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전봉석 2024. 5. 20. 05:14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시 71:23-24

 

 

말씀으로 붙들려 산다는 일은 군사와 같고 경기하는 자와 같고 농부와 같다. 군사는 그 명령에 순종하며, 경기하는 자는 그 규칙을 준수하며, 농부는 성실하여 농작물을 먼저 받는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 된 모든 여건과 상황 속에서 나는 군사와 같이 무던하며, 경기하는 자와 같이 꾸준하고, 농부와 같이 착실하여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때론 나의 연약한 육신으로 힘에 겨워할 때 마음은 저 혼자 어지러울 때도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이상하게 더 몸이 아프다. 동네 한 바퀴라도 산책을 나갔다 오는 게 힘이 들 때도 있고, 불안이 엄습하여 나를 옥죌 때도 있다. 그래서 주께 구하여도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하면 그 상황 속에서 묵묵히 주를 의뢰할 수 있기를. 몸살인지 어떤 건지 며칠은 아프고, 아픈 몸을 어르고 달래다 주 앞에 나 몰라라하듯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하는 말씀으로 아픈 것도 일이라 여겼다.

 

말씀을 전하고 이를 묵상하며 준행하는 데 따른 일은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 이에 따라 오늘 말씀은 우리로 굳게 서게 한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1-2).”

 

곧 이로써 우리 역시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9).” 주신 바 이 한 날에 이 한 몸을 이끌고 주의 길을 가는 일이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 25:13).” 이를 나는 목사 안수 때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증거로 들었다.

 

그때 속으로 내가 주께 여름 날의 시원한 얼음 냉수 같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후 아이들이 증발하듯 사라지고 같이 곁을 지킬 것 같던 이들이 모두 떠나가고, 지금도 다를 바 없이 혼자 늘 말씀 앞에서 간간히 주가 더하시는 한 영혼으로 씨름하면서… 이 길이 맞나? 싶을 때마다 되묻기를 주 앞에 나의 쓰임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나는 어떠하든지 주가 쓰기에 합당하기를. 하여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하면 지금의 이 일도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되묻고는 하는 것이다. 늘 아무런 성과도 어떤 가시적인 변화도 없는 듯한데, 노아는 어찌 그 긴 시간을 묵묵히 구원의 방주를 지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때마다 믿음의 길을 간 사람들을 묵상하며, 아브라함은 어찌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리 떠났고 가라 하시는 곳으로 갔을까? 야곱은? 모세나 다윗은… 하고 이어가며 저들을 생각하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 11:36-37).” 아, 그러면서도 어찌 이 길을 탈선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38-40).”

 

지금은 알 수 없고 막연하여 더러는 그 마음이 어려울 때도 묵묵히 그 길을 준행하며 가는 삶이었겠다. 그리하여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하는 믿음으로 굳게 설 수 있었다. 그러니까 생각과 달리 마음은 또는 몸은 전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면서 믿기지 않는 믿음으로 씨름하는 일이었을 테니….

 

마음은 종종 까부라지고 육신에 따른 고달픔은 여러 생각으로 시달리게 하지만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이와 같은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살 수 있을까? 이러면 저것이 힘들고, 저러면 이것으로 시달리는 게 사실인데… 어제 오후는 온 몸이 늘어지고 다 쑤시면서 힘에 겨워 시무룩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전 2:3).” 하는 오늘 말씀이 무거우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무거운 것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고 다행이다 싶은 것은 다른 길이 내게 없다는 데 있다. 나는 가끔 막다른 길 같은 오늘의 어떤 처지로 감사한다. 만일 다른 선택지가 있었으면 뭐라도 해보려 아등바등하지 않았을까? 오늘 바울은 복무하는 병사와 경기하는 자와 농부를 예로 들면서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4-6).” 이에 우리가 충성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7).”

 

말씀을 되새기며 이를 품고 사는 일이란,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9-10).” 이와 같은 확신과 믿음이 없이는 이 길을 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더는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없고 설마 그럴까 하여 주의하게 되는 것은 죽으나 사나 내가 주의 것이어서 참 감사하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힘들 때 혹은 마음은 어려울 때 나는 이제 이 말씀을 되뇌며 힘을 낸다. 그러므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하여 주의 뜻 안에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몸이 힘들어 마음은 어려운데 그럼에도 이처럼 또 하루를 주 앞으로 나를 끌어와 말씀 앞에 앉게 하시니,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 2:11-12).” 그러므로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13).” 나는 별 볼 일 없다 하나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15).” 하시는 말씀으로,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23).” 마음이 이는 여러 회의나 갈등을 등지고 선다.

 

그리고 시편의 삶으로,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시 71:1-2).

 

주를 의뢰함이 전부이다.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3, 5).

 

그러므로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9, 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