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전봉석 2024. 8. 16. 03:13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창 26:32-33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 5:7

 

 

언약의 말씀을 계승하고 사는 삶이란 영원히 지속되고 완성될 날을 이어간다. 그런 가운데 세상에서 우린 실족하기도 한다. 생에 있어 ‘극심한 흉년’은 더러 우릴 좌절시킨다. 가령 누가 기도부탁을 하여 새로 어디에 취직하려 하는데 좋은 소식이 있기를 구하였다. 저로서는 늘 억울한 것이 가는 곳마다 이상하게 사람들의 괴롭힘을 받는다. 때론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어서 참다보면 어느새 견디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난번에도 그 전에도 그런 까닭으로 피하듯 옮긴 것이라, 한편으론 마음이 어렵고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우리가 주만 바라고 산다는 일은 오늘 이삭의 우물과 같이 더러는 억울한 일이 연거푸 일어나도 그에 따라 순응하는 것으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우린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음으로 그와 같은 때에도 묵묵히 물러난다. 내 것으로 여기면 싸우게 되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이면 주께서 또한 상대하실 것이다.

 

세상을 사는 동안은 진정한 평화란 없다. 늘 어디가 아프거나 무슨 문제가 일거나 휘말리게 되어 고단할 따름인데,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주가 주시는 평안으로 산다. 우린 그리 사는 사람들이다. 그때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세상을 두고 나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 땅의 것은 모든 게 다 지나가는 것이어서 젊음도 건강도 돈도 명예도 어느 것 하나 이를 붙들고 의지할 게 못된다. 공교롭게도 주의 은혜가 임하실 때 죄의 유혹도 같이 따라온다. 마치 주의 은혜를 받을만한가 보려는 듯… 그때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내가 어찌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의 주장과 의지로 나설 게 아니다. 보면 늘 자기주장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이다.

 

이삭을 향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상기시키신다. 때는 흉년이 들어 어려운데,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창 26:2-5).”

 

주가 내게 주시하시는 땅에 거주하면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신다. 곧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이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주어진 한 날의 수고가 그날로 족하여 우린 매일의 은혜로 산다.

 

그럼에도 죄의 뿌리와 같이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 속이며 당면한 현실을 모면하려 하였다. 이를 두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9-11).” 결국 어려움의 절반은 죄의 뿌리를 다 뽑지 못하고 사는 까닭으로 얻는다. 어쩔 수 없는 게 마음이기는 하여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9-20).”

 

꾀를 낸다고 내면 그것이 화가 되어 돌아오거나 다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울의 절규도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3).” 마치 더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느새 혈기가 또 짜증이 나를 짓누르기 마련이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4-25).”

 

나의 이 어쩔 수 없음을 주 앞에 내려놓고 사는 일이란 매일 매순간의 은혜로 사는 일이다. 오늘 하루도 이만하면 됐다. 이번 달도 주의 은혜로 교회가 이어지고 나의 연약한 육신을 끌고 내게 맡기시는 그때마다의 한 영혼으로 기도한다. 저를 위해 기도하다보면 나의 기도가 되었다. 거짓은 드러나고 진실은 밝히 빛난다. 어느 것도 감추고 살 수 없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하신 이와 같은 말씀을 항상 되새기며,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 130:30).

 

항상 주 앞에 서는 일처럼 생각도 마음도 나의 한 날의 수고도 주의 이름으로 감당할 때에 그때마다 주가 이루시는 것을 목격한다. 주가 채우시고 또 돌보시며 나로 항상 주만 의지하게 하려하심으로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눅 12:2).” 주 앞에 서는 일처럼 더욱 투명하고 선명하게,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이를 알면서 나의 모든 것은 공유된다. 핸드폰부터 시작해서 이메일이나 무슨 계정도 다 가족들이 모르는 게 없다. 그러면 불편할 줄 알았는데 개인적이고 사적인 게 없을 때 드러남으로 자유로웠다. 이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그 외에 다른 무엇에 대하여도 나의 소유권을 주장할 일이 없다. 그러다보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전에 같으면 서운하고 억울하기도 했을 일인데 전혀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누가 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려니 그냥 그러라고 두는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내 소유를 주장하지 않을 때,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잠 27:2).”

 

하면,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7-8).”

 

이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4).”

 

오늘 우리로 이와 같은 삶을 살게 하시려고 주가 이루신 구원의 삶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더러는 당장의 현실을 모면하려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꾀’를 내기도 하지만 우물을 빼앗기고 돌아서서 다시 우물을 파고 또 빼앗기고도 다시 우물을 팔 수 있는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까닭이었다.

 

결국 그러한 일로 우린 더 부지런히 주를 찾고 바란다. 게으리지 않고 다시 시작하듯 주의 이름을 부른다. 이에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잠 13:4-5).” 이 차이는 거저 생기는 게 아니었다. 다만 주를 바랄 때,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더러는 우리의 억울함이 또는 연약하여 늘 당하는 듯한 면구스러움이 우리로 주의 사랑을 입고 사는 것을 드러낸다. 같이 대대거리며 옳고 그름을 따져 이긴들, 저들은 어떤 경우에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사과나 반성을 할 줄 모른다. 그런 자들을 싸워 이긴들? 세상은 본래 그런 것이어서 우린 그런 모습으로 나를 돌아보아 나 역시 다를 게 없는 부분에서 절규하며 주 앞에 아뢰는 것이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결국 주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삶이란 또한 한 날의 수고와 같이 한 날의 은혜로, 오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한다. ‘오늘도 무사히’ 한 날이 수고로 족하였다. 눈을 뜨고 교회로 달려오고 말씀 앞에 나를 앉히고, 어디 힘들고 연약한 부분으로 힘들어할 때도 그 순간의 고통으로 신음하기보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루가 지나고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린 후 잠자리에 누웠을 때, 저절로 내 입에서는 주께 감사와 찬송이 나온다. 그리할 수 있도록 더러는 흉년이 또는 나의 거짓이 위협적이나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나는 그와 같은 하루 몫의 만나로 주께 더 의뢰하고 나를 낮추어 감사와 순종을 배운다. 그때마다 천사를 보내어 나를 놀라운 역사 가운데 세우시는 것을 보면서, 아!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나의 사소함 가운데서도 더러는 그것이 힘에 겨워 지칠 때도 있는데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우리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언약의 날이 있었으니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6-17).” 그러므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18).”

 

이에 오늘도 주신 한 날의 수고나 고통보다 이를 통하여 확신하게 되는 주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그러므로 함께 가자, 우울한 영혼이여!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 5:1-2).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3, 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