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전봉석 2024. 7. 2. 04:00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시 114:1-2

 

 

사데 교회는 두아디라에서 동남쪽으로 4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사데는 옛 루디아의 수도요 양모와 염색 공업의 중심지다. 이교의 여신 시벨레 숭배의 요지였고, 쾌락주의의 온상이었다.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칭찬의 말씀이 없다. 책망뿐이다.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할 때 평판은 있으나 죽은 교회이다.

 

이러할 때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 하고 야단치셨다. 하루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에게 살았으나 죽었다고 하듯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사데 교회는 그와 같았다.

 

저들에게 경고하신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2-3).” 회개의 영이 필요하다. 회개는 후회나 반성이 아니다. 영적 괴사 상태에도 오늘에 남은 것은 생명의 잔재가 남아 있다.

 

잠에서 깨어나듯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자신들의 피곤한 손을 들고 연약한 무릎을 강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2-13).”

 

그런 가운데서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 3:4).” 이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 1:23).” 이에,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또한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하고 우리를 일깨우심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고 성경은 약속하셨다(암 3:3-4, 5-6, 7).

 

그러므로 우린 부름 받은 부름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하시는 말씀 앞에서 산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하나님을 아는 데에서 자라간다. “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0-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살전 2:12).”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 1:5).”

 

사데 교회에 있는 ‘옷을 더럽히지 않는 자 몇 명’이 합당한 자라고 불린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감사와 헌신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삶으로, 합당함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 은혜에 표현되는 삶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이렇게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이 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2-33).”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눅 12:8-9).”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데에서 남동쪽으로 48킬로미터 정도에 위치하였다. 빌라델비아는 포도를 재배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디오니소스 숭배의 중심지였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책망의 말씀이 하나도 없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7-8).”

 

이는 우리로 부르신 이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하신다. 그러할 때,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16, 22).”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이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그러므로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하시고,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11, 12).”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임명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예수께서 우리에게 본이 되심으로 그 나라의 보좌는 영원하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이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

 

이를 붙들고 굳건할 때,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

 

하여 바울은,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이기는 자에게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3:6, 27:4).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이에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말씀하신다(14).

 

라오디게아 지역은 양모와 금융업이 발달하여 여느 지역보다 부유하였다. 주후 60년에 대지진의 혼란 속에서도 자체적으로 지역 상권을 유지하고 로마 황제의 지원을 거절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도 의지하기보다 자신들의 부와 능력을 자생하면서 배금부의가 팽배하였다. 마치 어느 부자의 낙관론처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1).” 그러나 성경은 이르시길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스스로 뭐나 된 줄 알 때 그 삶은 적당하다. 간절하지 않다. 절박한 줄 모른다. 이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오늘 말씀은 눈 먼 자 같은 저들을 꾸짖으신다. 그래도 계속 그러하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16).” 그러므로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 이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9).”

 

우리가 살면서 악한 것에 대해서는 경계할 수 있으나 미지근한 자신에게는 무뎌진다. 적당하다는 게 무서운 이유다. 이는 우리가 주를 섬긴다고 하면서 세상도 같이 섬기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이런 자들, 하나님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교회를 다녀도 그만 안 다녀도 그만인 자를 하나님을 증오하신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사 29:13-14).”

 

이에,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15).” 그러할 때 우리의 어리석음은 끝 간 데 없다. 그런 우리에게 주의 인자하심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하시고,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1).” 이와 같은 약속으로 오늘도 나를 말씀 앞에 앉히시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2).” 하신다. 부디,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114: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