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며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
민 2:32-33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시 98:2
주말마다 장외집회가 열리는 뉴스를 보다 오늘 말씀을 상상해본다. 장정만 60만이 넘었을 이 많은 무리가 행진 할 때 이스라엘 진영과 배치와 숫자가 그려진다. 더러는 광야의 좁은 길을 무리가 지나갈 때 이와 같은 질서와 그 수가 차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대혼란이 야기될 것은 당연하다.
이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바, 어떤 상황에서도 성막이 이스라엘진영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고 이를 중심으로 대오를 이뤄 행군할 때, 언약궤는 3일 길을 앞서 간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민 10:33-34).”
말씀에서와 같이 평소 성막 위에 덮여 있던 구름(출 40:34-38)은 언약궤 위에 머물렀다(10:34).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언약궤의 덮개 즉 속죄소에 조각된 그룹 위에 뒤덮인 구름의 진행 방향이 뒤 따르는 이스라엘의 진로를 결정하였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시 80:1).
하는 찬송과 같이, 하나님은 앞서 저들의 길을 인도하셨다. 한편 언약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신 10:4-5).” 그러므로 언약궤가 이스라엘을 앞서 간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살아야 할 것을 가리킨다.
즉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인생 여정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이는 곧 우리를 안내하는 대로 주의 계명의 길을 따라 달려가는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을 알게 한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32).
그러할 때 그 길의 끝은 약속의 땅이다. 말씀 곧 법궤의 인도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갖춰 행진하는 것을 상상하면 그 모습이 장관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저마다 자기 뜻대로 나아간다면 광야에서 헤매고 그릇된 길을 헤매다 비참한 종말을 맞을 것은 자명하다.
또한 우리의 가나안 정복을 위해 군대를 조직하고,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던 것과 각 지파별 성막을 중심한 진(陣)을 치고 그 배치와 행진할 때 대오를 갖춰 이동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감격스럽다. 여호와께서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배치하시고(1-2), 각 방향을 대표하고 행군할 때 주축을 이루는 유다가 있고(3-9), 각각 그 진을 대표하는 깃발을 두어 소속 지파의 위치와 명단과 장정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회막과 더불어 레위인의 진이 있다(17).
이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그들의 질서를 잡아주셨다. 또한 가나안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조직력 있는 군대로 편성해 주셨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명령이 어떻게 철저히 시행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민 1:52-53).”
하나님의 주도면밀하신 계획과 이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순종으로 질서 있게 이 대오는 유지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성취로 건설되고 전개된다. 이에 우리는 주의 부름을 받은 천국 시민이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민 24:5-6).”
이때 우리의 책무는 화평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이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5:10).”
이에 우리는 서로 화평하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5-7).” 이를 위하여 오늘 우리로 이와 같은 질서와 그 자리를 맡기셨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이로써 우리의 사명은 모두가 지는 것으로,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각자의 위치나 그 맡은 바 책무는 다를지 모르나 뜻은 하나여서 서로는 서로에게 있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여 서로가 화평하다.
이를 위하여 우리를 조직하셨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13).” 이와 같은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 유다의 진기에 속해 동편에 위치할 선발대를 두셨다(3-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12지파 공동체로 두어 내면적 문제와 지파별 인원수를 감안하여 4군단을 편성하셨다.
즉 갈등의 소지를 제거하기 위해, 성막 주위로 4군단은 아들들인 유다, 잇사갈, 스불론의 후손들이 진을 쳤고 남쪽에는 레아와 그의 몸종 실바에게서 난 르우벤, 시므온, 갓의 후손들이 진을 쳤다. 서쪽에는 라헬의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의 후손들이, 북쪽에는 레아와 라헬의 몸종인 실바와 빌하가 낳은 단, 아셀, 납달리의 후손들이 진을 쳤다. 사사 시대에 이 지파 상호간의 대립이 심각했음을 감안할 때(삿 12:1-6), 비교적 친숙한 지파끼리 모이게 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취향이 비슷한 자들끼리 어울리다보면 파당이 생기고, 서로를 견제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로 생길 수 있다. 이에 우리는 각자의 은사대로 그 쓰임을 따라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6-8).”
사람과 사람 사이가 그렇게 원만하게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히 연합하고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이에 각 개인과 기관들이 고르게 성장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4-25).”
그러므로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3-14).”
오늘 말씀을 통해 저들을 편성하시고 그 위치를 배치하심으로, 신앙과 역량을 헤아리시고 일꾼으로 따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게 된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2-3).” 여기에는 다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순종만이 요구된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그러므로 나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맡기신 사명을 따라 그 직분에 충성할 것이어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는,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2-14).”
오늘을 사는 일이 광야를 따라 그 길을 나아가야 했던 당시의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다. 저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가나안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따라 순종해야 하는 것과 같이 오늘 우리도 날마다 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 숭리하기 위해, 나아가 세상 어지러운 권세 잡은 것들과 대적하기 위해 무엇보다 말씀을 중심으로, 맡은 바 그 직분에 따라 충성하는 삶이 요구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그러므로 우리 삶은 항상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그러할 때 각자 또 같이,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98:1).
이를 찬송하는 시편을 산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2).
개인적으로는 각자 그 자신의 삶에서 또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하며,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4, 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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