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전봉석 2024. 6. 10. 03:48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시 92:4-5

 

 

살면서 누구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을 수는 없겠다. 먼저는 눈이 보고 이를 느껴 마음으로 판단하는 법이고, 머리로는 판단하나 마음으로는 받아들이는 게 다른 것이어서… 우리의 이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고 주관적이다. 이에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 하시는 말씀에서 어려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의 행색이나 표정으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마음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엄히 말씀하길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이는 낮거나 천히 여겨지는 자에 대해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온전히 대할 것을 이르시는 말씀이다. 곧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결국 어려운 일이어서 두려운 마음으로 있는 나그네의 시간이었다. 곧 모든 다 지나간다.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후덕함은 세월에 밀려 바뀐다. 가끔은 나의 얼굴이 낯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 6:9).”

 

자신을 낫게 여길 때 남을 낮게 여긴다. 교만의 문제다. 우리가 주 앞에 모두 한 피조물이고 왔다 가는 길에서,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후 10:7).” 곧 우리가 누구를 대할 때 주의 마음으로 주를 대하는 듯 여겨서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데,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4).” 하시는 오늘 말씀으로 볼 때 우리의 판단은 우리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문제이었다. 결국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이 모든 게 주의 마음으로 아니면 불가능하고, 주가 내 안에 거하심의 증거가 된다. 직접적으로 나 역시 그러할 텐데, 나는 어려서부터 나환자촌이나 장애아동들이 생활하는 보육원을 가까이 하고 살았다. 저들의 외모나 그 삶의 질은 열악하여서 오감으로 저들을 순전하게 대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란 생각을 자주했다. 눈길이 꺼려지는 것이야 어찌 피한다 해도 냄새로 느껴지는 역겨움이나 어떤 불편함을 두고는 괜히 마음이 어렵기도 했다. 우리 형편 또한 다를 게 없으면서도 나는 친구네 집에 갈 때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그 역겨운 냄새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신기한 것은 그 시절을 그리워할 때 그 뭉근했던 어떤 구린내가 먼저 기억이 난다. 특히 정착촌에서의 3년 반 생활을 기억하는 단서는 양계 양돈을 대부분 하던 터라, 그 마을 앞에 내리면서부터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는 했다. 또 어떤 친구를 생각할 때면 늘 손에 닿을 때마다 느껴졌던 낯선 느낌이다. 등이 굽고 키가 작은 저를 어쩌다 손이 닿을 때 뭐라 표현하기 힘든 어떤 느낌으로 혼자 미안해하곤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말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받기란 쉽지 않다.

 

이런 본능적인 어떤 다름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성경은 의도적이고 계산적인 것을 일깨운다. 심지어 악의적인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을 말이다. 그런 우리의 본색을 아시는 주님은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29-31).” 남을 대하는 일에 있어 이와 같은 사명을 얹으셨다.

 

곧 우리의 의지로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섬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32-33).” 하시면서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34-35).” 이와 같은 사명으로 서로를 사랑하라 하셨다.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데 나는 간혹 비위가 상하고 어떤 느낌으로 먼저 꺼려하면서도 아닌 척, 괜찮은 척 하기 일쑤여서 자주 양심에 찔리고는 했다. 한데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주를 섬기는 듯하라 하심은 참으로 놀랍다. “…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2-23).” 사람을 사람 대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하심은 놀랍다.

 

선입견을 걷어내고 어떤 편견을 피하여 순수하게 저를 대하기란 그만큼 어렵다. 물론 본심을 숨기고 가령 저의 재물이나 어떤 권세를 알고 위선적으로 저에게 잘하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하고 하나님이 나를 어찌 사랑하셨는가를 일깨운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

 

그러므로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7-11).”

 

이처럼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를 업신여기고 차별하여 임의로 사람을 대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갑질’이란 게 그 사람 뒤에 대신 하나님을 공격적으로 함부로 대하는 일이어서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 22:21-22).” 위선적이지 않고 거짓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 일이란 저를 지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가능하다.

 

잠깐 어느 대형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데, 다른 것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협소한 주차공간을 위해 일찍 예배를 드리고 가장 혼잡한 시간에 주차요원으로 일하던 몇 분 영감님들이었다. 하대하듯 어디 세울 데 없나 하고 다소 함부로 대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구는 모 대학 학장이셨고, 누군 어디 사장이었다. 저들은 장로님들로 그런 궂은일을 자원하여 섬겼던 것이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요 7:24).” 그러니 살면서 대접 받길 좋아하고 남을 하대하기 일쑤인데 이를 온전히 하기란 주를 경외함으로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8-9).”

 

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13).” 내가 행한대로 내가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12).” 늘 주 앞에 서는 심정으로,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구를 대하고 그의 일에 마음을 다하는 일이 중요하였다. 가령 내가 ‘아픈 아이’를 생각하며 마주할 때, 때론 짜증이 혹은 어떤 편견이 나를 앞설 때가 있다. 함부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무심히 저의 말을 저지하거나 그 생각을 지레짐작으로 여기고 넘길 때면 아차, 싶어서 금세 마음을 다잡는다.

 

상대의 조리 없는 말고 두서없는 생각이 때론 나를 먼저 쥐고 가는 것이다. 이에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 그러므로 나의 나 됨을 인정하고 주 앞에 고하며 애통해하는 심정으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곧 말씀으로 나를 다잡아야 한다. 그 앞에 세워야 한다. 늘 염두에 두고 서야 한다. 나의 삶의 기준과 생각의 초점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데서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럴 때 한 차원 높은 시선과 마음과 오감으로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3-44).” 그러할 때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눅 6:32-33).”

 

그러므로 사람 마주하고 대하는 일 그 차제가 하나님을 마주하고 섬기는 일과 같았다. 고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마 5:7, 요일 4:17).”

 

이는 믿음의 일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약 2:18).” 곧 우리가 믿는다 하는 일은 어떤 느낌이나 막연한 선택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탄식하며 외친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20).” 내가 주를 믿는다 하면 이는 행함으로 나타나는데, 행함을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부터 그 본색이 드러나는 법이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5:29, 11:27-28).”

 

이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이는 곧,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이 아침, 나의 믿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2-3).

 

내가 주를 좋아하고 사랑함은,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4-5).

 

그리하여 이제 나는,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12-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