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21장 / 주변국을 향하여

전봉석 2024. 11. 1. 10:19

241103 주일

 

이사야 21장

주변국을 향하여

 

사 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사 21: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들어가는 말

 

살아가는 데 있어 세상은 항상 우릴 괴롭힌다. 이는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정욕과 안목의 자랑으로 우리 영혼을 어지럽힌다. 이에 하나님은 그로 인하여 우리 영혼이 타락할 때 이를 또한 판단하시고 징계하신다. 그것으로 세상과 함께 정죄당하는 것을 피하게 하신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여기서 세상은 바벨론 혹은 애굽으로 상징된다. 더 가까이는 에돔이 있고 게달이 있다. 에돔은 야곱의 형제 에서의 후예이고 게달은 이삭의 이복형제 이스마엘의 아들 중 하나이다. 이처럼 주변국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13장에서 23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반부(13-20장)에서는 바벨론에서 애굽으로 끝나고, 후반부(21-23장)에서는 바벨론에서 시작하여 두로에서 끝난다.

 

오늘은 바벨론과 에돔, 아라비아(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한 게달의 후예)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다. 바벨론에 대한 예언은 13, 14장에 이어, 오늘 다시 언급되면서 그 중요성을 알게 한다. 에돔과 아라비아의 경우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해 부차적으로 언급되는 듯하다. 그것은 바벨론을 세상으로 치면 에돔은 가족이나 원수보다 더 우리를 상하게 하고, 게달은 가까운 친척이나 나태함으로 유유자적하는 상단이면서 어둠의 장막 같은 의미이다.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로 시작하는 바벨론에 대한 언급은 주전 539년 페르시아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하면서, 주전 710년경에 앗수르의 사르곤 2세가 정복한 후 다시 이어 산헤립에 의한 정복을 당하였다. 이에 바벨론에 대한 심판(1-10)과 에돔에 대한 심판(11-12)과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13-17)이 각각 예언되면서 하나님이 역사 속에 함께 하심을 알게 한다.

 

본문이해

 

1. 바벨론에 대한 예언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1).”

 

바벨론은 항상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어느 민족보다 혹독하게 유다를 괴롭혔던 바벨론이 자신들의 행위대로 심판 받을 것이라 선언한다. 엘람과 메대의 군사들이 약탈하며 남방으로부터 회오리바람처럼 무서운 기세로 오고 있다고 알린다.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사 21:2).”

 

이를 이사야는 해산하는 여인이 느끼는 것과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3).” 곧 바벨론은 멸망이 임박하였어도 연회를 베풀고 허랑방탕하게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또한 적군의 두려움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파수꾼은 마병대가 짝을 이루어 오는 것과 군사들이 올라오고 군수품과 식량을 나르는 나귀와 약대의 떼를 보게 된다. 파수꾼이 외쳐 보고하기를,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9).” 하고 외친다.

 

이는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하는 내용과 같아서, 종말론적으로 바벨론은 인류의 최후 멸망을 나타내고, 이를 보며 우린 탄식한다.

 

‘해변 광야’는 인류의 문화를 관통하는 유브라데 강을 품고 있는 바벨론, 세상 나라를 가리킨다.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10).” 그런 점에서도 ‘바벨론의 멸망’ 곧 세상의 멸망은 ‘여인의 출산과 같은 고통’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바벨론의 우상들을 벌할 것이라 그 온 땅이 치욕을 당하겠고 그 죽임 당할 자가 모두 그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이며… 외국인이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책망을 들으며 수치를 당하여 모욕이 우리 얼굴을 덮었느니라(렘 51:47, 52).”

 

2. 에돔에 대한 예언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11-12).”

 

두마는 에돔을 상징하는 명칭이다. 두마는 ‘침묵’을 의미하는 말이다.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구약 선지서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다(렘 49:7-22, 겔 25:12-14, 35장, 암 1:11-12, 옵 1장, 말 1:2-5). 이는 에돔이 이스라엘과 같은 혈통으로 가까운 나라이나 형제인 야곱의 자손에게 항상 포학을 행하였다. 그리고 유다의 패망을 방관하고 즐거워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옵 1:10, 12).”

 

이사야는 에돔이 처한 곤경이 언제 끝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파수꾼의 답변을 통해, 당분간 이 고통의 때가 계속될 것이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운데 에돔의 회개를 촉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사 21:12).”

 

3. 아라비아에 대한 예언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13).”

 

바벨론을 파멸시킨 힘은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며 여행하는 대상(隊商)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시 두로까지 왕래하며 장사하던 에돔의 이웃(창 10:7, 25:3, 렘 49:8, 겔 25:13)과 드단의 대상들에게 “드단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말을 탈 때 까는 천을 너와 거래하였도다(겔 27:20).” 서로 통용하고 거래하며 도움이 되던 나라들이 멸망할 것이다. 그들이 원래 통행하던 사막 지역에서 함께 유숙하던 자들이, 그 은밀한 숲속에 유숙하라는 경고를 듣는다.

 

실제 안전한 장소는 북서 아라비아의 오아시스인 데마라는 지역이다. 그곳에서 데마의 거민들에게 협조를 받아 잠시 피난하도록 권고한다. 왜냐하면 대상들이 침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심판의 결론을 선포하며, 그 기일이 일 년 내에 게달(궁수라는 뜻) 자손이 멸망하여 그들 중 소수의 활을 가진 용사만이 남을 것이라고 전한다(렘 49:28-33 참고).

 

게달은 이스마엘의 12아들 중 둘째 아들의 후손들이다. 넓게는 아라비아에 거하며 유목 생활을 하던 이스마엘의 후손들을 의미하고 있다. 즉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아들 이삭과는 이복형제로 가까운 사이다. 두마 곧 에돔은 야곱의 친 형제로 가장 가까웠을 사이다. 그런 그들이 어느 민족보다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며 틈만 나면 침략을 일삼았다. 이에 따른 경고와 상징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깨어 있지 못하고 오히려 연락하며 쾌락을 사랑하던 바벨론의 멸망과 같이 오늘 우리나라, 전 세계의 문화와 가치가 충돌하고 연합하다 전쟁을 일삼고 서로 공격한다.

 

둘째, 하나님은 바벨론의 신들을 벌하시고, 에돔과 아라비아 백성들까지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러기 전에 수차례 경고하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참고 또 기다리시며 오늘도 회개의 기회를 남겨두셨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직접 우리의 역사 속의 주인이심을 알게 하신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와 오늘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 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단순하게 바벨론의 멸망이 그들만의 최후가 아니다. 일련의 전쟁들과 각 나라마다의 사상과 정권의 대립은 우리 삶까지 위협한다. 이에 우리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고통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외쳐야 한다.

 

나오는 말

 

드단의 상인들은 낙타를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요하였다. 바벨론이 멸망할 때 그들은 칼날을 피해 수풀 속에 거주하며, 데마 거민들을 통해 물과 떡을 제공받으며 살아남았다.

 

결국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로 안이하게 한다. 에이, 설마! 하고 자신들 살 궁리에만 몰두하게 한다. 그 결국은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린 후에야 알게 될 것이다.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 가운데 하나인 게달(창 25:13-15)은 양떼를 치는 유목민으로 유유자적하며, 마치 어지러운 세상과 상관없는 자들처럼 살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바벨론’ 곧 이 땅의 멸망으로 인해 모두가 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말씀으로 어떤 교훈을 붙들어야 할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6-8).”

 

첫째, 하나님을 부정하는 모든 세력은 멸하실 것이다. 그토록 자신하며 벌이는 전쟁에서 서로는 서로를 멸망시키며, 가장 강대하다고 여겼던 바벨론도 멸망할 것이다. 부요한 상단 드단 상인들도 멸망할 것이고 외따로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듯 유유자적하는 게달의 영광도 패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세계를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결국 이 땅의 모든 세계는 자신들이 행한 결과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엘람(파사)과 메대의 연합군을 불러 바벨론을 치게 하시고,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주관자이심을 알리셨다. 사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의 삶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국가와 세계를 주관하고 계심을 사탄 스스로가 인정하도록 섭리하신다.

 

셋째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은 우상숭배가 원인이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파수꾼이 외친다.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이때의 에돔은 지금 닥친 고난을 모면하려는 노력보다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섰어야 한다. 만일 끝까지 그렇지 못하면, 아침이 와도 또 밤이 올 것이다. 환난 당하는 자들에게 환난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는 궁극적으로 참 회개의 기회가 아직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만이 살 길이고, 평안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