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창 42:18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시 21:13
요셉과 유다의 이야기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지 약 20년 만에 형들과 재회한다. 온 땅에 기근이 들어 야곱도 어려움을 겪다,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자식들을 보낸다. 그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저들은 그를 몰라본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상기하며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창 42:18).” 하고 저들을 다 모을 생각을 한다. 이를 모른 채 저들은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스스로 자복한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21).”
곧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될 때가 가까웠음을 시사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15:13).” 그 원대하신 계획을 그 시점에서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를 신뢰함으로 매순간 주를 의지할 뿐이다.
성경은 철저히 선민을 향한 이야기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여 오늘 우리는 ‘야곱’으로 살면서 이 말씀을 직접적인 나의 이야기로 듣는다. 이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2-3).”
곧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하에 속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사 49:15-17).” 이는,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 48:14).
그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는 허물 많은 우리들로 주의 자녀로서 이 길을 가게 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어느 순간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없다. 곧 이어 요셉의 고백으로 이를 들을 것이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우리의 최악도 최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의 주체이시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05:17).
이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주의 뜻에 합한 자로 오늘도 여기에 세움을 입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행 7:9-10).” 우리는 곧 ‘야곱’이면서 동시에 ‘요셉’이고,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11-13).”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우리에게 복음의 말씀이란, 애굽에 있는 ‘요셉’과 같다. 우리의 갈망이 우리로 주 앞에 엎드리게 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그 심령은 주 앞에 긴박하다. 안일하며 나태한 영혼에는 복음의 의미가 와 닿지 못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실제 하나님이 부여하신 우리의 자유의지를 하나님께 돌려 주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행사됨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올린 자유의지로 행사된다. 곧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은 우리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요셉이 20여 년 만에 만난 형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도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저들은 허투루 들었을지라도 이 모든 일은 앞서 꿈으로 보이신 일이다. 곧 오늘 우리에게 말씀이란 그와 같아서 우리로 꿈꾸게 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선행적으로 알게 한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빌 1:7).”
하여 오늘 우리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구역 사역에 우리는 참여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것으로 우린 오늘 이 땅의 모든 일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한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오늘 우리가 겪는 어떤 고난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안다. 그리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상대적으로 나의 연약함과 불안은 나로 하여금 그것으로 주 앞에 더 아뢰고 의지하게 한다. 나 역시 낫고자 하여 몇 번을 아뢰어 기도하였지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이를 앎으로 나의 약함도 사명인 것을 깨닫는다. 육신의 연약함이나 나의 어쩔 수 없는 근심과 고민 가운데서 주를 간절히 찾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신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곧 오늘의 나의 고난이 나로 주 앞에 서게 한다. 누가 물으면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나의 슬픔과 어려움으로 주께 의지할 때, 엄연히 주의 약속은 선명해진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성경의 그 어떤 말씀도 허투루 주어졌다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아니할지니 내가 한 말이 이루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12:28).”
사람들이 모이고 여러 모양의 일들로 번잡스러워져 정치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규합과 반감이 서로 대립할 때,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마 1:22).” 말도 안 되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주의 뜻 안에서의 일이었다. 주가 이루시고 하는 뜻을 말씀으로 우린 앞서 깨닫고 이를 붙든다. 요셉이 꿈을 놓지 않고 주의 섭리를 이행하는 자리에서 탈선하지 않은 것과 같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우린 이를 안다.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그러므로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하신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마음을 간직하고 살 수 있는 것이 복이었다. 곧 말씀을 중심에 두고 다른 누구의 사상이나 주장에 휘둘리지 않으며 말씀대로 말씀 가운데서,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신 11:18-20).”
오늘날 요셉이 20년의 결코 짧지 않은 애굽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가 붙든 것은 주를 경외함이었다. 그 증거는 저에게 주신 꿈이었다. 곧 이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루실 일이다. 주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질 일이었음을 저는 어려움 가운데서 더욱 선명하게 확신하며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이에 그 형들이 저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그 죄를 직고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 고함은 신앙의 우선 걸음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떠올리는 자신들의 죄에서 저는 훗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51:17).
우리의 그 어떤 공로도 나름의 공적도 주가 바라시는 게 아니다. 정작 우리가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함은 주를 인정하는 최선의 경외함이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94:12-13).
우리가 주를 신뢰하는 일은,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이에,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21:1-2).
기도하는 안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허물과 죄를 고하며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선을 행하시고 우리로 의로운 길에 서게 하신다.
고로,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3).
이 놀라운 은총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다른 목적이 있거나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를 사랑함으로 이에 주가 지으신 모든 것을 사랑하고 귀히 여긴다. 하물며 나의 약함과 고통까지도 사랑한다. 그러할 때,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5-6).
이에,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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