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1:9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4
구약의 5대 제사법을 소개하고 있다(1-7장). 각 제물의 종류에 따라 관련된 규례를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번제는 제물 중 일부를 제사장이 취하나 제물 전체를 하나님께 태워바친다. 이는 전적인 헌신을 의미한다. 번제는 예수의 대속을 예표하며 단번에 이루어진 영원한 속죄 사역이다. 번제의 제물로 수소, 수양, 수염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가 사용되었다. 이는 저마다의 형편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셨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 곧 이는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는 것으로 읽힌다.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 7:15-16).”
이곳은 교회로,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0-11).”
그러할 때 오늘 본문은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2).” 곧 죄사함은 피 흘리는 대속이 있어야 하고 피 흘림이 없으면 결코 죄사함도 없다는 것을 알리신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예수님은 그에 따라 자신을 이르시되,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곧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과 그에 따른 섭리를 읽을 수 있는데,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8-10).” 우리로 하나 되게 하심으로, 교회 안에서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이를 알 때에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드려져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오늘도 주를 섬기는 자로 세워진다. 이때에 우리의 자원함이란 귀한 것이어서,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대상 29:9).”
곧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그것이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여 산비둘기밖에 못하다 해도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 16:17).” 이로써 나는 오늘도 나의 부족함으로 주 앞에 나온다. 나의 연약함으로 주 앞에 엎드리듯 나의 나 됨이 주의 것이다. 그러할 때에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1-12).”
이에 중요한 것은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그것으로 더러는 송구하고 부족하여 마음이 어려울 때도 있으나 또한 그러해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하여 나는 항상 나의 전부이나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느낌으로 또한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다.
더 열심히 좋은 성과로 어떤 결실을 추구하려다 자칫 위선과 거짓의 늪에 빠진다. 세상을 살면서 상대적인 시선과 그 기준으로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으나 이는 세상의 논리일 뿐, 최상의 것으로 드리되 그것이 나의 최선이면 되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흠 없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도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단순히 서로 비교하여 최상의 것이 아니라, 주 앞에서 우리는 누구라도 흠 없을 때 최선이었다.
곧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이와 같은 마음은 최선이 최상이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으로 ‘처음 익은’ 것으로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 하실 때 우린 그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의도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 23:18).” 주 앞에 가증하지 않은 것으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주 앞에서 아뢰되 나는 부족하나 나로 주 앞에 나아오게 하신 이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할 때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비록 나는 보잘것없이 연약하고 항상 늘 그저 그런 결과로 주 앞에서 송구할 따름이라 해도 주가 어여삐 여기심은 예수께서 날 위하여 그의 의로 나를 덧입히신 것을 믿음으로 시인하기 때문이다. 곧 나는 아무 것도 아니나 그런 나를 사랑하시는 이의 그 사랑이 나로 의롭다 하심인데, 이에 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의롭게 여겼던 것을 모두 해로 여김은 그런 까닭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이룬 업적이나 그 성과가 아니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곧 나의 나 됨은 주의 은혜라! 나는 내가 뭔가를 이뤄야 할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 누구의 성공이나 어떤 결실을 두고 그와 같이 되려고 부러워하며 애쓰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항상 저들은 저만치 앞서 가는 것 같고 상대적으로 나는 또 그만큼 뒤처지는 것 같아서 좌절뿐이었는데….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2-14).”
다만 이로써 나는 사랑에 빚진 자로 산다. 그것으로 은혜였고 주를 인정하는 데서 주가 나로 인하여 기뻐하심을 알았다. 그것이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뻔뻔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마음을 더하기도 하지만 그래서도 주의 은혜를 바라고 또 인정하게 한다. 즉 나로서는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서 내가 제일 어려운 대상임을 주 앞에 고한다. 나의 아집과 교만은 항상 나의 시선보다 앞서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도 때론 거짓으로 또는 위선으로 남들을 의식할 때도 있다. 이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5-26).”
결국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이었고 나의 중심이었다. 오늘 9절,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실 때, 또한 13절 “그 내장과 그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실 때도, 아직 내 안에 소화 되지 않은 것이나 더러운 찌꺼기를 물로 씻어내야 한다. 또한 무릎을 꿇림으로 정강이에 묻은 흙을 씻어야 한다. 곧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히 3:3).”
이에,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73:1, 51:10).
그러할 때에 나로서는 주 앞에서 온전할 수 있었다. 내가 어찌 무엇을 어떻게 하여 이루어내는 결과가 아니다. 곧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이로써,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나의 부족함으로 주 앞에 나온다. 나의 연약함이 나로 하여금 주의 말씀 앞에 앉힌다. 하여,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10).” 이에,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1, 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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