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 44:1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20여년 만에 형들을 만난 요셉은 저들을 시험함으로 갈등을 고조시킨다. 형제간의 우애를 확인하기 위해 저들로 입을 열어 주 앞에 자신들의 죄를 고하게 한다.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창 44:16).”
요셉이 계획된 은잔의 시험과 이를 통해 베냐민에 대한 형들의 우애를 확인한다. 이에 유다가 탄원을 하는 부분이다. 즉 유다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베냐민을 보호하여 아버지 야곱에게 행한 약속을 지키려 한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43:9).”
유다의 이와 같은 진술로 요셉은 크게 감동한다. 이로써 형제들 간에 가로놓였던 갈등과 긴장과 반목의 벽을 무너뜨린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와 같은 갈등구조는 의외로 그 본색이 구차하다. 이혼의 대부분 사유가 성격차이로 사귈 때 좋았던 사이가 무색하게 살면서 드는 감정이 골이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에 대하여 이를 하나님 앞에서 해소하는 서로의 고백과 직고는 유익이 있다. 이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고로 서로에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이는 내가 받은 주의 은혜가 있음으로 내 곁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의 사랑으로 대한다. 나의 사랑으로는 다할 수 없어도 주의 권능 안에서 주의 사랑으로는 가능하다.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인간적인 욕구를 참으심으로,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고난의 본이 되셨다. 우리 안에서 참고 견디는 인내로 우리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이와 같은 마음으로 인내한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의아한 내용이 있다. 요셉은 출중한 학문이나 군사력을 가지고 애굽을 장악한 게 아니다. 저는 주의 이름으로 ‘꿈을 풀이’ 하는 데 있었다. 당시 애굽은 특히 상층 계급의 점술에 대한 신뢰는 강하였다. 이에 ‘점술의 한 도구로 은잔을 사용하는데, 이는 아직도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은잔에 금 조각이나 보석을 던져 그 물결이 이는 모양을 보고 신의 계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널리 사용된 점술로 애굽의 상류층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런 가운데 요셉이 총리 직분으로 ‘애굽인’이라는 확신을 더하기 위해 형제들에게 그 권위를 휘두르는 데 있어 ‘은잔’은 유용하였다. 요셉은 자신을 점을 잘 치는 사람인 양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5, 15).”
이를 통하여 형들을 시험하고자 한 것으로 실제 저가 그와 같은 행위로 앞날을 예언하거나 꿈을 해석한 것은 아니다. 이는 주 앞에서 진실하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로 저는 형들을 시험하는 데 있어 하나님 앞에 토설케 하려함이었다. 이에 유다의 진술은 진정성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죄를 숨기지 않았다. 곧 자신을 버리는 것이 승리의 길임을 성경은 알게 한다.
야곱은 그렇게 하여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평생을 사랑하여 애지중지하였던 것의 소산으로 남은 베냐민까지도 ‘잃게 되면 잃으리라.’ 하고 주께 맡기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43:14).” 어제도 살펴본 것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도 ‘주가 도우실 것이고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는 믿음으로 담대하였고(단 3:18), 고난 중에 욥도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죽인다 해도 자신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였으며(욥 13:15), 에스더 역시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들어가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이었다(에 4:16).
곧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운다. 첫째는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알게 한다. 둘째는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시인도 주께 아뢰기를,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이를 우리로 고백하게 하시려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2-13).” 그렇게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16).”
이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하는 데 따른 확실한 증거다. 이에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 바로 이 직전에 예수님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은 단호하셨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32).”
다 이룬 줄 알고 뒤를 돌아보는 구원은 정작 구원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구원을 위한 믿음은 가짜이기 십상이다. 마치 자신의 의지나 신념을 신앙과 믿음으로 여겨 우쭐해하거나 남을 업신여길 때 실은 그러한 자신의 것이 ‘소금 기둥’과 같은 믿음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그렇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심은 자신들의 이해와 상식과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어느 가까운 훗날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22).” 저들은 나름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위해 무언가 한다고 하며 남들에게도 인정받는 믿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어느 유명한 목사 둘은 로잔에서 대회를 시작하였고, 그이 중 한 사람은 지옥은 없다는 주장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운운하였다. 또 한 사람은 각자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며 타종교의 구원도 인정하였다. 한 사람은 존 스토트 목사이고 한 사람은 빌리그레함 목사이다. 어느 여인은 평생 홀몸으로 낡은 샌들 한 켤레를 남기며 남을 위하여 자신의 온 생을 내어주기까지 했는데, 저에게 구원은 산을 오르는 데 있어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하나였고 그리하여 여러 길로도 구원이 가능하다 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결정적인 것은 주가 그러한 자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1-12).” 나는 요즘 이 구절의 말씀을 여러 번 되뇌며 새삼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한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예수 외에 다른 이름을 더하는 자들은 어느 가까운 날에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하며 아우성칠 것이다. 그런들… “롯의 처를 기억하라!” 하심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눅 17:32). 믿는다고 하면서 왜 우린 자꾸 여러 말을 덧붙이고 다른 이름을 부르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듯 이 종교 저 종교 하나 되길 그처럼 기를 쓰고 화합을 운운하는 것일까?
오늘 ‘요셉은 은잔’은 그와 같은 우리의 헛됨을 지적하며 동시에 형제의 죄를 고함에 물꼬를 튼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창 44:16).” 하는 대목에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으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이에,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5:11, 40:4).
그리하여,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19-21).”
곧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오늘 우리로 어떤 것을 의지하고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하여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각자의 자신까지도 주 앞에 내어드림으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 4:14-15).” 이에 오늘도 주의 살아계심과 나와 함께 하심을 다시 한 번 굳건하게 의지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1-2).
이를 살면서 삶으로 누리고 증거하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3).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 앞에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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