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1장 / 남은 자 사상

전봉석 2024. 5. 3. 12:12

240505 주일

 

이사야 1장

남은 자 사상

 

 

사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사 1: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사 1: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들어가는 말

 

이사야서는 성경 66권을 그대로 축약한 작은 성경이라 할 정도이다. 구약 39권과 같이 이사야서 39장까지는 <죄와 심판>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용서를 강조한다. 후반부의 27장은 신약 27권과 같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구속의 언약>이 담겨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선지자로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하신다’이다. 이사야의 글은 예수님도 인용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4-15).” 하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 6:9-10).” 인용된다.

 

본서는 주전 745년에서 680년에 활동하였던 이사야에 의해 쓰였다.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도 보았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시작으로 19명의 왕이 다스리다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다. 이어 남유다는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20명의 왕이 통치하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사야는 네 명의 왕을 거치면서 선지자로서 사역을 감당하였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사 1:1).”

 

-시대적 배경

 

당시 앗수르의 팽창으로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남유다 또한 멸망의 위기에 놓였다. 유다는 외교적으로 애굽의 도움을 구하였으나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아람과 연합하여 같은 민족 북이스라엘의 공격에 빌미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다는 앗수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종교적 배교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잦았다.

 

이때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자시다.’ 하는 이름의 뜻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먼저 이사야가 겪었던 네 명의 왕과 그 시대적 배경을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1. 웃시야(주전 791-739년): 웃시야는 남유다의 10대 왕으로 역대 왕들과 달리 신앙으로 주변 대적들을 물리치며 농경을 발전시켰다. 군대를 위해 무기를 예비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그러다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해지자, 제사장이 아닌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교만에 빠져 노년에 나병환자로 살았다.

 

2. 요담(750-731): 부왕인 웃시야가 나병환자가 되자, 요담은 이른 나이에 남유다의 11대 왕위에 올랐다. 부왕의 섭정 아래 통치를 시작한 요담은 평생 여호와의 신앙으로 통치하였다. 이사야가 소명을 받을 즈음에 요담은 독자적인 왕으로 통치를 시작하였는데, 극적으로 요담은 ‘호세아’, ‘미가’,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면서 통치하였다. 이는 신앙적으로 좋은 영향을 받았으나 저 또한 산당은 제거하지 못하였다.

 

3. 아하스(735-715): 12대 왕 아하스는 주변국의 혼란스런 시기에 통치를 시작했다. 급속도로 부강해진 앗수르가 주변국들을 점령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위치상 앗수르의 동쪽 바벨론도 패권을 놓고 앗수르와 강대강으로 맞서던 때였다.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북이스라엘은 결국 아람과 연합하여 앗수르에 맞서다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다. 그때 아하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반앗수르 연합전선에 가담하지 않아서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대신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위태로운 시국을 연명하였다. 심지어 제사장 우리야를 보내어 앗수르의 우상을 숭배하며, 인신제사를 가담시켰다. 그리고 이내 우상숭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까지 끌어들여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

 

4. 히스기야(728-687년): 우상숭배와 앗수르에 대한 조공을 바치는 나라로 전락한 유다는 13대 왕 히스기야의 개혁으로 잃었던 신앙을 회복한다. 초기 13년 동안은 부왕 아하스와 공동으로 통치를 하면서 무능한 정치를 펼쳤으나, 히스기야가 재위하고 6년 만에 북이스라엘이 패망하였다. 이를 토대로 히스기야는 과감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힘이 약한 유다는 애굽에 도움을 청하였고, 앗수르는 주전 701년에 산헤립을 앞세워 가공할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앗수르의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룻밤 사이에 궤멸하는 기적도 있었다. 이후 히스기야가 죽음의 병에 걸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연장된 생명 동안 히스기야는 방심하여 바벨론에 우호적으로 성전의 창고를 보여주어, 장차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또한 그 시기에 낳은 아들 므낫세가 다음 14대 왕이 되었는데, 결국 저는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 이사야는 남유다 멸망 100여 년을 앞서 순교당했다.

 

-본문이해

 

1.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을 합쳐 놓은 것 같다. 이사야는 주전 740년부터 680년 사이 유다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였다. 이사야서는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달하는 데 있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뜻한다. 이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저들은 ‘소와 나귀’만도 못한 자들로 전락하였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3).”

 

이에 하나님은 저들을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하는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라 하셨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경멸하여 멀리 물러가 패역하고, 거역하는 배교와 변절을 의미한다. 예레미야도 진술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9-11).” 이는 우리가 사는 동안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한 영혼’으로 살고 있음이다.

 

2. 조금 남은 생존자를 위하여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사 1:9).”

 

오늘까지 이 복음이 유지되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속 사역이 이어지는 것은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삿 7:3).” 즉 그때마다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왕하 19:30).” 하는 말씀처럼 오늘에도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사 37:32).” 하시는 것과 같이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곧 우리는 믿음의 계승자로 ‘남겨진 자들’이어야 한다. 여느 다른 믿는 자들과는 달리 설령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 12:17).” 시대는 점점 악하고 죄로 가득한 게 자연스럽다. 세상은 악하니까 세상이다. 그때에 ‘우리’는,

 

1) 행함으로 살리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6-17).”

 

이를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하였는데, 성경은 현실이고 말씀은 실제여서 야고보는 더욱 강하게 전파하였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26).”

 

2) 회개와 회복하심을 받으라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사 1:26-27).”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회복하라, 돌이오라 하신다. 성경의 기본적인 회침 같아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애 3:40).”고 한다. 회개는 후회나 반성이 아니라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주의 용서와 도우심을 바라는 것이다.

 

3) 용서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우리 죄가 아무리 무겁고 깊다 해도 주 앞에 이를 고하고 용서하심을 구하면, 우리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이를 명심하자. 그럴 때 주의 사랑은 지극하심으로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고, 무겁고, 높고, 깊다 해도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우리의 그 어떤 죄보다 더 주의 사랑이 충만하여서 높고 깊고 넓고 크심으로 다 용서하신다.

 

나오는 말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사 1:27).”

 

이사야는 이 놀라운 ‘남은 자’ 사상으로 우릴 권면한다. 권면은 곁으로 부르는 것이다. 남은 자로서 우린 이를 듣고, 돌이켜, 다시 또 일어나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곧 우리의 저력은 남은 자 사상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무려 열네 번이나 같은 단어로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들인 것을 일깨운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사 4:3, 7:22).”

 

우리 죄가 아무리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이에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다. 거절하고 배반하면 심판이 따를 것이다. 우리는 남은 자들로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 16: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