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4
하란에 도착한 야곱은 라헬을 사랑한다. 그곳에서 무려 20년을 지체하면서 자녀들을 낳는다. 레아는 상대적으로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에 하나님은 그의 태를 열어 자녀를 먼저 주셨다. 그녀에게서 유다가 나고 레위도 낳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은 역동적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이란 일반적이지 않다. 야곱은 벧엘에서 서원한 후 길을 떠났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20-22).”
하나님은 우리의 이와 같은 ‘서원’을 기다리신다. 우리가 주를 사랑함으로 주께 서원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하여 우리가 온 마음으로 주께 구하는 것이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이때에,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10).”
그리하여,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 16:11, 30:10).
우린 주로 바란다. 주께 구하는 삶으로 역동적이다. 남들은 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린 우리의 타는 목마름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찾는다. 이에 주님은 이르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그러므로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우린 이 말씀을 받아 주 앞에 나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단지 살면서 사는 데 따른 어떤 목마름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답답한 갈급함을 느낄 때,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곧 오늘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음으로 주의 말씀 앞에 선다. 곧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곧 현세의 ‘에덴’이다. 우리 개개인에게 가장 적당하며 그에 따른 주의 뜻에 의하여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곧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그러므로 우린 말씀을 묵상하며 그것이 오늘의 나의 터전 위에 뿌리내기를 구한다. 이에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주일 아침, 아이가 여덟 시에 출발하겠다더니 여덟 시에 왔다. 회사 일을 두고 말하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나의 몰이해는 지적장애와 정신장애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새삼 돌아보게 된다. 누구의 어떤 일을 듣거나 그에 관여할 때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14:40).”
더러는 알려하지 않고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이유다. 왜냐하면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4).”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본다는 것은 같이 그 짐을 나눠지는 일이다. 왜 말씀은 이런 일에 ‘품위 있게 하라’ 하시는지 알겠다. 내 생각이 앞서지도 저의 생각이 막무가내로 다가오게도 해서는 안 된다. 그에 따른 질서가 품위다. ‘먼저와 나중의 원리’는 신중함에 있다. 자칫 마음이 앞서 한 발 더 다가서다 일을 그르치거나 조심하다 그저 한 발 뒤로 물러나 방관자가 될 수도 있다.
서로를 돌아보아 ‘주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말씀에서 나의 생각과 판단을 더욱 주의한다. 이는 역설적이어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하여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2).” 이는 늘 되돌아온다. 누구를 겨냥하여 뭐라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아 주의 뜻을 우선하는 게 그래서도 중요하였다. 그러므로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이게 참 어렵다. 아이와의 대화에서나 지난 주 누구의 일을 두고 생각해도 같다. 나름 신중하게 주 앞에 아뢰며 무엇을 권할 때 돌아오는 저의 말이나 행동으로 실망하기 십상이다. 누구나 자기 일에 있어서는 객관적이기 어려워서, 더욱이 주의 뜻을 먼저 구한다는 것이 남의 일을 두고는 그리 훈계할 수 있는데 자신에게 적용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오늘 말씀에서도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하나님은 사랑 받지 못하는 레아를 돌아보셨다. 야곱은 자신의 사랑을 얻기까지 나름의 수고를 하였으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주가 인도하심으로 우리 삶은 전개된다. 오늘의 ‘에덴’은 저마다 가장 좋은 약속의 땅이다. 이에,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저는 누구신가? 나의 구속자시요 거룩하신 이시다. 이를 인정하는 데서 유익이 따른다. 그러므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79).”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길로 옳다 여기며 살다가 무엇에 걸려 넘어져서야 한다. 때론 이와 같은 일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 같은데 이 또한 처음 사람 아담의 에덴 이후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숙명이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희생도 따른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데도 그러한데 하물며,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는,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 2:4).”
하심과 같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 12:30, 33).”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심을 바탕으로 주의 마음으로 주의 사랑을 가지고,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14).” 이와 같은 말씀으로 오늘 야곱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묵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누구의 어떤 일을 두고 주 앞에 더 아뢰고 고함은 이를 위해서이다. 그럴 때 더러는 나의 어려움이 나로 실족하게 할 수 있으나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비록… 어떠하다 해도’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하여 오늘도 주 앞에 앉는다. 말씀 앞에 먼저 고개를 숙인다. 이는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하는 원리와 같이 나는 무엇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할 수 있는지를 항상 주의한다. 이에,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 하는 것은 주의 사랑을 더욱 구하고 바라는 것으로,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86:17).
이로써 산 증거가 되기를….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3).”
주를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삶이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하여,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100:3).
그러므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8:1).
이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4).
때로는 송구하고 항상 감사할 뿐이어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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