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9장 / 여호와의 열심

전봉석 2024. 7. 11. 17:29

240714 주일

 

이사야 9장

여호와의 열심

 

사 9: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들어가는 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7-18).”

 

우리는 주의 정한 날에 특별한 자들이다. 이는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7).” 곧 주의 정한 날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①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②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③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4-8).”

 

이는 오늘 우리의 현상과 같이,

 

“때가 이르리니 ①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②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③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하시는 말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본문에 앞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 가지 은총’을 먼저 다루고자 한다.

 

첫째, 일반은총

 

모든 삼라만상에 주신 자연의 혜택과 우리 육신의 탁월한 복원 능력과 다른 피조물과 달리 우리가 지닌 유능한 지능과 지식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셨다. 왜냐하면 그들로 훗날에 하나님 곧 신(神) 중의 신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곧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

 

바울은 돌이켜 회심하고 22년이 지난 뒤에 로마서를 썼다. 주후 35년에 다메섹에서 주를 만나고, 57년에 이 놀라운 복음의 깊이를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았다. 그런 뒤 바울은 세상을 향해 선포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2-23).” 참으로 개탄스럽다.

 

둘째, 특별은총

 

우리들로 하나님을 믿고 구속하심과 부르심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신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곧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선물로 값없이 얻은 믿음으로 우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그런데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4:6, 6:6).”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30).”

 

하시며,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하며 성도들이 온전하기를 시대마다 요구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겼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셨다가 용서하시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셨다.

 

셋째, 불가항력적인 은총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곳곳에 두셨다. 하나님은 일방적이고 강권하심으로 저들을 세우셨고, 주의 거룩하신 뜻을 이어오게 하셨다. 이를 바울도 개정 후 22년이 되어 깨달았다.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앞서 이스라엘 선조들을 가리켜 고백하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3-5).”

 

곧 그 시대마다 남겨두신 이들이 있었다.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이 그러하고, 모세나 여호수아, 다윗도 이와 같다. 하나님은 임의로 불가항력적인 은총을 베풀어 ‘남은 자’를 두셨고, 이를 바울은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6).” 하고 이들이 불가항력적인 은총으로 그 시대를 지켰음을 알게 한다. 하여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7-18).” 하며 누가 오늘 우리의 믿음의 주체이신가를 알게 한다.

 

본문이해

 

이러한 은총의 토대 위에 ‘이스라엘’의 회복에 따른 이사야의 예언이 메시아를 보내시는 데 있어 이는 <여호와의 열심>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①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②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③ 모사라, ④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⑥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한 아기’는 메시아의 인성을 가리킨다. 메시아께서 한 사람으로 탄생하셨다. 저는 ‘기묘자’ 곧 놀라우신 분으로 그의 신성을 나타낸다. 그의 성육신과 탄생은 이어지는 그의 기적과 부활 승천 등으로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저는 또한 ‘모사’라, 곧 우리의 ‘상담자’라 할 수 있어 지혜를 나타내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특히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하나님의 영원성과 성부 하나님과 하나 되심을 그의 사랑과 생명의 근원을 알게 한다.

 

또한 저는 ‘평강의 왕’으로 그 어깨에 정사(政事) 곧 통치권을 가지셨고,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시다. 이는 다윗의 왕위에 앉아 ‘그의 나라’를 굳건하게 세우시고 이후로도 영원토록 보존하시는 통치다. 그의 통치는 자기 백성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으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고 예언하고 있다.

 

이는 이루어져 오늘 우리는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를 정리하여 크게 두 단락으로 첫째, 예수님의 탄생과 둘째,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로 축약할 수 있다.

 

1.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1-7)

 

1) 예수님은 흑암 중에 있는 우리에게 참 빛으로 오셨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2).” 이를 후일에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하고 밝혔다.

 

이사야는 예언하길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사 9:3-4).” 하고 우리가 눌린 어둠, 곧 우리 죄의 값을 대신 지셨음을 알게 한다.

 

2)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셨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먼저 설명하였듯이 그는 놀라우신 분으로, 우리의 가는 길에 모사 곧 상담자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리실 것이다. 그는 참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가진 인격체로 곧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3)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세상 무엇에도 평강은 없다. 평강은 하나님의 의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이에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곧 우리의 평강, 참 쉼을 위해 주님은 손을 내미신다. 십자가로 대속하사 이 평강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면 현재의 삶이 어떠하든지, 평강을 누릴 것이다.

 

2.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8-21)

 

1) 우리가 교만할 때 하나님은 이를 꺾으신다.

“주께서 …말씀을 보내시며 … 임하게 하셨은즉…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사 9:8-10).”

 

그러할 때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앗수르’와 ‘아람’과 ‘블레셋’과 같은 질병과 실패와 좌절과 낙심을 일으켜서 우리의 교만을 치실 것이다. 우리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그러므로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그렇듯 우리의 교만은 짙고 무거워서 12, 17, 21절에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경고하신다.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이 백성이 모두 경건하지 아니하며 악을 행하며 모든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장정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교만은 죄악이며 멸망의 길이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스스로 옳다 여기는 한 하나님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징계하심으로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신다. “이 백성이 모두 경건하지 아니하며 악을 행하며 모든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장정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사 9:17).”

 

2) 우리를 미혹케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앞서도 살핀 바, 때가 가까울수록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이 그리로 끌려간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 불경건함과 무지함과 완악함과 어리석음을 분별하기가 점점 모호하고 어렵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실수와 죄’는 엄연히 다르다. 죄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옳다 여기는 한 하나님과 자신의 뜻은 충돌하여 그 삶은 고달프거나 방종할 것이다. 하나님의 방임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가장 큰 저주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이 모든 그릇된 가운데도 불구하고 우리로 십자가의 대속을 받게 하셨다. 그리고 의와 평강을 덧입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열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신자에 머물지 않고, 성도로, 성도에서 제자로 더욱 더 자라가기를 불가항력적으로 이끄신다. 이에 오늘 이사야는 수 백 년 전에 이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과 우릴 위해 대속의 은총을 덧입게 하실 것을 알리면서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