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전봉석 2024. 5. 27. 04:13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1-2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 78:72

 

 

돌이켜 신앙을 저버리는 이들을 향한 말씀이다. 저들로 예수가 누구신지, 하나님과 동등 된 만유의 주되심을 밝힌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이 모든 뜻을 알게 하셨는가를, 여러 모양과 그 형편에 따라 끊임없이 우리로 알게 하심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이를 오늘 시편으로 먼저 살펴보면,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시 78:38-39).

 

곧 주의 긍휼하심이 아니면 오늘 우린 이 모든 삶이 가능하였을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 3:1).” 하심을 누누이 강조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곧 저는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하고 우리로 그러하라 하신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20-21).” 이에 우리는 각자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시대를 맡은 자로 산다. 청지기로 세움 받았다. 이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그런데 우리가 돌아서 배교하거나 각기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맡은 바 청지기가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어서이다. 이 땅의 생각은 스스로의 주도적인 삶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묵상하며 적용하고 사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이를 알고 바른 길을 사모함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3-4).” 그렇게 우리의 구별됨은 분명하다. 우리 안에 두신 마음이 우리의 여러 생각과 그 행실을 다스리신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나의 마음은 나를 어지럽히기 일쑤지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그렇게 나는 나의 약한 육신 가운데서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 속에서 이를 안다. 주가 없으면 살 수 없음을, 그리하여 주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때론 이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것 같다. 나는 종종 아침에 이처럼 묵상하며 쓰는 글만큼만 나의 마음이 또는 주를 바람이 유지되고 흔들리지 아니하기를. 더러는 이 글이 나를 부끄럽게 하여 재촉하는 것도 같다.

 

내가 누구를 생각하는 일이나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주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려움을 통해서였다. 그렇듯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1-12).” 그러므로 말씀은 신비가 아니라 실전이다. 신앙은 다짐이 아니라 사는 일이다. 이것으로 우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구주를 영접함으로 나 역시 저와 한 몸을 이룬다.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다면 나는 온전히 주를 바람으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30).” 그리하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9-10).”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함은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그런 그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이 일보다 더 크고 기이한 일은 없다.

 

가끔 놀라워하는 일은 내 안의 믿음이 내 의지의 것이 아니어서이다. 내가 주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것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어서이다. 이를 예수님도 강조하심으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하신 이 놀랍고도 불가항력적인 은혜 앞에서, 나 같은 것을 왜…? 하는 의문이 들면서 감사만이 넘쳐날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으로 한 성인이 아니다. 하나님, 이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이시다.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 1:4-5).” 하시며 강조하는 저자의 안타까움을 알 것 같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6-8).”

 

말씀은 그 자체로 말씀이시다. 덧붙여 설명할 군더더기가 없다. 다만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신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5-16).” 나는 무어라 대답할까? 베드로와 같은 고백처럼? 혹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나를 인정하며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시다. 성경의 최고봉은 예수시다. 예수로만이 구원은 가능하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슥 13:1-2).” 그런 주의 이름을 나의 구주로 삼고 산다는 일은 놀랍다. 가끔 나는 누가 이런저런 논리로 교회를 떠나고 예수를 등질 때 저의 말의 설득력에 당할 수 없다.

 

이 세상을 살면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섬겨 산다는 일이란 게 얼마나 뜬금없고 허무맹랑한 일인지 안다. 나는 거의 평생을 아이들 글쓰기를 가르쳤다. 논술을 집중하기도 했다. 자기 소개서도 필요에 따라 가르쳤다. 그 논리는 하나다. 자신을 자신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치와 타당함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이다. 문학도 마치 허황된 상상의 나래 같으나 그렇지 않다. 글은 치밀하고 의도적인 허구이면서 동시에 사실을 비유한다. 그렇게 사고하는 훈련으로 살았다. 그러다 성경의 비논리와 어처구니없는 전개는 매번 혼란스럽다.

 

믿음으로가 아니면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아는 아무개도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성경을 늘 어려워! 하며 투덜거린다. 쉬운 성경 또는 그에 따른 현대판 예화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읽히지 않고 읽어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저의 어려워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믿을 수 없는데 믿어지는, 믿어지는 이 마음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설명할 수 없는 세계가 성경이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그러므로 만물을 보존하시고 섭리 가운데 운영하시는 이의 뜻을 따라,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6-7).” 이에 예수님은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이것이 오늘도 한 날의 생명을 연장하시고 나로 오늘 여기에 두시는 이유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7).” 그러므로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 1:9-10).” 오늘 말씀은 설득도 이해도 바라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선언이다.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1-14).” 이에 나는 시편으로 기도한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78:4).

 

이를 이름은,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7-8).

 

그들 곧 우리는 어떠한가?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7).

 

그러나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38-39).

 

하여,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7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