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전봉석 2024. 7. 25. 02:3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6-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시 132:7

 

 

죄가 항상 우리 문에 엎드렸다. 들고 날 때마다 죄는 틈을 노린다. 인류의 첫 살인에 앞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를 다스리게 하셨다. 그럼에도 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동생 아벨을 죽였다. 이후 유리하는 삶을 살게 하셨다. 하나님을 아는 데서 따로 떨어져서 괴리함으로 분리된 자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한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격리되었다. 그 원인이 예배였다는 데서 다소 의아하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창 4:3-4).”

 

어쩌다 아벨의 것은 받으시고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는지, 어쩌다 에서는 버림을 당하고 야곱은 택함을 받은 것인지… 우린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지 못한다. 오늘 본문으로 추론하기를 ‘양의 첫 새끼’를 바친 아벨의 정성을 받으셨다고 하고, ‘땅의 소산’으로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다고 하기에는 다소 설명이 부족하다. 그런데 다시 보면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는 부분으로 이미 그리 정하신 바를 알 것도 같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우리가 드리는 예배, 그 제사에 대하여 다윗이 죄를 짓고 회개하며 진술하는 시가 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6).

 

어제 친구는 이 부분의 의미를 물었다. 정말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실까? 이는 실제 하나님께서 ‘제사’ 곧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으로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의식적으로만 그리 행하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의미다. 저는 죄를 지었고, 이에 회개하는 자리에서 이를 깨달았고 다시 이 기쁨을 회복시켜주시기를 구하였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4).

 

여기서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 앞에 엎드려 주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을 바란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1:1, 71:2).

 

이로써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그러니 우리 믿음의 문제이다.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징벌을 면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그의 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의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의’에 대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하였다. 그러한 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때에 드려지는 제사-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심으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이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 1:11).”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그러므로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 5:21-22).” 하심이 오늘 가인과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이다. 양을 제물로 바치지 않아서도 아니고, 땅의 소산으로 드려서도 아니다.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24).”

 

오늘 가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그의 길을 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시는 말씀처럼 우리 자신이 곧 드려질 제물이 되어 매순간의 삶이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한다.

 

친구는 또 묻기를,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1:4).

 

어찌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았던 것에 대한 사죄가 없는가? 하는 것인데, 죄는 인간에 대한 것이기에 앞서 하나님께 대한 의미이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 12:13).” 하였던 것에 대하여 다윗은 이어 자신의 죄로 인하여 혹여 백성들이 받은 고통에 대하여 주께 아뢰었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51:18).

 

이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시온’에 선을 행하여 주시기를, ‘주의 은택으로’ 그리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은택은 ‘기뻐하다’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의 백성들을 자신의 죄로부터 ‘친절하게 받아들이다’ 곧 주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시온에 선을 행하여 주시기를 말이다.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할 때 밧세바와 간통하고 우리아를 살해한 자신의 죄악의 결과로 백성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징벌이 내려지지 않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시온은 실제 예루살렘 동쪽의 구릉지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저들을 둘러 싸고 있는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하고 아뢴다. 곧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구하는 것이다. 나의 죄는 모두의 죄가 될 수 있어서, 곧 이웃에 대한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죄이다. 이를 돌아보며 인정할 때,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51:8).

 

할 때, ‘주께서 꺾으신 뼈’는 죄책으로 눌린 우리의 영혼의 실상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죄는 ‘영적 고통’이 지대하다. 이와 같은 표현의 간구는 여러 곳에 나온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6:2).

 

그리하실 때 우리가 회복되어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 내 뼈가 견고하다는 것,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렘 23:9).” 죄로 인한 죄책감은 우리 영혼을 ‘뼈가 떨리게’ 하는 고통으로, 우리 영혼이 뼈가 꺾임 같이 ‘짓이김을 당하여’ 육체로나 정신으로 무너져 죄를 깊이 뉘우칠 때 주의 이름 앞에 엎드리게 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10).

 

오늘 가인과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하여, 후에 저의 4대 손 라멕의 진술에서 그 악함을 증거하고 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23-24).” 참으로 겁을 상실한 이와 같은 교만 앞에서 치를 떨게 된다. 그러니 어제 친구와 나눈 다윗의 회개 시편에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1:12).

 

하는 이 절규가 가슴에 뜨겁게 와 닿는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구할 때,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10).” 하심을 찬송한다. 하나님은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 32:27).”

 

오전 일찍 아이가 출근하기 전에 줌으로나마 마주앉아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것과 점심께 친구는 식사를 서둘러 하고 3, 40분씩 전화로나마 말씀을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에서 동일한 은혜가 귀하다. 우리는 우리의 형편과 사정 속에서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없으심을 인정하게 된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 42:2).”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아, 이 놀라운 은혜의 자리까지 저마다의 아픔과 그 외로움으로 힘에 겨우나 그러면서 주의 뜻을 알게 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여,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104:24).

 

오늘의 나, 이 모든 환경과 여건 속에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이와 같은 찬송과 기도로,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132:7-8).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3-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