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4-5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시 67:7
주신 상황으로 감사와 찬송을 올리며 살 수 있는 게 복이다. 어떠하든지 그 가운데서 주의 뜻을 헤아려 알고자 하는 마음은 주께로만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하실 때 이 일이 얼마나 어렵고 희소한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린 그 가난한 심령을 견디지 못해 대신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우상으로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누가복음에서 단지 ‘가난한 자’로 표현되는데(눅 6:20), 마태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덧붙임으로 영적인 문제로 이끌었다. 구약에서도 ‘가난한 자’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진다. 헬라어 ‘프토코스’ 즉 ‘가난한’의 의미는 히브리 단어 중 가장 중요한 ‘아나임’ 곧 ‘가난한 자’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부자나 권력이 있는 자는 자신의 힘을 의지해서 사회적 경제권을 획득하거나 수탈하여 사회적 억압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을 보유하고자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가난한 자’는 그럴 힘도 능력도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따른 시편의 간구함은 다양한 기도로 나온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시 37:14-1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40:17, 69:29).
이에 지혜자도 이르길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6:19).” 무엇이 옳은가를 말해준다. 이같이 ‘가난한 자’란 심령이 겸손하여 회개하는 자로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사 66:1).”
이로서 메시야로 오신 우리 주님 예수님도 ‘심령이 가난한 자’를 위해 오셨고, 가난한 자의 특성이 단순히 물질적인 궁핍의 차원에서 벗어나 영적인 문제로 그 정처 없음을 불쌍히 여기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에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단지 용기가 없거나 물질적으로 궁핍한 상황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로 인하여 그 영혼이 파탄(破綻)난 것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할 때 나오는 자백이,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
학대 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69:29, 70:5, 74:21).
그리하여,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습 3:12).” 하는 확신과 기쁨으로 살 때,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34:6, 34:18, 51:17).
이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 66:2).” 하고 약속하신다. 그럴 때 우리 안에 복이 있다. 이 복의 배경에는 모든 불행한 환경을 뒤로 하고 죄에 대한 인식과 불행을 완전히 벗어나서 오직 하나님으로만 감사가 넘쳐나는 복이다. 그것이 바로 ‘천국’이다. 즉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실 때,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와 그의 영토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그 복을 소유하고 사는 자로서는 이미 저의 오늘이 천국이다.
여기에서 천국은 더 나아가 우리가 장차 누릴 모든 특권과 내세의 영원한 축복을 내포한다. 천국은 우리의 노력의 대가와 보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으로 연결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거기에는 가난과 압제와 억압의 삶도 포함되어 그로 인하여 우린 비로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는 것이어서 이에 따른 주의할 점을 밝혀준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1-2).” 즉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미혹함을 받아 양심을 떠나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 곧 세상 권세 잡은 자의 것을 추구하고 바라며 그에 따른 삶으로 안주하고 만족하려는 ‘거짓말하는 자들’로 추락하는 것이다. 저들은 심령이 가난한 것을 견딜 수 없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67:7).
하신 이와 같은 원리를 우리가 버린 양심으로는 느낄 수 없다. 느낄 수 없는 화인 맞은 양심으로는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심령의 가난함을 견뎌낼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사명은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6).” 우리로 주의 제자 삼으심은 바로 이를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7).” 우리 스스로가 경건을 연마해야 한다.
경건은 믿음과 같이 선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느라 기를 쓰고 애쓰고 수고하는 성실함도 있으나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8).” 그러므로 오늘도 이처럼 주 앞에 앉고, 아이와 나눌 말씀(마 5:3)을 같이 놓고 묵상하며 먼저 연구하고 적용하는 것으로,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딤전 4:9).” 이와 같은 사실을 복으로 받아 여김이 복에 복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 구주 예수께서 오셨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10).” 우린 이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11).” 저는 누구신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곧 이처럼 하찮은 짐승도 엉성하나마 보금자리가 있는데, 세상의 주인이자 창조주이신 이가 이 땅에 오셔서 안식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시며 우리의 정처 없는 나그네 됨을 알게 하신다. ‘머리 둘 곳이 없다.’ 곧 영원하고 평안한 쉼, 안식이 있을 수 없는 이 땅에서의 고단하고 피곤한 삶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이 ‘절대적 가난’을 통해 예수께서 온 인류에게 충만한 안식과 쉼이 되실 것을 암시하고 내포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고 우릴 오라 하신다.
그럼에도 우린 차일피일 미루거나 거절한다. 당장은 집도 사고, 장가도 가고, 소도 다섯 겨리를 샀고… 그야말로 할 일이 많아 쉴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우리 주님이 우리 앞에서 가난하고 빈궁한 절대적 가난을 소유하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오늘 우리는 이로써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5-16).”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67:1-2).
우린 이를 간구한다.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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