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전봉석 2024. 10. 19. 01:46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출 40:38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시 69:6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으로부터이다. 그 일은 무수한 일들로 개체적이면서 전우주적으로 각각이면서 전체이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을 하고 1년이 경과한 제 2년 1월 1일을 가리킨다. 그때에 “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고…(2-3).” 하는 것으로 이제 이스라엘의 정월은 출애굽한 달이다. 이 날을 기념하는 달 첫 날에 성막을 세우라고 하심인데, 이제 구원의 하나님과 새 날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곧 나의 날은 돌이켜 나로 주 앞에 세우신 날로 더는 세상 연락을 즐기며 살지 않아도 되는 날의 처음이자 시작을 의미한다. 이를 어찌 구체적으로 한 날을 정할 수는 없으나 나로 하여금 내가 죄인인 것과 절대적으로 주의 은혜로만 살 수 있음을 알고부터이다. 이 날을 기념하여 성막을 짓는 삶이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의 시작이면서 끝이고 처음이면서 나중이 되었다. 여전히 나의 부족함은 어려운 때에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올까?’ 하고 여기저기 산을 둘러보지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누구, 또는 어디에 도움을 구하려 하나 ‘나의 도움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좋아하고 위로를 받았던 문학이나 사람이나 존경하는 인물의 위대함에서는 좌절뿐이었다. 더욱이 존경하고 배울만한 사람을 바라보며 저를 닮으려 할 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자괴감뿐이었다. 나는 성경의 영웅들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믿음 안에서 위대했던 이들의 삶이 나의 허물과 부족함만을 마주하게 할 따름이었다. 이에,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다만 주 앞에 아뢰기는,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시 69:6).

 

하는 오늘 시인의 고백이 내 심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말씀을 전하고 누구에게 나는 누구라고 소개할 때 어떤 부끄러움이 먼저 이는 까닭은 행여 나로 인하여 저의 마음에 주께 향한 편견과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말이다. 그것은 친구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나의 일상에서 저에게 본이 되고 격려가 돼야 할 텐데, 하고 생각이 들면서 누구보다 연약하고 부족한 나의 나 됨을 두고 걱정이 앞선다. 가족들에게는 더욱 그러하고 나를 잘 아는 사람 앞에서는 저절로 또한 그러하다.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

 

아무도 모르는 일상이 더러는 나로 하여금 지레 마음이 쓰이게 하는 것도 그리하여 내 곁의 아내가 또는 아이들이 행여 말씀과 기도로 주를 바라는 데 있어 나로 걸림이 될까 하여, 오늘 시편의 기도가 나의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여 말씀과 기도로 균형을 잃지 않는 생활이 필요하다. 이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그렇게 오늘 본문은 출애굽 후 1년이 지나 처음 맞이하는 그해 첫 달 첫 날에 성소를 지을 것을 명령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5).” 하실 때에 증거궤 앞에 금향단을 두어 향을 올리게 하심은 그 의미가 나의 기도생활을 주가 요구하시는 것이다. 증거궤 곧 말씀과 금향단 곧 기도생활은 신앙의 균형으로 그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

 

일련의 교통사고와 합의와 그에 따르면서 육신의 약함과 심적인 변화로는,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더욱 주를 의뢰하게 하였다.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할 때 선뜻 내가 목사임을 밝히는 데 있어 주저한다면 그것이 내 안의 부끄러움을 들추고 있다는 것을 안다. 또한 교회를 옮기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할 때 여기서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것으로 먼저 돌아보게 한다. 이때에 나의 새로운 삶의 추는 말씀과 기도이고 이를 위하여 교회를 중심으로 한다. 어디로 가든 먼저 염두에 두게 되는 것이 새벽시간을 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성령 안에서 기도와 간구라 하심은 말씀으로의 기도이고 기도로써의 말씀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하는 것으로 나는 얼마나 나의 ‘출애굽의 감격’과 그로 인하여 새로워진 나의 삶을 두고 무엇으로 이를 중심에 두고 살고 있는지….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의 개별적인 삶은 각각 저마다의 일이면서 동시에 기도로 이어져 하나가 된다.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는 삶으로,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나로 인하여 좌절하고 또한 회개함으로 주 앞에서 성결하기를 꿈꾼다. 누구의 어떤 위대한 삶을 보다 그것으로 나는 좌절할 따름인 게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어서 주 앞에 송구하고 부끄러워진다. 이를 오늘 7절에서는 내 ‘삶의 물두멍’을 두어 주 앞에 설 때에 먼저 회개하게 한다.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그러므로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 4:14).”

 

나의 죄 됨을 알고 이를 인정할 때에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하여 나는 나의 좌절과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면서 동시에 주의 의를 바라는 것이어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3-4).

 

이에,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5).

 

나는 나의 완전함이나 누구에게 존경받을 위인으로서는 자신할 수 없으나 나의 부족함과 늘 어리석음을 깨달을 때 주 앞에 서서 아뢰는 것이어서,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 52:11).”하시는 말씀으로 나를 주 앞에 세운다. 어떤 결정이 중요한 게 아니고, 무엇에 따른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그 모든 것보다 주 앞에서의 나의 송구함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더러는 누가 안다고, 하는 심사로 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 줄 아는데 그리하여 증거궤 앞에 분향단을 세워 향을 피우고, 회막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을 두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중심을 바로 할 때, 주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회개하는 마음으로였다. 이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어찌 감히 나 같은 이로 거룩하라 하시는가 하면 나의 하나님이 거룩하심이었다. 이를 알면 알수록… 마치 욥기서를 읽고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의 묵상글이나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들을 다시 읽고 있으려면 나를 짓누르는 듯한 자괴함으로 나는 주 앞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엎드리게 된다. 그것으로 회개가 일어나고 더욱이 기도는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 세운다. 교회를 집 근처로 옮겨가는 것에 대하여, 혹은 여기 그대로 있는 것에 대하여, 나의 기준이 지금 이 시간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올라와 주의 성소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어서….

 

고로 우리는 결국 직분자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13-14).”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일깨우고 있다. ‘기름을 부어’ 곧 성령으로 부어짐으로,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3-4).”

 

내가 주께 바라는 것을 고하다 주가 내게 원하시는 것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어서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하여 주 안에 거하라는 것은 주께 맡김으로 자유하기를. 보면 늘 주의 일이란 내가 안달을 부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주께 맡김은 주의 생각을 생각하고 주의 뜻을 따르면서 주 앞에 항상 바로 서는 것이어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하여 서둘지 않고 조급하지 않으며, 이것으로 됐다 하는 심정으로 감사와 찬송을 주 앞에 올리는 것이어서 오늘 16절에 나오는 모세와 같이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저의 모든 일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는 것. 이는,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그러하기까지 주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는 더러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주를 바라며 묵묵히 또 무던하여 순종함으로 말씀과 기도로 중심을 잡고 날마다 먼저 물두멍 앞에 서서 회개하는 것으로,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그러할 때 나는 하는 게 없으나 나로 주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은 항상 또 나의 삶을 강권하심으로 붙드셨으니….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그러므로 이제 혹은 ‘나의 출애굽 이후’ 정월 첫 날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아, 이 놀라운 은혜의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시 69:1-2).

 

할 때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5-6).

 

이에,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15).

 

그리하여,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33, 3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