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4장 / 여호와의 싹

전봉석 2024. 5. 31. 10:30

240602 주일

 

이사야 4장

여호와의 싹

 

들어가는 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직접 유다를 제하시고 심판하셨음을 우린 지난 주일에 앞서 3장에서 살펴보았다. 죄로 인한 처절한 보응을 강조하는 데 있어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두 번, ‘여호와께서’ 두 번, ‘주께서’ 두 번… 본문은 직접 그 일을 행하심의 주체를 밝히고 있다. 오늘은 그와 상대적으로 ‘남은 자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소망의 약속이다.

 

이사야서 전반부(1-39장)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고, 후반부(40-66장)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서술하였다. 그런데 전반부에 속하는 오늘 4장은 후반부에서 드러날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소망’을 감동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한다. 구원 약속은 불변의 진리다. 온전히 메시야를 통해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구속되었다. 신약의 메시야 도래는 오늘 본문 2절, ‘여호와의 싹’으로 표현된다. ‘여호와의 싹’은 ‘다윗의 후손’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지칭한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사 4:2).”

 

오늘 본문은 6절로 된 짧은 내용이다. 그 가운데 1절은 3장에 이은 결말이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즉 이전에 고운 얼굴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던 ‘일곱 여자’들은 (하나님의 신부, 백성, 그리스도인들)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게도 ‘한 남자’ (세상, 세상 권세 잡은 자)를 향해 구걸하는 지경에까지 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여기서 ‘일곱’은 ‘허다하게 많은 수’를 뜻한다. ‘하나’는 모두가 개성을 강조하나 하나의 유행과 문화에 흡수된다. 그에 따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곧 당연하다는 듯 권리를 찾고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곧 결혼하여 아내가 되려는 여인처럼, ‘우리로 수치를 면케하라’ 스스로의 수치를 가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에 훗날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54:4)” 하여,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창 30:23).” 이에 시온의 부녀들(하나님의 자녀들)은 교만과 허영의 수치를 면케 해달라고 주 앞에 나아올 것이다.

 

본문이해

 

4장은 1절을 제외하고 다섯 구절로 된 단문이다. 1절의 심판의 결과에 대한 내용에 이어, 2-3절에서는 ‘여호와의 싹’으로 ‘남은 자’의 영광에 대해 알리고 있다. 4절에서는 ‘시온을 새롭게 정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5-6절에서는 ‘정화된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을 진술하고 있다. 이에 오늘 우리는 분명하고 불변하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1.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사 4:1).”

 

앞서도 잠시 설명한 것처럼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시온’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거룩함을 얻을 수 없다. 이 사실은 앞 부분(3장)에서 이미 다루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심판뿐이다. 그 수치와 모멸감으로 영원히 괴로워할 것이다. 이어 그에 따른 비약적인 구원으로 오늘의 소망은 놀랍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사 4:2).”

 

곧 구원은 인간의 도리와 노력과는 무관하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만 주어진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이는 결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그러므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3:16-4:1)과 예루살렘의 피(1:15-18)는 그리스도의 사역만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다. 이를 세례 요한은 외친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1-12).”

 

2. 구원은 궁극적으로 메시야의 속죄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2-3).”

 

‘여호와의 싹’ 곧 ‘그 땅의 소산’을 통하여 ‘남은 자들’이 구원의 영광에 참여한다. 이 말씀은 이사야 53장에서 증거하고 있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53:2).” 곧 세상적인 시각으로는 그러한데, 바로 그 ‘여호와의 싹’은 ‘거룩한 씨’이시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6:13).”

 

이는 모두 같은 의미로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 즉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킨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 그것은 ‘연한 순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이 자라날 것이다(52:2). 하여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5-6).” 그러므로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33:15-16).”

 

바로 이 ‘한 의로운 가지’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 3:8, 6:12).” 이에 하나님의 종이요, 여호와의 순(筍) 곧 싹으로 묘사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나셨다.

 

3. ‘남은 자를 통하여’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사 4:3-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광야 40년 동안의 광야 길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출 13:21-22, 민 9:14-23), 거듭되는 반역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성막에 임재하시며 끝까지 보호하셨다. 결국 ‘남은 자’에게 임할 영광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견고하게 지키신다는 것이다. 이에 ‘남은 자 사상’은 여러 곳에서 표현된다.

 

1장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장 20-22절,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11장 11절과 16절,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37장 4절과 31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뿐만 아니라, 미가 선지자 역시 남은 자에 대해 언급한다.

 

미가 2장 12절,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미 2:12).”

 

4장 6-7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5장 3절, 7-8절,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결론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사 4:5-6).”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선택한 사람들’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주의 ‘생명책에 기록’하여 하늘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6).” 이는 곧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단 12:1).” 이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그러므로 아직 안 믿는다 하여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 하여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첫째, 심판 중에도 남은 자를 남기신 것처럼 이 시대에도 동일하다(사 4:2-3). 우리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과연 자신은 ‘남은 자’로 살고 있는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데 있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둘째,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주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속죄함을 받는다(사 4:4). 이를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앞서 하박국 선지자도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셋째, 아직 죄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임재는 주의 백성 가운데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다(사 4:5-6절). 이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 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