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창 46:3-4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시 25:10
고작 70명의 일가에서 60만 혹은 200만의 민족으로 성장을 위해 애굽으로 내려간다. 하나님은 저들이 가나안에 동화되는 것을 막으시려 요셉을 앞세워 보내셨다. 기근을 통해 온 가족을 애굽땅 고센으로 모아두셨다. 애굽에서의 420여 년을 거처하면서 애굽에 물든 것을 후에 출애굽 시키시면서 긍극적으로는 주의 민족으로 보호하셨다는 것을 안다.
오늘 하나님은 야곱과 약속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창 46:4).”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3).” 이 모든 하나님의 길에 ‘언약과 증거는 이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이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시 25:10).
이 언약은 앞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것으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이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서 ‘횃불’이 지나감을 통해 이를 확인한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17).”
겉으로는 ‘이방에서 객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시나 동시에 저들을 보호하심과 장차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출애굽 사건의 발단이기도 하다. 야곱 일가의 애굽으로의 이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이를 통하여 저들을 구별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으로 훈련하셨다. 또한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뜻과 같이 ‘언약의 명칭’을 상기시킨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32:28).”
물론 새로운 상황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 분명하신 뜻을 계시하신다. 그리고 일일이 저들의 명단을 기록에 남기신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앞서 요셉을 보내어 애굽의 총리로 삼으셨고, 저들 민족을 위하여 고센 땅을 예비하셨다. 비록 유한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이나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그 사랑하시는 민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두려움으로 주 앞에 나아갈 때,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창 46:1).” 하나님은 언약으로 위로하신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2-3).” 곧 주의 인자와 진리로 우리를 붙드신다.
이 언약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신 데 따른 영원한 구원으로의 초대이다. 이때 오늘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애굽은 언제나 곤경을 주는 땅이었다. 아브라함에게도(12:14-20), 야곱의 부친 이삭에게도 실제 거주지로는 금지된 땅이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6:2).” 그럼에도 애굽으로 이주하여 거주하면 어김없이 심한 갈등을 겪게 하셨다.
우리 삶의 이정표에서도 우리가 세상을 벗 삼아 이 땅에서 안주하려 할 때 고통과 번민이 따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의 고뇌로 생의 방황한다. 이내 저마다의 고통을 겪으면서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온다. 우리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시려고 ‘우리의 문제’로 고심하다 이내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궁극적으로 우리가 싸우고 다툴 일은,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9-10).”
하나님이 계획하신 곳, 그 터 위에 우리를 세우시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이르시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쓸려가는 안개와 같이 허무한 길로 간다. 자칫 말씀에서 비껴날 때 미혹하는 영에 이끌려 종교화합이나 사회구원이니 하는 세상적인 구호에 자신도 빨려든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
사람과 사람 사이가 참 어렵다. 옆을 나란히 한 사무실과 에어컨을 같이 쓰는데 저이는 까다롭기만 하다. 서로 그 크기로 비례하여 3:7로 했다가 4:6으로 했다가 5:5로 하자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다시 또 6:4를 요구하더니 그마저도 자신은 스트레스가 된다는 이유로 이번 달로 같이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래봐야 여름 한 철 에어컨이라, 추가로 나오는 전기료를 저가 요구하는 대로 맞추어주다 그것마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주인에게 알리고 조치를 강구하시라 통보하였다. 일련의 사태로도 새삼스러운 게 사람들 참 저마다 자신들이 옳다고 하는 일에 대하여, 나는 늘 어렵다… 더는 어떻게 양보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마음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일찍 눈을 뜨고 교회로 왔다. 다시 옮겨야 하는 일인지, 생각이 많아져서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늘 보면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가 나는 그렇게나 어렵다. 저이가 요구하는 대로 나름은 다 맞춰준다고 했는데도, 호의가 어쩌다 저의 권리인 양 말도 안 되는 요구 앞에 더는 두 손 들었다. 이번에도 느끼는 일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같이 대대거리며 싸우자고 들 수도 없고, 시달리듯 여름 되기 전부터 여름이 다 가는 동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다시금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 인생의 불화는 끝이 안 난다.
아,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우리로 주 앞에 나아오게 하시려고 오늘의 ‘애굽’으로 들이셨다 이끌어내신다. 그때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내가 주 앞에 드려지는 시간이 예배였다. 일련의 이런저런 일을 두고 주 앞에 고할 때,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신 31:6).” 나로 더욱 굳건히 서게 하신다.
교회를 옮겨야 할지, 어떻게 해결이 되어 여기 더 머물게 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오늘 내게 부여된 주의 약속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알게 한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이율배반적이기는 하나 이런 일을 통해 오히려 주를 더욱 바라게 된다. 여기가 교회인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새삼 확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나로 이 땅에 거주할 자로 삼으신 게 아니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애굽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저들 원주민의 문화와 그 풍습에 젖어 사는 일도 아니었다.
이런 일에서 다시금 나의 자세를 고치게 된다. 그리고 선포하기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5).” 저마다 자신들의 주장과 그 생각에 따라 사는 일이 인생이라 할 때에 우리는 그것으로 주의 뜻을 분별한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재확인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주가 세우시고 주가 이루어 가시는 교회다. 내가 발버둥 쳐서 될 일도 아니고, 누구와 견주거나 다투어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곧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더욱 확신을 얻게 하신다. 나로서는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115:3, 18).
오늘 본문으로 알 수 있었던 야곱과 그 일가의 주의 백성들을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묵상한다. 일단은 기근을 피하여 애굽 땅 고센에 따로 두셨지만 앞서 가나안에 젖어서 악한 일에 물드는 것을 막으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70인에서 수십만 혹은 수백만 저들 민족을 형성하여 주 앞에 바로 서게 하시려는 것이었으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곧 일련의 저마다의 사정과 형편으로 우리는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로서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오늘의 이 모든 여정은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여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6-7).” 나의 오늘에는 목적이 있고, 여기에서 자기로 혹은 묵묵히 여기에서 주가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 사역을 감당할 따름이다.
430년 후에 70이 200만이 되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것이어서,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그러므로 오늘도 이 한 날의 수고로, 또한 저 한 영혼을 품고 씨름하는 것일 테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25:1-2).
오직 예수 이름으로, 오직 말씀을 가지고, 오직 주의 영으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3).
이에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4-5).
이에,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4-15).
하여,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0-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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