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레 9:24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시 78:72
하나님은 우리로 옷을 벗고 맨발로 다니라 하신다. 이를 통하여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 의해 벌거벗겨져 맨발로 잡혀갈 것을 알게 하신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사 20:2-3).”
곧 우리의 의지나 그 자신의 교만을 벗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재물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시며,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시 62:10).” 인생을 의지하지 않게 하신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146:3-4).”
말씀이 곧 시대를 건너 오늘도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들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가 되게 하신다. 이를 나의 이야기로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깨닫는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이를 아심으로 오늘도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시 78:38-39).
이에 오늘도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먼저 자신을 살필 것을 오늘 말씀은 일깨우신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레 9:7).”
우리가 살면서 싫든 좋든 그리스도인으로 향기를 내는 데 있어 사망에 이르는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이겠으나 생명에 이르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될 것이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그러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주의할 것이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고 순전함으로 주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17).”
우린 너무 번잡스런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 저마다의 생각이 강한, 지극히 개별적인 존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보다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한다. 이러한 때에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의 허물이나 사회적 모순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이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그러할 때,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1-32).”
나는 성경의 어느 말씀보다 이 구절의 의미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곧 나를 살리시기 위해 나를 죽이시기까지 하실 것이다. 나로 세상과 같이 정죄를 받게 하느니 징계를 받게 하심이 주의 사랑이다. 이를 욥은 알았고 그에 따라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는 우리가 구하는 바가 단순히 이 땅의 일로 잘 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하여,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4-5).”
주신 상황 속에서 묵묵히 주를 바란다는 일은 그리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이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신다. 곧 말씀을 전하고 이를 순종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레 9:23).”
이를 이사야는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사 6:4).” 이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데서 그 힘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내가 내 주의나 사상, 신념이나 의지로 나서서 개선하고 개도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다만 저들은 돌을 던질 것이라도 스데반 집사와 같이 주의 말씀을 전할 뿐이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저들이 들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저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들었다. 결국은 자신의 변화된 모습과 그 삶의 구속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이에,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나는 소 귀에 경 읽는 일 같더라도 다시 또 아이에게 일러 어떤 일을 두고 돌이키거나 주를 온전히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바로 할 것을 말한다. 병적으로 가지고 있는 충동구매나 소유욕은 어찌 감당이 안 되는 모양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 같을 때도 나는 다시 또 이르고 일깨움으로 더딘 걸음을 옮기게 한다. 순종하는 삶이란 처한 상황 속에서 있는 가운데 감사로 주께 영광이 되는 일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23).”
우리의 거역함은 완고함이어서 자신이 옳다 여기는 한 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7-8).”
이 일을 위하여 주가 나를 오늘도 허락하신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6, 12, 14).”
이것이 오늘도 우리의 본분이며 창세전 이 그 예정하심과 택정하심으로 오늘 이렇게 우리로 살게 하신 이유이겠다. 그렇다면 세상적인 가치관과의 싸움이다. 이를 떠나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산다는 것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게 참, 그렇게 어렵다. 그리 하려 할 때면 더욱 더 멀어지는 나 자신으로 좌절할 뿐이어서 주의 긍휼하심만을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이 놀라운 말씀 앞에서 주의 은총이 아니면 이 말씀을 앞에 두고도 알아듣기나 할 수 있을까? 이 땅에 살면서 땅에 속하지 않고 사는 일이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결국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땅의 형질을 가졌으나 땅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게 아니어서, 일상의 것들로 하나님과 나의 막힌 담이 없어야 하겠다. 이에 예수님은 이르시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이는 곧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13:10-11).” 날마다 매순간 씻고 또 돌아보아 깨끗하게 자기 영혼을 돌아보는 일이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2-3).
그리하여 오늘도 주께 아뢰는 것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그리 행할 수 있는 주의 권능과 자비하심이 필요하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 12:33).” 이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이를 위하여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먼저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구할 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모든 게 가능하였다. 그러할 때,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하시는 주의 말씀을 주목한다.
오늘도 이와 같이 말씀 앞에 앉아 나를 돌아보고 오늘에 두신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생각하게 하심으로,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시 78:1-3).
하실 때에,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38-39).
나의 날들 속에서 같은 허물과 실수로 주 앞에 죄를 범할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늘 여전하여 주 앞에 부끄러울 따름이나,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51:9-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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