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 43:14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시 22:27-28
우리가 느끼는 영적인 갈망이 있다. 누가 오후께 전화를 하여 저녁 예배가 있는가 물었다. 나는 같은 층과 위, 아래층으로 교회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영적 갈망이 우리로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그것이 고통이거나 누구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영적 갈증일 때, 우리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한다. 다른 신이나 나름의 노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1-12).”
이로써 우리를 배타적이라 해도 우리는 타협할 수 없다. 우리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영적 기근이 때로는 복이다. 그러므로 주께 의탁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야곱의 탄식과 수긍함으로 알게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 43:14).”
비로소 잃게 되면 잃으리라, 하는 자리에서 주를 온전히 의지할 뿐이다. 그렇게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그렇게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에 승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3).”
이를 우리가 간절히 갈망하기까지, 야곱이 평생 라헬을 사랑함으로 요셉과 베냐민에게 향하였던 사랑이 그 자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시기와 질투가 되고 미움이 되어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까지 했는가를 알게 한다. 진정 우리가 원하는 바,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기근을 마련하셨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를 바라게 하시려고,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 그러할 때 우리는 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어제 오후 저녁예배를 드리려 한다며 교회를 찾던 이가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처럼 마음에 남기는 하였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우연 같이 아니 운명처럼 우리 곁에 두시는 ‘한 영혼’이 있다. 얼마 동안 머물거나 오래 같이 동행하거나 서로는 서로에게 주께로 향하는 데 있어 유익이 된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주께 의탁하는 일은 욥의 간절함 같이 주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지금의 어떤 간절함보다 더 갈망함으로 주를 인정하는 데서 나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것이어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데서 참된 소망을 가진다. 그렇게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오늘 말씀은 야곱이 결국 요셉을 잃고 갑절로 애지중지하던 베냐민을 그 형제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면서 주 앞에 달관하여 이르는 것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 43:14).” 한다. 곧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시편의 찬송과 같이,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그렇게 욥은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실 것을 알면서 주를 신뢰할 것이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 앞에서 ‘우리가 우리 됨’을 인정할 때에 비로소 감사와 찬송이 나온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22:6, 9).
이 모든 게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결국 우리는 우리의 갈망함으로 사망에서 의에 이르는데, 죄의 종에서 순종의 종으로 나아간다. 오늘 야곱의 결단과 같이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하는 부분은 결국 하나님만을 의뢰함으로 가능하였다.
나름은 포기할 수 없고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어떤 마지막 우리의 지푸라기까지도 하나님 앞에 의뢰함으로 ‘야곱의 결단’과 같이 또는 ‘에스더의 결단’처럼,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6).” 하는 하나님께로만 우리의 중심을 두게 하신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 같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어느 날 나는 이와 같은 때를 지나 주 앞에 두 손을 들었다. 어려서부터 내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 남모를 애착과 집착이 죄였다. 그것이 아집이었고 교만이었다. 그것으로 주를 멀리하며 심지어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몇 차례 주의 뜻을 저버릴 때마다 십 수 년씩의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이것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나의 완고함을 무너뜨리시는 데 있어 물질을, 건강을, 자식을 차례로 무너뜨리시고 급기야 공황이 왔을 때도… 두 손 들고 주께 항복하며,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잃으면 잃으리라’ 하는 마음이었을까?
결국 그렇게 3년을 신대원을 마치고 목사고시에 두 번이나 낙방하고도 나의 그때 심정이 에스더와 같이 혹은 다니엘의 친구들과 같이… 최종 면접을 하던 연세 지긋한 목사님이 인성검사에서 불안과 우울이 평균보다 훨씬 높은 이유로 또 낙방을 시켜야 할 때 물었다. ‘다시 하실 겁니까?’ 그때 나의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네! 더는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목사 안수를 받고 나는 지금도 종종 그리 되새긴다.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은 ‘막장’인 것 같으나 결국은 그 담을 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결단이시기도 하였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대신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시는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렇게 해서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 5:15).”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데서 하나님은 길을 여신다. 나로서는 이와 같은 간증이 앞서 나의 죄악 된 날들 또한 은혜 가운데서 살아왔음을 인정하게 한다. 오늘도 내가 어쩔 수 없는 나를 두고 주 앞에 엎드리면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이내 내가 주를 사랑한 게 아니라, 주가 나를 사랑하셨음을. 그로 인하여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33:21).
그렇듯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5-7).” 하루, 하루가 전부이다. 마치 오늘까지만 사는 사람처럼 주를 의지하면서 한 걸음씩 또는 한 마디의 찬송으로,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전 11:5).” 알 수 없는 일을 두고 앞서 불안이 또는 염려가 나를 주관하지 못하더록.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하여,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그렇듯이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그러할 때,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그렇게 나는 언제부턴가 일찍 잠이 들었다가 몇 시에 눈을 뜨든지 몸을 일으켜 주 앞으로 나아온다. 그 시간이 언제이든지 이와 같이 먼저 말씀 앞에 나를 앉힌다. 그리고 주신 한 날의 수고로 주를 의지한다. 외람되나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오직 나는 주를 바람으로,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살전 2:12).” 하여,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오늘 야곱의 마음은 자포자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주께 모두 맡김으로 자신의 수고와 그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를 인정하는 데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그저 믿음뿐, 오직 예수뿐, 다만 성령으로…….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6-17).”
이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내 것이라 여겼던 물질을, 건강을, 시간을, 사랑을, 사람을 주 앞에 모두 맡길 때,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9-10).”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그러므로,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곧,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2:27-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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