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5-16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 105:3-4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고,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이겠다. 그런데 예수를 사랑한다 하면서 세상도 같이 사랑하는 일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사랑함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행함에 있어서도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22).” 나름 주의 이름으로 한다고 하면서 이를 나타내어 자신의 의를 구하고 세상의 권세를 누렸다면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3).”
우리의 온전한 믿음이란 주의 기쁨으로 사는 일이어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이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11).” 주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놓고 볼 때 오늘 말씀은 일러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4-5).” 그러므로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6).”
말씀이 말씀으로 이어지면서 오늘의 우리 가는 길로 연결된다. 길은 이어져서 넓어졌다 좁아졌다 할지라도 한 길로 이어져,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이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이에 오늘 말씀도 한 목소리를 낸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주를 사랑함이어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
주신 삶에서 길이 안 보이는 것 같아 막연할 때도 주가 예비하신 길은 있다. 누구의 어려움이 나는 더러 저의 길을 내는 안개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로 인하여 잃었던 신앙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이가 아이 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예전에 잃어버린 주의 긍휼하심 앞에 엎드리게 된다. 보면 참 그 공식이 하나같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정서적인 문제로 정신과적인 치료를 위해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으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자기 분에 못 이겨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버리거나 벽에 가서 섰다가 가만히 다시 와서 책장을 넘길 때는 어리둥절해진다. 이런저런 사연을 듣다 저들 부모가 교회를 떠났다는 데서 아, 하고 신음하듯 어떤 울림이 튀어나온다.
얼마쯤 더 지나야 주 앞에 돌이킬 수 있을까? 세상을 사랑한다 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주를 믿는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의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예수를 의지한다고 하면서 정작 사람들의 이목과 집중에 더 관심을 두고 살았던 것을 돌아보면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알 것도 같다. 자식 일에 눈물짓는 부모에게 저들의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여도 그 마음이 너무 완고하여졌다. 우리가 예수를 떠나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기어이 어떤 고통 가운데서 깨닫는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
그러는 동안 아이는 암울한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기까지 앓는다. 약이 늘고 행동은 어눌하여 스스로도 힘에 겨운 생을 살아가야 한다. 이에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20).”
가장 최악의 경우는 이내 찍혀 불에 던져지고 난 뒤이다. 이 땅에서의 일은 그러므로 아직 최악은 아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로 신음하며 산다 해도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기회는 있다. 보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아픈 아이들이 많다. 마음을 앓는 영혼의 상한 심령이 많다. 예전에도 늘 있었겠으나 그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한 영혼을 사랑하면서 저마다 우리 모두 상한 심령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므로 성경은 외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하여,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빌 1:21-22).”
이에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23-24).”
이 둘 사이에 낀 삶으로 우리는 더러 신음한다. 세상은 모두 평안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 속을 조금만 들춰봐도 저마다의 영혼은 병들었거나 상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감사가 무너지면 그 안에 여러 철학이 들어와 우릴 쥐고 흔들기 십상이어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8).”
그러므로 오늘 나이 많은 요한은 일러,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요일 2:7-8).” 하여 우리는 누구도 몰랐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평안하다 할 때에 그와 같은 평안이 우리로 병들게 한다. 다들 아이들 일로 신음하는 것을 보다 내가 주 안에서 복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자녀들에게 고하길,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12).” 또한 아비들에게 고하길,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13).” 이어서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고하기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15).”
때가 참 악하다. 아차, 하다 순식간에 너무 멀리 휩쓸려 간다. 이에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18).” 우린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두려움으로 주를 경외함을 복으로 여긴다.
성경의 숨결로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호흡할 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하여 나는 누구에게 성경공부를 권하고 같이 성경을 나누다 내가 더 감사하고 은혜로 찬송하게 된다. 어제도 친구와 통화하다 이런 내용으로 내가 복이 많음을 인정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나의 죄가 사하심을 받았다는 데서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아, 나의 부끄러운 지난날도 주를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친구나 가족의 경우 너무 나를 잘 아는 터라, 더러는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 막히는 부분이 있곤 하는데… 나의 연약함이 이를 상쇄한다.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으로 저를 대하고 저의 어려운 일을 같이 슬퍼하거나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그 힘이 있다. 우리 안의 울림은 눅눅하여 바짝 마르지 못했을 때 멀리 가지 못하고 안으로 감긴다. 그러나 주의 빛으로 바짝 말라서 소리는 맑고 울림은 깊다. 깊고 맑은 소리는 멀리까지 간다. 지난날 나의 어려움이 혹은 슬픔이 나로 하여금 주를 더욱 바라게 하듯이 누구의 어떤 사연이 나로 저와 함께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하여,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0-12).”
그러므로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이는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29).”
이에,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 105: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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