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출 27:21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시 56:13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오늘 말씀에서의 번제단은 우리 죄를 대신할 희생제물을 드릴 때, 이 일은 성막 앞 뜰에서 이루어졌다. 곧 하나님의 성막으로 가려면 반드시 번제단을 먼저 거쳐야 했다. 이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하실 때에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6-17).” 하여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성막 안으로 들일 수 없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하시는 말씀 앞에 서게 된다.
산책을 하듯 병원에 들러 진통제를 한 대 맞고 아파트 단지를 휘휘 걷다 들어왔다. 바람이 제법 차고 하늘이 파랗게 높았다. 친구가 카톡으로 성경구절을 몇 곳 보내고 전화를 하였다. 나는 한갓진 곳에 앉아 그 내용에서 궁금한 것을 듣고 그에 따른 설명을 하였다. 늘 저의 어려움은 말씀으로 듣기보다 글로 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간과 행간 사이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가령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애굽으로 가는데 왜 갑자기 하나님은 저를 죽이려고 한 것인지, 그때 저의 아내가 두 아들의 표피를 베어,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출 4:25-26).” 그 의미를 어려워했다.
나는 먼저 24절에서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하는 대목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당시 길을 가다 광야에서 저들은 임시 숙소를 쳐야 한다. 그렇듯 모세가 기거하는 처소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할 때 이는 주로 적대관계의 의미를 가진다. 우호적인 만남의 의미가 아니다. 가령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잠 17:12).” 할 때의 만나다와 같다.
이와 같은 돌발 상황은 모세가 초래했다. 할례 문제는 죄의 문제로 이방 여인이었던 모세의 부인 십보라도 알고 있던 의식이다. 곧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가는 길인데, 광야 어느 길목 거처에서 안이하게 뭉개고 있었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우선은 죄의 문제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다소 안이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던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이와 같은 관계는 악함이라는 사실을 설명했다.
표피를 베는 일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체결하는 일이다. 이유야 어떻든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소홀히 했던 모세의 마음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이때에 십보라가 모세에게 피의 남편이라 표현한 것은 피로 산 남편이란 의미로 곧 우리의 죄에서 우리 영혼을 잘라낸다는 뜻이다.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한참을 이와 같은 설명으로 그 의미를 풀어내다 나와 저의 대화가 참 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점심께 그렇듯 성경을 펼치고 앉아 이를 읽으며 그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을 친구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문득 이 사실을 떠올리고 잠시 서술한 까닭은 오늘 본문의 번제단 곧 우리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데 있어, 그리하여 은혜가 됨을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그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주 앞에 이를 인정하기까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은혜도 묘연하다. 그러므로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곧 자기 죄를 인정하는 데서 주의 도우심을 바라고, 주께 구할 때 주의 은총 앞에 감사가 넘쳐난다.
선선한 가을날, 이러한 통화를 하고 있을 때의 그 기묘한 느낌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게 궁금하여 묻는 친구나 이를 풀어서 설명할 수 있게 하시는 일이나… 서로가 아는 서로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에서 주의 은혜는 풍성하였다. 이를 기이하게 여기며 친구의 그런 시간을 감사히 여겼다.
돌아와서 나는 온열매트 위에 몸을 지지며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이란 영화를 보았다. 1939년 9월 3일 런던, 독일의 공습이 있던 날, 3주 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될 무신론자이면서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C. S. 루이스를 만나 삶과 죽음과 신과 인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새삼스럽기도 한 것이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궁벽하고 초라한지, 나아가 문란하고 자기주도적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있는데, 이 용도는 제물을 매어두는데 쓰이기도 했고,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118:27).
또한 그 희생제물을 피를 바르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을지며(출 29:12).” 그러나 무엇보다 죄를 짓고 이 뿔을 잡으면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면책의 자리였다.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왕상 1:51).”
이에,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눅 1:69-71).”
그러므로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132:17).
하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8-10).”
나는 이와 같이 말씀에서 나의 이야기로, 나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에서 말씀으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시간을 사랑한다. 결국은 죄의 문제로 ‘프로이트’는 자신이 지고 갔고, ‘루이스’는 주를 인정함으로 그의 앞에 내어놓았다. 구원의 이야기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심각하게 깨닫고 두려워할 때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선다. 그리하여,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고로 오늘 나의 구원의 이야기는 그리스도가 날 위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전개된다. 하여 바울은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딤전 5:24-25).” 주 앞에 드러나게 될 일이지만 그 결과는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4-15).”
곧 죄의 문제는 우리 영생의 문제이다. 이에 베드로 역시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구원을 놓고 의심을 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영생의 이야기가 정해진 까닭이고, 이를 두고 죄의 문제로 주 앞에 항상 애통하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이에,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1-12).”
나 역시 한 동안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매료되었다가 오늘에는 그와 같은 허황함으로 주 앞에 나아갈 수 없는 데서 한계를 느낀다. 그러할 때 어제 친구와의 짧지 않은 대화에서 우리가 성경을 두고 그 의미를 이야기하다 자신의 죄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던 이야기처럼 궁극적으로는 오늘 이 한 날의 삶이 곧 주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물로의 시간이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살면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이와 같은 사실 앞에 주를 온전히 바랄 수 있는 때가 나의 죄인 됨을 인정하는 때이다. 이는 결코 우리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왜냐하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19).” 내가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 내가 안도하게 되는 이유다. 늘 나의 감사함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를 가지고 안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때로는 기이할 따름이다. 악착같이 내가 내 것이어야 하는 이유로 살아왔던 것 같은데, 그러한 날들을 돌아보면 죽어 마땅한 죄의 현실이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주가 베푸셨던 은혜로 산 것이었음을…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하여 나의 약함과 고난으로 오히려 주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일이었으니,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할 때에,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56:1-3).
그것이 더러는 나의 여전한 교만과 아집으로 죄의 문제였고, 더러는 연약함으로 고통 중에 있을 때에 드는 탄식과 애통함으로였으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4).
이제 나의 주어진 한 생을 사는 동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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