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전봉석 2024. 6. 13. 04:50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7-8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6

 

 

우리 곁의 아무개는 예수도 모르고 세상을 사는데 그 하는 일마다 형통하여 안 될 일도 잘 된다. 그런데 주 앞에 바로 살고자 하는 자로서 때론 이유 없이 찾아오는 어려움으로 마음이 요동을 친다. 이에 누군들 흔들리지 않을까?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 73:2-9).

 

그런데 말씀은 부한 자들에게 경고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약 5:1).” 심지어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눅 18:25).” 세상을 살면서 저들을 부러워하는 게 당연하고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 길을 가야 하는 데 있어 마음이 힘들기도 하다.

 

여기서 ‘부한 자들’이란 하나님 없이도 그 마음이 흡족하여 세상 것으로 충분한 자들이다. 우린 이 땅에 청지기로 보내심을 받았지 주인으로 보내심을 받은 게 아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하여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시 58:1, 101:1).

 

우리가 사는 동안 자신에게 선포하고 그 곁의 사랑하는 자들을 향해 외쳐야 하는 파수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부한 자들’로 그와 같은 일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넉넉하거나 적당하여서 다른 데 기웃거리며 하나님의 뜻은 뒷전이다. 그런 우리에게 ‘울고 통곡하라’ 하신다.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겔 21:6).” 예수님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마 5:3-6).

 

우리로 어찌 이와 같이 불리한 자리를 고집하게 하시는 것일까? 이를 오늘 말씀으로 비춰보면,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2-3).” 우리가 추구하고 소유하고 살고자 하는 것들이 녹이 슬었고 좀 먹어서 말세에 쌓은 재물이었다. 어느 가까운 날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누가 읽으라며 책을 주었는데 ‘요즘 교회 트렌드’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받은 책을 두고 펼치지도 못했다. 제목이 주는 어떤 가치에 대해 순간 그와 같은 시점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밀려들어서 말이다. 누군 이렇게 누군 저렇게… 하면서 교회의 여러 모습을 내게 말한다. 보기에 그러지 못하고 있어 교인들이 없고 교회는 제구실을 못하는 것 같아서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바울의 고백을 다시 들어보면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어떠하든지 나는 묵묵히 이 자리를 지키는 것, 더러는 흉작이고 소출이 여의치 않다 해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어떤 결과로 이 시대는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이라서, 덩달아 일희일비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한데,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 1:11-12).”

 

사도들의 증언은 일관되어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7-19).” 이는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으로 동일하게 그리할 것을 이르신다.

 

그럼에도 사느라 사는 일에 급급하여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그 결국은 참혹하여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9-10).” 곧 오늘 우리의 수고와 그 소득이 곧이어 허무할 것을. 이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8-9).”

 

족한 줄 알기 위하여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이 명료한 원리는 지혜자의 것으로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가능하였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그러므로 우리의 자세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주신 날에 충성하는 일은 그리 주신 이를 바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그러므로 이어 경계하게 하심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그러려니 세상을 기웃거리고 세상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저들이 쫓는 일에 덩달아서 달려들어야 하는 것이어서,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109:4).

 

세상과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분리되어야 하는 것으로 교회까지 시대정신을 운운하며 오늘날 사람들의 기호를 좇아 추구하는 일이 과연 옳을까? 성경은 엄히 말씀하시길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곧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 2:26-27).”

 

어느 시대나 교회는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함께 기도하며 주를 바라는 것으로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20).” 세상이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요즘은 어떠니 하면서 이 시대를 좇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이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이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95:1-2).

 

다른 무엇을 위한 게 아니라,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3, 6).

 

곧,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