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 7:17
야곱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 라반의 곳으로 도주한다. 무려 20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야 한다. 이는 마치 우리 인생의 한 단면 같다. 우리로 천국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상에서의 연단이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 같이 말이다. 처음에 리브가의 생각처럼 ‘몇 날 동안’의 시간이 아니었다.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창 27:44).” 이는 또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광야에서 40년을 연단 받아야 했던 시간과도 중첩된다.
내 안의 죄성은 이와 같이 긴 세월을 통한 연마가 필요하다. 이 시간은 시련이면서 동시에 연단이다. 우리로 성화를 이루게 하는 시간으로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이에,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 13:9).”
이와 같이 어떤 어려움으로 우리는 주를 바란다. 그런 가운데 매순간이 주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안다. 이는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이것으로 더욱 확실해진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우린 우리 나름의 어떤 생각과 판단으로 무엇을 임의로 결정하는 것 같지만 그와 같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살아계셨다. 때론 내 생각과 달라서 그것으로 힘들도 지칠 때도 있지만…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이로써 하나님만이 나의 구주이심을 인정하게 된다.
가끔 누구에 의해 또는 어떤 일로 지난날을 떠올리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제 드는 생각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와 함께 하셨던 주의 은혜로 내가 오늘 여기에 이른 것을 알게 된다.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고 그 앞에 순복하고 순종하게 된다.
오늘 말씀은 저에게 더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놀라운 세계를 확신하게 한다. 이에 이삭은 야곱에게 복을 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28:3-4).”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신 27:10).”
하여,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5-6).”
우리로 복종하게 하시는 바, 족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시려 하심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수시로 내 안에 이는 어떤 어려움을 두고 씨름한다. 늘 어디가 불편하거나 아픈 가운데 짜증을 삼가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주님께 인내를 구한다. 특히 요즘은 주사치료로 아픈 부위를 풀어가는데, 이게 더 고통스럽고 두렵다. 어제도 무릎에 주사를 맞으면서 끝내 목에 맞아야 하는 주사는 다음으로 미뤘다.
잠시 초음파실에 누워 의사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나의 고단한 육신을 두고 주께 아뢰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공포스러운 어떤 순간에도 나는 그래서도 주를 더욱 찾는다. 이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하시는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이 내 것이라 확신한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문득 어떤 서러움으로 마음이 어렵다가 무심히 켜게 된 TV프로에서 한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과정을 보았다. 무려 열여덟 시간을 진통을 겪다 아이를 출산하고 눈물짓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시간은 산고의 시간이다.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사 26:17).” 우리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려고 주의 섭리 가운데 두신 시간이다. 하여,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주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느 9:37-38).”
우린 오늘을 이방인과 같이 여기에 머문다. 나그네와 같이 지나갈 따름이다. 이에,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3-4).
그렇게 주의 긍휼하심을 바랄 수 있는 자리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잠 14:8).” 오늘 여기서 에서의 서글픈 노력을 보게 된다. 저는 아버지 야곱이 이삭에게 이르는 말씀을 들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창 28:6).” 이에 저는 인위적으로 자신도 그리 행하려 한다.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8-9).”
그 마음이 순수하지 못할 때 눈치를 보듯 곁눈질로 따라하게 되는데, 저의 선택이 오히려 서글프다. 이기적인 목적을 감추어 저 역시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고는 있다. 앞서 그가 스스로 이방 여인을 아내로 두어 그 부모의 근심이 되었던 것을 생각한다. 저의 후회의 눈물이 안타깝기도 하다.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창 27:34).”
뒤늦은 후회와 순수하지 못한 선택은 저의 어리석음을 한층 더 부각시킬 뿐이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2:17).” 회개의 기회마저 후회나 자신의 요령으로 채우고 나면 더는 방도가 없다. 같은 죄를 짓고도 유다는 목을 매고 자살하였고, 베드로는 깊이 울며 회개하였다. 후회가 회개의 차이는 너무 크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 1:23).”
책망을 받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복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하여 많은 사람은 노아의 때와 같이 혹은 소돔이 멸망하기까지 이를 외면하여 농담으로나 듣는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이와 같이 내가 묵상을 글로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병원 대기실에서 혹은 물리치료를 받을 때, 나는 이를 열고 다시 읽는다. 읽으면서 이어지는 성경구절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다. 단지 쓰고 마는 게 아니라, 어려울 때 내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시간으로 주의 도움을 더욱 더 간절하게 바란다. 하여,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9-10).
다윗의 참회가 나의 소리로 올리는 회개가 된다. 그렇듯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우리가 아직 살아서 사는 날에 겪는 어려움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은혜이다. 그리하여,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1-22).”
이에 우린 주 앞에 다짐하고 다시 또 마음을 다잡는다.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로 벧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1-14).”
이와 같은 놀라운 언약의 말씀으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15).”
이에 야곱은 깨닫고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16-19).”
그리고 서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1-22).”
이에 오늘도 주의 말씀으로 확신한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139:8).
하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나의 남은 날들은 온전히 주를 바라며 주만 의지하기를….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7:10, 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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