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2장 /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전봉석 2024. 5. 10. 10:35

240512 주일

 

이사야 2장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사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 2: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사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들어가는 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사 2:6).”

 

성경에 따라 우리의 역사는 주전 4천 년 전에 시작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이 언약하신 ‘원시복음 혹은 첫복음’은 주전 4114년이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 일이 4천 년이 흐른, 주후 4년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시면서 이루어졌다.

 

노아의 출생은 주전 3천 년, 아브라함은 주전 2천 년, 다윗은 주전 1천 년에 살았다. 신약시대는 이제 주후 2천 년이 넘었다. 주후 5백 년부터 1천5백 년까지 서방교회는 흥하다가 부패하였다. 이에 종교개혁과 개신교회가 성경의 세계를 확장하였다. 오늘 말씀은 그에 따라 만방이 ‘여호와의 전의 산’ 곧 시온산인 신약교회들로 우리는 ‘모든 산꼭대기’와 ‘모든 작은 산’ 즉 이방 나라들과 이방 종교들 위에 뛰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8).” 이에 우린 기도하며 대비한다. 이는 호세아의 예언과 같이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호 2:18).”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안 믿는 자들과 구분돼야 한다. 사회의 주류에 편승하려 저들의 문화를 따라 살기를 원하면 안 된다. 우리는 예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의롭게 하여 재림을 지연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저들과 같이 꿈꾸고, 점치고, 더불어 손을 잡고 언약한다. 이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하고 주님이 예언하셨다. 오늘 우리 사회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이 기이한 현상은 표징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이에 따른 주님의 경고(마 24:5-8)를 붙들고 오늘 우리가 가야 하는 길로 행하자.

 

1.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 곧 오늘 우리 사회와 믿음의 현장에 대해 전한 말씀이다. 동시대의 선지자 미가도 동일하게 전하길,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미 4:1).” 하여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일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후부터 ‘만물의 마지막’은 진행 중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요한도 ‘이것이 마지막 때’라고 한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이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

 

둘째, 세상의 악함을 보고 정의와 공의를 구해야 한다.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셋째, 천국을 사모함은 의와 평안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넷째,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다섯째, 하나님의 나라는 죄와 눈물과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없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2.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사 2:5).”

 

시편은 찬양하였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곧 우리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13).” 그러므로 우리는 빛으로 행하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째서 버림을 당했을까?

 

첫째, 저들은 우상을 숭배로 둘째 사망에 던져졌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둘째, 저들은 이방인들과 교제하였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셋째, 저들은 부유하여 하나님을 버렸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눅 18:25).”

 

넷째, 우상숭배는 교만 때문이다.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3-14).”

 

3. 여호와의 날에 그들이 낮이지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사 2:12).”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날은 가까웠다. 그 날에 모든 교만한 자들과 거만한 자들과 높여진 자들은 낮아질 것이다. 교만은 근본적인 죄이다. 교만은 ‘설마,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해’ 하는 따위로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우선한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교만이고, 교만은 자신을 높인다. 실상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자식도, 자신도, 자기가 속한 사회도 변화시킬 수 없다.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은 교만한 세상을 가리킨다.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은 세상의 권세다.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은 물질적 부요와 유행과 온갖 문화로 건설된 나라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 대해 오늘 말씀은 강력히 경고하신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사 2:17-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잠 6:16-19).” 이를 인정할 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8:13).” 결국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베전 5:5).”

 

나오는 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오늘 우리는 자기를 섬긴다. 사람을 섬긴다. 인맥을 중시하여 학연, 지연을 따지며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쓴다. 그러려면 권세 잡은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단호하게 이르신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 호흡은 코에 있어 수로 셀 가치도 없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치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그러므로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둘째,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모든 우상을 멸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셋째,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우리가 그 길을 행하리이다.’ 하는 고백이 오늘 우리로 말씀 가운데 살게 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