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전봉석 2024. 10. 13. 02:10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출 34:6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처음에는 하나님이 직접 돌판을 만들어 그것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는데, 이를 모세가 던져 깨뜨린 후 다시 계명을 주실 때는 모세가 돌판을 만들어서 들고 가야 했다. 곧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처음 주신 돌판을 간직하지 못하고 모세에 의해 새로 만든 돌판을 들고 주 앞에 나아가야 했다. 곧 죄는 용서 받아도 죄의 결국은 그 흔적이 남는다. 죄를 지을 수 있으나 그 결과는 남겨지는 상처 같다. 다윗은 아뢰기를,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 25:7).

 

젊어서 지은 죄에 대한 용서는 받았으나 그 시절과 지나간 시간 동안의 쇠약해진 육신의 여러 흔적은 안고 살아야 한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요 5:14).” 그러할 때 새삼 느끼는 바는 새로 주시는 날 아침에 하나님은 나를 만나기를 원하신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 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출 34:2).”

 

하여 아브라함도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실 때에 즉시 다음 날 아침 일찍 순종하여 길을 떠난 것을 잘 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 앞에 먼저 앉는 일은 매우 귀한 일이어서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이와 같이,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5:3).“

 

이는,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59:16).

 

하여,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19:147-148).

 

하는 성경의 근거는 새로울 게 없다. 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면 몇 시에 눈을 뜨든지 주 앞에 올라와 먼저 나를 말씀 앞에 앉힘으로 듣고 묵상하는 시간이 귀하다. 이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그것으로 우리가 주 앞에 선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이를 위하여 나는 억지로라도 초저녁 시간이면 잠자리에 든다. 늦게까지 깨어 있어야 할 이유보다 일찍 뉘었다가 눈을 뜨면 주 앞에 올라와 말씀 앞에 앉는 일이 귀한 게 되었다. 하여 또한 새벽 일찍 어딜 가야 하는 날에도 그보다 먼저 주의 전에 올라 말씀을 마주하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우선한다. 이는 나름 나의 속된 것을 단절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로 주 앞에 서기를 바라는 작은 몸부림이다. 이에 오늘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출 34:3).” 하실 때 가만히 주 앞에 홀로 설 것을 명령하신다.

 

이는 더 나아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이로써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17).” 그러할 때에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18).” 하실 때에 그와 같은 자세로 주 앞에 선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24:3-4).

 

하실 때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3).”

 

내가 어찌 죄와 무관하게 살 수는 없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항상 죄를 의식하고 주의하여 나로서 죄를 멀리하려 몸부림칠 때에 주가 더하시는 은혜를 믿는다.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귀하여 이를 알면 알수록 주의 은혜를 더욱 더 바라고 구하게 되는데,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108:4).

 

은혜를 받은 자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었음을 절실히 인정하면서 주를 더욱 높인다. 주 앞에 송구하여 겸손하여진다. 자격으로 치면 나로서는 염치가 없다. 오늘도 이처럼 주 앞에 먼저 앉는 것은 나의 나 된 것으로는 주를 뵈올 수 없음을 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오늘 말씀도 결국 하나님은 다시 또 저들에게 계명을 주시는데 그 은혜를 아는 자로서는 송구할 따름이다. 결국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욥 27:13).” 죄가 가까울 때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한다. 이는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22).” 이를 결국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주를 경외함으로였으니,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사 14:20).” 하여 죄를 알면 더욱 더 죄를 멀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적을 베푸신다.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단 6:27).” 주가 하시는 일이란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의 일이다. 곧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은혜를 받은 자는 더욱 그 은혜를 사모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 내가 전에 주를 멀리할 때는 죄가 가까이 있었고 오늘 이처럼 주를 가까이 하면서 항상 내가 겉으로나 속으로나 죄를 멀리하려 근신한다. 혹여 누구에 대한 서운함이나 어떤 일에서 서러운 생각이 들 때 주의 이름을 먼저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의 감정이란 늘 내 생각을 따라 우선하는 것이어서, 타락한 세상을 의식할수록 주의 은혜를 구할 따름이다. 이에,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10).”

 

하여,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그러므로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엡 5:5-7).”

 

이에 근신하는 자로 사는 일이어서 자칫 남들이 보기에는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나로서는 한 치의 허용이 방심을 일으켜 굳은 마음을 허물기 십상이다. 그렇게 하루가 늘 예배가 되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너무도 사소하고 부족하여 보잘것없는 하루이나 주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순간이 복되다.

 

햇살 고운 날, 아내는 주말 수업을 가고 나는 장모를 휠체어에 태워 양지바른 곳으로 나와 앉았다. 장모는 뜨개질거리를 들고 와 두어 시간 남짓 단조로운 일을 반복하였고, 나는 이북(e-book)으로 읽어주는 책을 열어 귀에 꼽고 한참씩 먼 곳에 시선을 두고 해바라기를 하였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그러할 때,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3).”

 

다행이다, 감사하다. 나의 한 날이 비록 밍밍하니 단조로운 날들이나 주신 바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것이다. 앞서 병원에 들러 진통제주사를 맞고 오늘도 이만한 것으로 감사할 줄 아는 것으로 은혜였다. 하여 나의 나 된 것으로 드려져서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10).” 곧 나의 새로운 한 날에 눈을 뜨고 먼저 주 앞에 나를 앉히는 일, 혹은 육신의 어떤 어려움에서 오늘도 이만한 것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고로 나의 드려짐이 고작 이것이 전부이어서 송구할 따름이나 나로서는 최선이기를.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는 날들이라도 오늘도 같은 동선을 따라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로 한 날의 수고에서 족한 줄 아는 것, 그러할 때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8).” 이 또한 주가 더하시는 은혜로 내가 살고 나로 드려질 수 있는 일이겠으니.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출 34:12).”

 

하실 때에,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6).”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3:1).

 

그러나 그리하여,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2-3).

 

나의 생명보다 주의 인자하심이 더 마음으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7-8).

 

이에,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6-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