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할 일과 짐을 메는 일을 따라 모세에게 계수되었으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이 계수되었더라
민 4:49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하나님께서 우리로 특별한 신분을 주셨는데, 성도로 그 직분이 각각 주어진 것이다. 이를 ‘레위 지파’로 성막 봉사에 직접 참여할 자로 30세 이상 50세 이하의 남자들을 계수한다(34-49). 그 각각 가문에 적절한 직임을 허락하셨다(1-33). 그리고 이처럼 레위인에 대해 성막 봉사 임무를 분담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며 봉사할 레위인들의 직무에 관해 각 가문으로 구분하여 언급하고 있다. 제사장만 접촉이 국한된 지성물(至聖物)의 이동에 필요한 것(1-16), 지성물을 다루는 고핫 가문을 위한 보호 규정(17-20), 성막의 덮개와 휘장과 문장(門帳) 등 천막류의 관리와 이동 책임을 맡은 게르손 자손(21-28), 성막을 세우는데 근간이 되는 건축 구조물(널판, 바깥 포장, 각종 기둥 등)을 책임진 므라리 가문의 직임(29-33) 등.
이와 같이 직임과 방법이 다르다 해도 저들은 성막 봉사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일했다. 모두 경솔히 대할 수 없는 거룩한 기물들이란 점에서 그것을 레위인들이 맡아 하나같이 존귀한 직분으로 맡은 자의 사명을 가졌다. 이를 사도 바울의 설교로 정리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하는 것으로 우리의 다양성과 통일성은 교회 안에서 공존하며 하나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로 날마다 확장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27).
특히 나이 제한을 두는 것으로 미뤄 하나님의 일에는 그것을 감당할만한 인격과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한다. 30세라면 청소년의 혈기나 서투름을 벗어날 시기이고, 50세라 하면 그때까지 자신을 건사할 수 있는 성숙한 자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영적 성숙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만한 나이 혹은 인격의 때가 있음을 말한다. 하여,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딤전 3:6-7).”
그런 것으로 미뤄 다 때가 있는데, 요즘 ‘다니엘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는 친구와 대화할 때 어떤 기도 제목을 두고 서로가 주께 아뢴다. 어제는 그런 대화를 나누다 ‘한 번도 눈물짓고 애통해하며 기도해 본 적이 없다’는 친구의 말에 의아했다. 가끔은 말씀을 듣다 어느 대목에서 와락, 눈물이 솟을 때가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애통해하며 간절하게 울며 기도한 적은 없다고 하며 친구는 머쓱해하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강요하거나 서둘 것은 아니지만, 특히 점점 시력이 나빠지는 상태에 조만간 퇴직을 하긴 해야 하는데 딱히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말하다 이를 두고 절박하거나 간절하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하나님의 일에는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 인생의 30대에서 50대까지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함으로 가장 좋은 때를 생각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나이의 개념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 생활과 믿음의 간극이 가장 뚜렷할 때로 우리가 아직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지혜자의 충고처럼,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헌신하게 될 때가 있는데,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그러므로 나는 오늘 본문에서 서른과 쉰 사이의 때를 가리켜 그것이 물리적으로 나이로 국한 지을 게 아니라 주가 더하신 날에 자신을 온전히 드려 주의 일에 열중할 수 있을 때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사실 레위인들은 생후 1개월 이상으로 계수하여 25세가 될 때까지 제사장을 돕는 일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고 25세부터 5년간 견습기간을 거친 후, “레위인은 이같이 할지니 곧 이십오 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가서 복무하고 봉사할 것이요(8:24).” 그러므로 정작 20년을 봉사하기 위해 30년을 준비했던 셈이다. 이와 유사하게 모세는 40년을 일하기 위해 80년을 준비한 것이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각각 몇 년 안 되는 사역을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리며 준비하신 것이다.
어떤 이는 사역자로 혹은 교사로, 집사로 직분자로 세우심을 받는 데 있어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일률적으로 정해진 나이 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그 시기를 위하여 하나님은 때를 정하시고 준비시키신다. 그러므로 최선의 시기는 서로 다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시 50:5).
때가 되면 하나님은 필히 그 시기를 사용하신다. 한동안 나는 너무 늦게 신학을 하게 되었고, 급격히 나빠진 건강과 원래 연역한 육신으로 나 같은 자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나? 하고 회의한 적이 있다. 그러다 깨달은 것은 주의 일에는 ‘수행해야 할 시기’가 각각 다를 수 있고, 그 책임과 맡기신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때가 언제이든지 혹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맡겨진 멍에를 감당하면 되었다. 그리할 수 있게 하심은 주가 주시는 은혜로 하는 거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내가 스스로 수고하고 애쓴다고 될 일도 아니고, 내가 지고 갈 수 있는 짐도 아니었다. 이를 깨달을 때 우리는 다만 주께로 나아가 나의 멍에를 주께 맡김으로 쉼을 얻는다. 그때 내가 어떻게 하려 했던 당위에서 벗어나 ‘주의 멍에’를 메고서야 비로소 그 짐이 가벼웠음을 알게 된다. 이에,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4-5).”
내가 주 앞에서 감사하고 자랑하는 마음은 주의 멍에가 내게는 가벼워서 그동안 사느라 사는 데 기울였던 마음의 무게에서, 생의 질고에서 놓여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럴 때 비로소 나의 연약함을 인정함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는,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전 12:20).”
내 일이 나의 일이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이 나 혼자의 일이 아니었다. 오늘 이 교회를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도, 나는 다만 이 시간… 저녁을 먹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교회로 올라와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다 교회에서 잔다. 아침 일찍 혹은 점심 때 아이나 친구와 성경공부를 하고, 두어 시쯤 ‘아이’를 도서관에서 만나 같이 책을 보거나 시간을 나누다 오후 다섯 시께 집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또 그렇게 돌아가는 하루 일과에서 설교원고를 작성하고 묵상글을 쓰고 누구의 질문이나 기도부탁을 듣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로, 우리로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하여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나의 일정한 하루 일정이 때로는 단조로운 듯 무미건조한 것 같을 때 노아를 생각하며 주의 같은 하루하루를 그려보다 새 힘을 얻는다. 혹은 아브라함도 다윗도 다니엘도… 모두가 주어진 상황에서 묵묵히 순종하였을 그들의 일정한 일정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같은 동선을 따라 같은 시간과 같은 일과로 감사하게 채워간다.
오늘 본문에서 누구는 몸에 닿지 않게 성물을 운반하라는 명령에 반복적인 일을 순종하고(6, 8, 11, 14),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침해할 수도 있을 일을 미연에 방지하면서(15, 18, 19),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였을 것을 생각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로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충만하고 완전하게 계시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이를 우리가 오늘 살면서 성도로 각각 그 직분을 따라 순종하면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하심을 깨닫게 된다.
이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성품을 볼 수 있음이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8-9).”
곧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을 보고 만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그저 모르고 지나칠 때는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것인데, 이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으로 주와 함께 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오늘 말씀에서 레위인들 곧 특정한 지파의 사람들로 각각의 직분이 주어진 나이에 따라 맡겨짐을 보면서, 나의 이 날이 곧 그때인 것을 알게 된다. 누구는 젊어서 혹은 나이 들어, 병들고 이미 늦은 듯한 때에라도 그때가 가장 적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 100:1-2).
이미 늦은 시기는 없다. 아직 우리가 살아서 사는 동안에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3-4).
이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4).
그것으로 우리는 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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