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 5:2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저를 사람이라 이르신 뒤 홍수심판으로 그 사람을 멸하시기까지의 사람의 족보가 기록되었다. 아담에서 노아에게 이르시기까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여준다. 곧 아담에게서 난 자들은 다 죄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고 그를 사람이라 하셨다. 아담은 자기의 형상과 같은 사람을 낳았다. 이에 따른 계통발생은 개체발생을 하여 아담은 하나님의 인격을 닮고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인격을 닮았다.
하나님의 형상과 아담의 형상의 차이를 사람의 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아담의 형상은 죄에 의해 파괴된 사람의 형상으로 그의 자손을 낳았고, 죽었다. 성경은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는 데는 그 때문이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사람의 형상으로 태어난 자들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이를 더욱 축약하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아담 안에서 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이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러므로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이에 솔로몬은,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
이어서 바울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하고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알린다. 죄의 결과로 사람은 누구나 죽고 병든다. 누구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오늘 이어지는 아담의 계보에서도 낳고, 죽고 이를 반복한다. 곧 아담의 죄로 사람의 후손은 누구나 죽음을 숙명으로 맞이한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고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죽음은 필연적이고 이어지는 심판 또한 그러하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1-15).”
이에 따른 결과로 오늘 우리는 순종을 산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5-17).” 이러한 역사의 순환을 살펴볼 때,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89:48).
이에,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 3:20-21).”
그러므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결국 아담도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다.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말씀은 결코 허투루 버려지지 않는 것으로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하신 말씀과 같이 ‘사람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을 주셨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15).”
이로써,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은 말씀으로 오셨고 말씀 가운데 거하신다. 그 말씀을 성취하시고 곧 또 이루실 것이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이는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기도 하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어제는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는 부분에 대해, 이는 조건이 아니라 은혜를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함 받은 것만큼 우리 또한 우리가 서로 사하여 주는 것으로 받은 은혜는 사함을 받은 죄와 비례한다.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길 때 더러는 그 의미가 이해하기 어렵다 해도 마치 아이가 본능적으로 엄마의 품을 찾듯 우리 믿는 자는 주를 바란다. 그리하여 오늘도 말씀 앞에 나를 먼저 앉힘으로,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119:160).
이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하시는 주의 말씀에 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이 모든 말씀은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왔으며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창 5:21-23).” 이를 증거 하여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곧 저의 믿음은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그 심판의 말씀을 상기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었다.
곧 우리에게 죽음에서 구원이 있음을 알려준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19-20).”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로 세상이 아무리 미쳐 날 뛴다 해도 그 안에 ‘남겨진 자’는 있었으니,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0-21).”
이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로 오늘도 나로 하여금 주 앞에 나아와 말씀 앞에 앉게 하심으로 확신한다. 왜 나를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하고, 왜 하필 나 같은 죄인인가? 하는 데서 나는 주의 은혜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19-21).”
이에 오늘은 항상 천국에서의 첫 날이 되어 주를 간절히 바라게 한다. 주기도문의 한 대목을 질문하던 친구에게 자신이 받은 은혜의 정도를 가늠해보라고 숙제를 주었다. 여기에는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나 논리적인 사고가 따를 수 없다. 그리 느껴져 내 은혜가 큰 것으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우리 죄가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그보다 더 주의 사랑과 은혜는 크고 높고 깊고 길다.
이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그러므로 세상 그 어떤 기적보다 더 신비하고 놀라운 게 우리가 주를 믿는 일이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죄의 무게나 크기만큼 우리가 받은 은혜도 확장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렇게 어제는 말씀을 같이 나누다 우리가 이와 같이 주의 한 사랑 안에서 그의 은혜를 감격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고 되물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그러므로 우리의 사귐은 주의 은혜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복되다.
우리가 이처럼 말씀 안에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33:1).
이 은혜가 감격스러워,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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