였다. 그렇듯 누구에 대해 마음을 주시는 이도, 이 마음을 거두시는 이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셨고, 주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 일은 어쩌다 그리 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1-13).”

 

즉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이 놀랍고도 은밀한, 감추어진 바 되었던 비밀을 알게 하시기까지 우리로 시달림을 겪게도 하신다.

 

주일 아침, 나는 누구를 생각하다, 어떤 일을 두고 마음을 쓰다, 다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궁극적인 이유였고 목적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이를 나로 인정하게 하시려고,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3:1).”

 

모든 다 때가 있었고 나는 그 가운데 한 과정이거나 어느 대목으로 족하였다. 저의 일에서나 나의 일에서 모든 시작과 끝은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다른 목적은 없다. 하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모든 게 다 주의 뜻 안에서였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그런 이유이었다.

 

하여,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8-10).”

 

실제 오늘 에베소서 1장은 모든 구절이 한 덩어리로 되어진 것 같다. 즉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1-12).” 하여 누구와 성경 공부를 할 때, 누구에게 우리의 믿음과 구원을 말해주어야 할 때 오늘 이 본문은 모든 성경을 담아내고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3-14).”

 

내 마음의 어떤 무거운 짐도 혹은 답답함도 모두 내려놓고,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 하여,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1-2).

 

할 때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5, 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