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전봉석 2024. 5. 21. 03:58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 3:7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시 72:17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신앙 안에서 더욱 바르고자 할 때이다. 성도의 고난이 짙은 것은 종말이 그만큼 가까웠음을 알게 한다. 이때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 오늘 본문의 서두에서 나열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진술하고 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오늘 우리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한지,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사는지… 거룩하지 않고, 절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경건을 잃어버리고 자기 좋을 대로 살고 있는지…. 말씀 앞에서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없어 부끄럽다. 어제 점심께 전화로 성경공부를 하는 친구는 좀 어이없다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을 진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일대일 평신도 양육자 아무개 집사가 바람을 피워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상대는 누구인데 저 또한 가정이 있는 여집사로 늘 교회에서 헌신하고 열심이었던 사람들이라 다들 어안이 벙벙ㅎ하다고 하였다.

 

친구에겐 각별한 사람 중 하나여서 그 여파가 어떤가? 하고 물으니 좀 씁쓸하다고 했다. 그래도 일대일 양육으로 같이 성경공부하고 교제하며 자신을 교회에 뿌리내리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나는 저에게 다윗이 밧세바를 범할 때, 솔로몬이 자신에게 주신 지혜로 받아들였던 숱한 부인과 그에 따른 우상숭배에 대하여 말하였다. 우리가 그런 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볼 때 그 죄의 무게로 새삼 오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복이라는 사실도.

 

“네가 이것을 알라!”

 

하는 오늘 말씀의 환기로 고개를 들게 한다. 지금은 ‘고통하는 때’이다. 엄밀하게 말해 악하고 더러운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소돔과 고모라 성을 떠올리고, 노아의 때를 생각하며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알고 더욱 각별히 주의할 필요를 느낀다. 자고로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0-22).”

 

설마, 하고 안일할 때 그게 나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그러나 이와 같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우리가 각성하고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다.

 

그러한 일들… 우리를 난감하게 하는 우리 곁의 같은 동료요 믿음의 가족이었던 이의 어지러운 선택 앞에서 우린 되레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다잡아야 한다. 다윗도 어느 나른한 오후 한 눈에 훅, 갔다. 저는 그 상대가 유부녀인 것을 알았다. 지금 전쟁 중에 나가있는 신하 우리야의 아내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정에 이끌려 침실로 끌어들였다. 그렇듯 범하고 임신까지 하자, 다윗이 선택한 일이란 게 얼마나 야비하고 무서운 일이었는지 우린 잘 안다.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결국 그녀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저를 왕비로 들였던 것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일컬음을 받던 다윗도 한순간의 죄악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우린 스스로 그럴 리 없다고 자신을 자신할 수 없다. 죄가 늘 우리 발 앞에 있다.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 1:18-19).” 우린 오늘의 이러한 현상과 예전의 나를 돌아볼 때 통회와 자복으로 ‘애통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안이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3).”

 

결국은 경건의 모양만으로는 우리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 집사와 상대는 어찌 되었는지,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은 어떠한지… 말이 길어질수록 우리 곁의 어려운 영혼들의 그 상한 심령이 결국은 사랑의 와해와 가정의 붕괴로 자처한 일과 같은 것이어서, 섣불리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요 9:31).” 그러므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

 

허튼 데 마음 둘 새가 없다. 어떻다고 저들을 비판할 것도 아니다. 아차, 하는 순간도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을 명심함으로 늙어서도 바울과 같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그리하여 저로서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15:31).” 그게 곧 오늘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2-14).”

 

전화를 끊고 문득 생각난 사람처럼 선교여행을 다녀온 가정에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그래서 아이를 학교에 보낼 것인지를 물었다. 저는 지금 그대로 하겠다고 하였고 나로서는 더는 뭐라 이를 게 아니어서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누군 아이의 글쓰기를 위해서도 엄마가 먼저 묵상과 글쓰기로 자신을 돌보시라, 그리 권하였어도 ‘알약 먹기 싫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하는 말로 일관하여 결국 나 또한 더는 뭐라 권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멈추었다. 내게 두시는 시간으로 족하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럴 때 불쑥 이는 의문점이 이렇듯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날 거였으면 몇 년 혹은 몇 개월을 왜 그처럼 애태우게 하시는가, 하는 것인데…. 오늘의 이 모든 현상은 우리를 교육하고 바른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교재다. 세상이 악함으로 우린 선을 찾는다. 사람들의 죄 됨으로 우린 스스로를 회개한다. 돌아보아 자신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전혀 나을 게 없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주가 사랑하심으로 오늘의 나로 경건을 찾아가게 하시니,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 119:37).

 

우린 주 앞에 우리의 의지를 구해야 한다. 그리하려는 절제와 인내와 노력을 붙들고 잃지 말아야 한다.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잠 4:14-15).” 이와 같은 말씀과 오늘 우리 곁의 현상과 예전의 나 자신과 오늘도 다를 게 없는 내 안의 욕구를 감안하여,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스스로 살피고 떠나야 한다. 그런 의지가 필요하다. 주께 간구하는 힘이 거기에 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 3:6).”

 

죄는 실제 그리 요란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가만히 스며든다. 오늘 6절 이후의 말씀에도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6-7).” 그러니 우리가 항상 열심을 다해 교회에서 일하고, 경건하려 스스로 애쓴다 해도 주가 이를 다스리시지 않으면 한순간의 신기루 같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래서도 난 이제 난 아냐! 하고 함부로 자신하지 않는다. 늘 깨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그것이 단순하게 돈이면 돈, 성적인 유혹이면 유혹으로 단일한 것이 아니라 방심할 때, 스스로는 괜찮다고 여길 때 그 순간 나의 가장 간절함이 나로 걸려 넘어지게 할 수 있다. 그래서도 나는 성경공부를 할 때 저들에게 자주 하게 되는 말이 지금이 그 열심이 자신을 삼키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이른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전 7:16-17).” 하여 우리에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경외함이 우선인데,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왜냐하면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4).”

 

몸이 약하고,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어려움으로 속을 태울 때 오히려 우리가 오히려 기뻐하는 것은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그러니 어떤 어려움 혹은 오늘의 고난으로 우리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더는 어찌할 수 없고 뭐라 이를 수 없는 지점에서 나는 저들을 두고 주 앞에 아뢴다.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고하고 주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저들로 반드시 더 나은 주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구한다. 나는 여기까지이나 혹은 다시 연결하지 않으시면 더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두고 나의 한계로 주의 긍휼하심만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하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분명한 사실은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35).” 그러니 단지 누구 이야기가 아니다.

 

이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그러므로 이를 이길 힘은,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4, 16-17).”

 

하여,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72:5).

 

이는,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13-14).

 

이에,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18-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