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출 26:1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가리고 덮고 또 덮어 성막 앙장과 덮개에 관한 규례가 그 교훈을 더한다. 곧 성도로 산다는 일은 이와 같이 세상과 스스로 분리하여 근신하는 삶이 필요하다. 오늘 주의 성막에 대하여 네 겹의 덮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다 생각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지혜와 순결함으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
우리의 삶이 곧 주가 내 안에 사시는 것 같이 사는 것이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6).” 이는 곧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15-16).”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마치 물 위를 항해하는 배와 같아서 물이 스며들면 그 배는 침몰하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를 이루기가 쉽지 않아서 나는 나로 스스로 왕따가 되게 한다. 세상 즐거움을 하나씩 놓아두고 사는 일이다. 누구처럼, 남들같이, 하는 소리에 둔감해지는 일이기도 하겠다.
일찍 눈을 뜨면서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간에 성전에 올라와서도 하는 일이 먼저는 말씀 앞에 앉히는 것이라, 나는 이와 같은 동선을 따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3).” 심지어는 내 몸의 연약함을 두고도 이를 받아들임으로 감사히 여길 것이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한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이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6-7).”
그러므로 나는 아이와 대화에서 혹은 누구의 어려운 사정을 듣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역설하곤 한다. 우리로서는 믿는 게 가장 쉽다.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으로 내 안에 어찌 이와 같은 믿음이 가능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주가 두시는 믿음으로 이처럼 굳건할 수 있다. 이는 곧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세상은 보지도 알 수도 없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이처럼 주의 성막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것은 물론 주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 사는 일이었으니,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이 놀라운 차이를 우린 알지만 세상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이처럼 특별한 것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주가 날 위해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가능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그러므로 오늘 주의 성막을 짓는 데 따른 여러 규례와 그 원리를 읽으면서 새삼 귀히 여겨진다. 청색, 자색, 홍색, 가늘 게 꼰 베실은 흰색으로 이것이 각각의 의미를 더하고 있음을 알 것 같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출 26:1).”
청색실은 하늘색으로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 땅에 오심을 연상하게 한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7-49).”
자색실은 존귀하심과 부하심을 나타내는 만왕의 왕으로서, 비록 초라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저는 본디 하나님이시라 만왕의 왕으로서 존귀하신 자이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신 10:14).” 그러므로 오늘 우린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홍색실은 그리스도께서 초라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로 우리의 구속을 이유로 보혈의 피를 흘려주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실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6).” 말이다.
이로써 가늘게 꼰 베실은 희색실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신 바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러므로 우리의 영생이란 다름이 아니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1-3).
오늘에 우리가 교회가 되고, 교회를 이루어 한 몸을 이루어 가는 것과 같아서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9).”
이와 같이 말씀을 찾아가며 그 의미를 이어서 묵상하다 보면 내게 더하시는 이 한 날의 수고와 즐거움이 복되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전 12:28).”
각기 그 지체를 이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9:24).” 우리의 삶은 결코 막연하지 않고 주어진 날은 유한하여서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하는 바울 사도의 설교가 오늘의 나의 삶이되기를 간구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고 때로는 어떤 염려가 마음을 떠나지 않고 머무는 동안 시무룩하여 의기소침할 때도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9-10).”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을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는 일이어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오늘을 사는 게 복이라,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하여 나는 오늘도 성전에 올라와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글로 쓰면서 주께 구하다 성전에서 잔다. 이는,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하여 나의 한 날이 거룩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얻은 바요, 거저 주신 은혜로 받은 것이니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이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고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
이를 알면 알수록 나의 남은 날이 항상 주를 바라며 주와 함께 살아나기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하여,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55:1).
하고 주께 아뢰는 것은,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5-7).
가끔은 어디 몰래 숨거나 멀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나,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8, 16)
그러므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2).
하실 때에,
…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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