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전봉석 2024. 10. 15. 01:56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출 36:7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시 65:10

 

 

어려운 듯 힘에 부치다 주가 함께 하심으로 모든 게 넉넉하였다. 이로써 나의 어려움은 간증이 되고 주를 찬송하게 하는 근거이다. 다만 있는 것으로 드려 모자랄 따름인데 모든 게 다 넉넉하여서 후일에 주 앞에 감사가 되었다. 이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21).”

 

하여 내 안에 늘 나의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일이었으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이를 살면서 사는 동안에 누리는 나의 간증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이에 나의 고통이 나로 주를 더욱 바라게 하듯 어떤 이의 고통으로 나는 저에게 나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마치 우리의 고통은 도돌이표 같아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다보면 도로 다시 그 음절로 이어져서 반복된다. 그럴 때 누구는 원망하나 우리는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주를 찬송하게 된다.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왕하 12:14-15).”

 

주신 상황 속에서 주의 이름으로 성실할 수 있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그 문제로 주의 선하심을 바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여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1).” 이 모든 게 유한하여 주 앞에 더욱 나아갈 뿐이라, 이것으로 안주하려는 마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오늘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고백과 같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날로 새로워지는 데 따른 찬송이 항상 그날에 있었다. 비록 부족하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이 시간과 같이 주께 바쳐질 때,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신 8:9).” 어려운 처지이나 그러해서 누굴 생각하고 어느 아이의 안타까움을 두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곧 나의 부족함으로 차고 넘치는 은혜가 날로 새롭다.

 

저마다 그 마음에 고통이 없는 이가 있을까? 육신으로든지 물질로든지 우리가 사는 동안 이고 지고 살아야 하는 고통으로 나는 더욱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아 안다. 그때마다 주가 함께 하심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경험할 수 있다. 하여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여느 세상의 것들로 휘발성이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안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피어나게 하신다.

 

그렇게 해서 더욱 말씀으로 순종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하여 오늘 이 순간이 항상 소중한 것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하여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나는 나의 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나의 연약함으로 또는 일그러진 마음으로 주를 부를 때,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어떻게 내가 이런 가운데 주께 감사할 수 있는지 나도 알지 못한다. 누구의 일에 마음이 기울어 주를 바라게 될 때도 그러하다. 어제도 친구와 대화하는 동안에 저의 앞날을 두고 나는 이번 기도회에서 기도제목으로 주와 씨름하기를 권면하였다. 자기 생각으로 아뢰는 것 같으나 어느 순간 주의 뜻을 분별하며 바라고 있을 것을 안다. 하여,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부르신 그대로 나눠주신 그대로 주가 쓰시기에 합한 자로 서는 일,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주가 더하시는 지혜로 자원하여 한다. 주의 말씀에 따라 백성들이 헌물을 드리고, 성막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36:8-39:43). 그런데 성막을 건축하는 순서가 ‘안에서 바깥으로’ 진행되도록 하셨는데, 실행에서 성막, 법궤 등의 순서로 곧 ‘바깥에서 안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오늘은 건축의 주역이 될 자들이 먼저 부르심을 받는다(1-2). 그리고 이에 필요한 것을 백성들이 가져와 차고 넘치는 예물로 충분하였다(3-7). 성막의 골격을 이루고 구조물과 앙장이 건축되고 있는 묘사가 이어진다(8-38).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께서 계시 하신 모형대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따라 진행되었다. 오늘 1절,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출 36:1).”

 

그러므로 주가 이루신다는 데서 일의 진행은 말씀을 따른다. 하여 우리의 감사는 철저하게 말씀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그 의미는 이루어져 간다. 곧 우리의 감사가 찬양이 되고 어떤 어려움으로 그 의미는 뚜렷해진다. 말씀을 따라 이를 준행하는 지혜자들의 순종이 돋보이는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게 주를 향한 마음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격한다. 하여 우리는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슬픔과 고통까지도 드리는 것, 이는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4-15).”

 

하여 때로는 여기까지만, 오늘로 감사하며….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시 100:4, 149:1).

 

하는 시편의 세계가 우리의 한 날이었다. 기도는 응답을 전제로 구하는 일이겠으나 드려지고 또 드려지다 어느 순간 내가 바라던 응답보다 더욱 선명하게 나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게 된다. 확신하게 되는 일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9-11).”

 

기도는 나의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내게서 제하여버린다. 오히려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누군가를 돌아보고 심지어는 저들 안 믿는 그 영혼을 두고 불쌍히 여겨 중보한다. 가정예배 때 우리 곁에 두시는 아이들과 그 가정이 겪는 아픔을 두고 주께 아뢸 때, 내 영혼을 메마른 곳에서도 만족하게 하신다. 하여 나로 물 댄 동산 같이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넘치게 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8).”

 

하여 기도란 응답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아뢰고 드려지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여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이를 이미 알고 향하는 항해다. 그러므로 친구에게도 퇴직을 염두에 두고 주가 더하시는 삶에 대하여 간구하기를. 보다 주 앞에 온전히 쓰임을 받기까지, 그와 같은 마음으로 주께 구하는 일이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실은 주가 이미 이루신 일을 이루실 것이라 확신하는 것만큼 분명하여진다. 해서 우리는 우리 곁의 누구에게라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된다. 그러할 때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더욱이 나의 삶에서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란, 나의 허물까지도 간증이 된다. 그와 같이 불의한 자로 있을 때도 주가 은혜로 나를 보호하고 계셨음을 저도 곁에서 보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19-21).”

 

이에,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65:1).

 

앞서 나의 기도가 당도하게 될 시온에서 찬송이 나온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하여,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2).

 

이로써 온 세계가 주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5-7).” 이와 같이 주가 이루실 것을 앎으로,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4).

 

오늘 시편의 한 날이 복되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5).

 

주의 의를 따라 엄위하심 가운데서 오늘을 산다. 이와 같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그러므로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이에 오늘도,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10).

 

오늘도 오늘의 은혜로 주 앞에 앉아,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11-12).

 

하여,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