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아가서 8장 / 사랑의 완성

전봉석 2024. 4. 26. 10:33

240428 주일

 

아가서 8장

사랑의 완성

 

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 8:13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아 8: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들어가는 말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는 사랑을 갈구하며 산다. 어릴 때는 물론 어른이 되고 늙어서도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에덴에서 그 충만하였던 사랑을 잃고 난 후 우리 인류는 급기야 자기애(自己愛)에 빠져 산다. 모든 사랑의 기준이 자신이 되면서 더는 끝 간 데 없이 엽기적인 사랑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우리가 다루었던 아가서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랑을 회복시키고 잃어버린 사랑을 찾게 한다. 이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를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복음의 비밀’로 감추어두셨다.

 

주후 5년에 바울이 태어났다. 이후 유대교도로 살다 35년에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45년까지 안디옥교회의 전임사역을 감당하였고, 49년에 첫 서신서 갈라디아서신을 썼다. 51년에 데살로니가서를 쓰고, 55년에 고린도서를 썼다. 57년에 로마서를 쓰고, 이후 60년 이후부터 옥중서신을 썼다. 67년에 디모데전후서를 쓰고, 68년에 순교했다. 처음 서신서를 쓰던 49년에 저는 ‘십자가의 구속’을 ‘성령의 계시’로 새롭게 이해했다. 단순히 아담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의 보혈이 필요하였던 게 아니다.

 

이 복음은 주전 4114년에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전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이시다. 아담은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타락하였고, ‘죄의 삯은 사망’으로 십자가의 구속은 필연적이 되었다.

 

이 복음을 주후 51년에 데살로니가서를 쓰면서 한층 더 깊이를 더했다. 성령의 지혜로 바울은 이와 같은 십자가의 보혈이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표현하였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곧 이것은 ‘감추어졌던’ 복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었고, 구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죄 없으신 사람으로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다는 게 아니다! 이 ‘복음의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으로,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즉 실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구원은 완성되었다. 곧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그렇다면 ‘왜 여태껏 감추셨는가?’ 어린아이 때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 같이, 피조물인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의 사랑을 알게 어렵고, 자유의지로는 결국 죄를 선택함으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기까지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듯 ‘하나님의 뜻으로 그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 사랑’을 우리가 알고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러한 우리에게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5, 6).”

 

바울도 사울에서 개종 후 22년이 지나서야 ‘성령의 감동’으로 이를 깊이 알게 하셨다. 이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사람에 앞서 천사의 타락도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하여(겔 28:17),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마귀는 ‘파괴자 또는 분리자’로 세상에서 권세를 잡았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사 14:12-13).”

 

본문이해

 

1. 성숙한 사랑의 신분으로 자라가라(1-4)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아 8:1).” 하는 부분에서,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7:11).” 우리의 신분이 미숙하였었음을 알린다. 그러다 곧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아 8:2).” 여기에서 ‘석류즙’은 풍요와 번영을 상징한다(4:3). 곧 우리의 신분은 바뀌어서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아 8:3-4).” 안락한 곳에서 왕과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게 되었다. 사랑의 친밀함은 다정한 포옹과 안락한 품과 서로를 따듯하게 하는 행복으로 표현된다.

 

그때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하는 반복은(2:7, 3:5) 사랑이 진전될수록 다른 것에는 더 이상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랑의 깊이로 나아가기를 의미한다. 곧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우리가 사는 데 있어, 그 소원이 바뀌었다. 이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2.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자로 살라(5-10)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 8:6).”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릴 끊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우리 죄가 아무리 높고 깊다 해도,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그러므로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아 8:5).” ‘거친 들에서’ 곧 지금 우리는 저 본향으로 달려간다. 이를 ‘산고(産苦)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렘 48:41).” 하신 것 같이 “어머니가 고생한 곳”에서 ‘주가 나를 깨우셨다.’ 그러할 때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곧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사랑, 곧 <여호와의 불>을 끌 수 없다.

 

비록 미숙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아 8:8).” 아직은 부족하고 연약해도,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9-10).” 곧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다시 말해서 우리가 미처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이를 거절할 때도, 즉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놀라운 사랑의 결실이 우리의 믿음이었다.

 

그 은혜의 사랑을 받은 자로 자라갈 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6-17).” 하신 주의 말씀을 받아,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이를 두려워할 줄 알고 주를 경외함으로,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3.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사랑을 기억하라(11-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아 8:14).” 이에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하는 고백과 같이 솔로몬이 부럽지 않다.

 

“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아 8:12).” 솔로몬은 ‘바알하몬’ 곧 ‘무리 가운데의 바알’을 섬겼던 적도 있다.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아 8:11).” 그러나 저는 천을 얻고, 지키는 자는 이백을 얻으나 우리 앞에는 포도원이 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노래는 우리가 하나님과 누리게 될 사랑의 영광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아 8:13).” 우린 서로에게 이 사랑의 초대로 이끄는 노래를 한다. 곧 ‘신부의 고향’에서, 다시 말해 ‘우리의 본향’에서 영적으로 미성숙한 자들이나 신실한 자들이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다 함께 동참하게 됨은 우리의 부족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신 사랑의 은총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에 “나의 사랑하는 자야…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하고 노래한다.

 

곧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의 마음으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그러므로 우리의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복음’이시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나오는 말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전 2:10).” 지혜의 왕 솔로몬은 다 늙어 회개와 찬미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한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에 오늘은 우리의 영원한 날 가운데 한 날로, 날마다 또 영원히 드려지는 영적 예배의 학교이다. 연주자의 리허설이다. 이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는 고백이 드려지는 것이고,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시는 말씀으로 주의하여 오늘 이 하루하루의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