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전봉석 2024. 6. 25. 03:39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시 107:43

 

 

꺼려지고 마음에 부담이 되는 일이 있다. 한 영혼을 두고 내가 가까이 하려 할 때 저의 이런저런 사정이 나를 어렵게 한다. 이를 주께 기도하며 주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게 신앙이다. 그런데 우리로 어렵게 하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속하지 못한 영들’의 농간이다. 오늘 요한은 이를 두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우릴 부른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는 것,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있는지 혹은 없는지… 우리 곁을 맴도는 미혹하는 영들도 그러하겠지만 우리 안의 여러 생각들도 그러하다. 어떤 이를 두고 그 마음이 저를 품으려 하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음을 어렵게 할 때, 오늘 요한은 사랑으로 이를 점검할 수 있게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좋아하는 일과는 사뭇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린 좋아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이로 대신 하는데, 좋은 건 자신의 기준에서 자신을 만족스럽게 하는 일이다. 사랑은 더러 그렇지 않아서 마음을 더 어렵게 하고 나로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이 가는 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이에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것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마음에 갈등이 생기고 좋은 마음보다 싫은 마음이 더 큰데도 그리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우리 안에 두시는 이를 인정하는 일,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일은 그렇게 어렵거나 피하고만 싶다. 실은 누구라도 스스로의 주체적인 감정을 원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 우선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저를 두고 하나님의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이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결국 사랑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다. 나의 선택이나 선호하는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우선하는 일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고로 우리가 사랑한다는 일을 요한은 말하길,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내가 받은 사랑이 크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을 사랑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싫은 마음도 이겨낸다. 그로 인해 부담스럽다. 성가시고 귀찮다. 마음이 어려워서 몸도 안다. 몸의 여러 증상이 마음의 일로 드러난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우리가 주를 믿고 주의 은혜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이와 같아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다른 이름으로가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이것으로 우리에게 주신 일을 안다. 궁극적으로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일은 그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인데,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 15:2).”

 

사랑은 내가 주를 믿음으로 이행할 수 있다. 늘 기도하기는 주의 마음으로, 주의 사랑으로 한 영혼을 마주대하기를. 가령 누구 일로 혹은 어느 아이가 온다고 할 때, 나의 불편함과 원치 않는 마음을 뒤로 하는 일이 앞으로 나아가 주의 행하심에 참여하게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나 그의 이런저런 일을 같이 짊어진다는 것에서도 내가 주를 사랑함으로 이를 행할 수 있는 것이어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고로 우리는 이긴다. 우리 자신의 여러 생각과 미뤄두고자 하는 마음도 이겨낸다. 그러할 때 내가 주를 사랑하고 주가 나를 사랑하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여기서의 관점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인데, 우리를 사랑할 수 없을 때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멀리하며 살던 때이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이다. 곧 우리가 그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한다면, 우린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없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그런 가운데 있는 나를 먼저 사랑하심인데,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늘 나를 둘러싼 마귀가 틈을 노린다. 기회를 엿보다 우는 사자처럼 낚아채가려 한다. 내 안의 어떤 불편함이 한 영혼을 사랑하는 데 있어 걸림이 될 때,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을 생각하게 하심인데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요일 2:7-8).”

 

말씀 앞에 나를 세울 때 나의 불편함, 싫은 감정, 주저하고 꺼려지는 일에 대하여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5).”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인내는 같이 다닌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나로 인내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요한은 이를 우리에게 알려주려 한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사랑이 아니면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겠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이 모든 게 인내를 가져야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 6:4, 13:5, 31:16).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주의 사랑이 아니었으면 이미 죽어 마땅하였을 것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오늘 나로 한 영혼을 사랑하게 하심은 나의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요한의 서신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1).” 이와 같은 마땅한 일을 주저하고 꺼려할 때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사랑을 부정하는 일이어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주의 마음으로 대하고, 주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시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나는 하기 싫고 할 수 없으나 나로 하게 하심은 주의 마음으로인데,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하여 저로 오늘과 같이 삶을 허비하지 않고, 자기 안의 어떤 노여움으로 그 분을 이기지 못해 힘에 겨워하지 않도록… 나는 누구의 일을 두고 얘기하다 저가 아픈 것임을. 저의 영혼이 상한 것임을. 그 한 영혼을 우리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히 여기심을.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이처럼 담대히 주를 사랑하고 주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것임을. 이 모든 게 사랑의 빚진 자로 살고 있는 것임을…. 선뜻 나서기 힘들고 자진하여 ‘나를 보내소서.’ 하기 어려운 마음을 뒤로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이에,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107:43).

 

하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2).”

 

이 놀라운 사랑의 순환구조로 오늘도 이 세상은 평안하다. 우린 할 수 없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13).” 내가 하겠나이다, 할 때에 주의 영이 나로 함께 하심을 우리가 안다.

 

내달에 선교 일정이 잡힌 아무개의 사정은 딱하다. 예민하여 밖에 나가면 설사를 하고, 두 개의 고관절이 인공관절이라 좌변식이 아니면 쭈그려 앉을 수도 없고 자칫 관절이 틀어져 심한 고통이 따를 것이 두려운데도… 저의 이런저런 사정을 듣다, 그럼에도 말씀에 의지하여 참여한다고 하니 그 마음이 놀라웠다. 이를 오늘 요한의 설명으로 이해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일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담대함으로였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17).” 이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18).”

 

고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그러므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107:1-3).

 

하여,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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