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전봉석 2024. 11. 17. 23:00

 

모세가 이 속전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

민 3:51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시 99:6

 

 

앞서 성막 중심의 각 지파별 위치와 행군 순서에 관한 말씀이 있었다. 이어 오늘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성막에서 봉사하게 될 레위인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3, 4장에 이어 나올 그 내용은 앞전에 이미 하신 말씀을 구체화하신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민 1:48-54).”

 

오늘 본문은 먼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과 봉직에 관한 내용(1-4), 레위인들 직분(5-10), 레위인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11-13), 레위 지파 내의 세 가족(14-20), 직무와 수효(21-37),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직무와 레위인 및 이스라엘 초태생의 총계(38-43), 저들의 속전 징수(44-51) 등의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 병역의 의무를 면제하신 반면 성막봉사의 의무를 제시함으로 그 역할은 다르나 하나님을 섬기는, 부름 받은 사람으로 각각 합당한 책무를 부여 받지 못한 자는 없다. 이는 바울의 설교에서도 나타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이에,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14, 28).”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모두 부름 받은 자녀들로 어느 누구 직분이 없는 이가 없고 저마다의 형편과 사정으로 모두는 각각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29).” 서로가 그 입장과 처신과 맡기신 사명은 달라서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30).” 각각 다르나 어느 하나도 허투루 여겨 없어도 되는 지체는 없다.

 

모세는 인도자요 구원자로, 아론과 그 아들들은 성막을 관리하는 자로 그 소명을 받았다. 이 두 기능은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도 예표 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면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적 역할과 기능과 봉사적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였고,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을 예표 한다.

 

누구라도 교회를 이루는 데 있어 성도이면 다 사명자이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4, 7).” 그러므로 나는 평신도 사역을 귀히 생각한다. 목회자로 목사가 마치 교회를 대표하는 것 같으나 이는 교회의 질서를 위한 위임이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그런 점에서 나는 항상 친구와 대화할 때면 교회에서 권하는 성경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기시는 일이 있을 때 마다하지 않기를 부탁한다. 직장을 두고 언제 곧 퇴직을 해야 할 텐데 이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가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지, 교회에서 자신의 역할과 그 사명은 무엇일지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기를 권한다. 이는 누구라도 같은 마음이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내가 친구보다 혹은 누구보다 나은 게 있어서 주께서 이와 같은 사명을 맡기신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나는 내 곁에 두시는 한 영혼을 두고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갈 4:19-20).” 그렇듯 마음이 쓰이고 아파서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 1:2).”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고 누구 일을 가지고 같이 신경 쓰고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시 37:27-28).

 

그럴 때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교만이다. 내 안에 이는 어떤 마음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혹은 내가 무얼 얼마나 했는데, 하는 어떤 서운함 같이 교만은 슬그머니 내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옳다고 여겨 고개를 든다. 이에 지혜자는 이르길,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잠 25:6-7).”

 

이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 22:25-26).”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나는 겸손하려 하기보다 교만하려 하는 나를 항상 경계한다. 스스로 힘써 겸손하려 하는 것도 그 속에 은근히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 이를 어찌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 3:8).” 하여 성령으로 우린 우리 자신을 느낀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며칠 전부터 저녁에 교회로 올라온다. 그리고 이처럼 묵상을 하고 이를 글로 쓰고 잔다. 쓰는 동안 나는 자주 어떤 일, 누구에 대한 마음, 무슨 계획이나 생각을 아뢴다. 곧 나의 이 시간은 기도이면서 주께 아뢰는 간구이다. 말씀으로 나는 듣고 깨달아서 일련의 사태와 현상과 여러 일들을 고한다. 어릴 때 나의 모친은 항상 교회에서 기도하다 주무셨다. 어제도 아버지가 오시는 주일이라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데, 내가 요즘 교회에서 잔다고 하니 그 자리와 시간이 좋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 시간이 참 조용하고 고요하다.

 

교회를 지키는 사람으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이는 어느 특정 대상의 일이 아니라, 성도된 자로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16:16).” 주가 내 안에 두시는 마음으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이로써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할 때,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 5:7).

 

이것이 오늘 나의 모습이기를, 하여 주의 뜻을 바라고 행함으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이 시간, 이 마음이 곧 영과 진리로 예배의 시간이 되기를. 하여,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오늘 우리의 어려움이 또는 시련과 역경들이 오히려 은총이 되어서,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하여 나로 여기 있게 하시는 이가 오늘 내 안에 두시는 여러 생각을 가지고 더욱 간절하고 더욱 열심으로 주께 아뢰며 주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그럴 때 서로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이에,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119:6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99:1).

 

이를 오늘 중에 느끼고 실감하며 살고 있다면,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3).

 

그리하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8-9). 아멘.